시내에서 기름을 못 넣고 오는 길에 주유소를 못 찾아서 고산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는 초입에서였나? 그전에 큰길에서였나, 내 차 앞에 좀 멀리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빠르게 길을 가로질러 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고, 내가 그만큼 앞에서 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치즈 고양이인 것 같았다.
조금 더 가는데 도로 가운데 까만 물체가 파닥파닥 거리는 것 같았다. 하얀 차 한 대가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오늘 시내에서도 까만 비닐봉지가 도로에 떨어져 마치 새라도 파닥거리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고양이라면 저렇게 파닥거리는 움직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옆을 지나면서 보니 까만 고양이었다. 아기 고양이인 것 같았다. 잠시 고민을 했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면, 만덕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신고를 할까? 사체를 수습하러 온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가로등 조명도 제대로 닿지 않는데, 길바닥에 누워있는 검은 고양이가 보일까? 못 보고 지나가는 차들이 있다고 하면 아침에 그 아이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아니면.. 내가 직접 고양이를 수습해 도로에서 치워줄 수 있나? 막상 보고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안 좋아지면 어쩌지? 그렇게 한 20m쯤을 더 가서 일단 차를 세웠다. 어두워져서 길은 한산했다. 내가 차를 대는 사이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짝꿍이 육지에 가면서 차를 좀 정리해 두고 갔는데, 트렁크에 보니 버리려고 갈무리해 둔 옷 몇 벌이랑 작은 박스가 하나 있었다. 부드러운 니트 가디건과 박스를 들고 고양이에게 가 봤다. 차 한 대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박스를 휘저으며 일단 막았더니 잠시 섰다가 지나가는 차에서 어리둥절한 기운이 느껴진다. 고양이는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이었다. 주변에 피가 흩뿌려져 있지 않았다면 그냥 자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작고 까만 고양이는 아마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차마 자세히 못 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주저하다가 옷으로 감싸 고양이를 들어보았다. 따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따뜻했다. 부드럽고 연약한 몸이 힘 없이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늘어진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 무게였다. 펼쳐진 박스에 조심스럽게 얹어서 들고 둘 곳을 찾았다. 차도 옆에 발길이 잘 닿지 않을 것 같은 풀밭이 있었다. 조금 더 가면 밭이라 중간쯤 들어가서 내려놓았다. 다른 분들이 하듯이 장례를 치러주거나, 땅에 묻어 주지는 못 할 것 같았다. 몸을 펴고 꼬리를 내려줬다. 고양이는 계속 자는 것 같아서 꼭 밤새 추울 것만 같았다. 박스와 옷 없이 그냥 두고와도 되는지 고민이 됐다. 흙을 덮어주는 게 좋을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고양이 몸에서는 따뜻한 냄새가 났다. 아마 피비린내였을 수도 있고, 옅은 응가 냄새 같기도 했다. 고양이가 누워있던 도로에는 흩뿌려진 핏자국과 동그랗고 작은 똥물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어렴풋이 봤다. 어느 것도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차에 돌아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음이 났다.
아이비가 낳은 강아지를 묻어준 적이 있다. 오늘 죽은 아기 고양이보다 더 작았었다. 내가 포이와 봄이를 구조할 때보다 더 작았다. 아마 한 달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밥을 주러 갔다가 풀숲에 누워 있는 아이를 봤다. 자는지 죽었는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지만 이내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미개는 새끼가 죽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땅에 묻어주려고 수건에 감싸 데리고 나왔는데, 나는 그때까지 자세히 보지 못하다가 수건을 열어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손을 댔다. 그때 눈물이 났다. 실감이 났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서야 죽음을 실감한다는 건 뭔가 아이러니 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함부로 이해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조금쯤은 씩씩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에 나는 나약한 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능적으로 형편없는 나를. 정신적으로 약해진 나를. 그런데 강해진 구석도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보지 않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내려놓은 자리가 괜찮은 자리였을지, 작은 검은 고양이가 밤새 춥지 않을지 자꾸 그런 걱정이 든다. 이제는 차갑고 딱딱 해졌겠지 작은 검은 고양이. 하늘나라에서는 꼬리를 높이 들고 천천히 걷기를. 따뜻한 햇살 아래서 몸을 쭉 늘이고 편히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