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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Dec 18. 2024

5년을 믿고 눈앞의 이익을 취했던 자들의 조직적 저항

위험한 투자를 했는데 이익을 회수할 시간이 날아가 버린 상황이 펼쳐졌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다.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의결서 정본이 접수되면서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는 정지되었다.


위 절차는 대통령, 단 한 명의 직무를 정지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 절차가 대통령 윤석열을 정점으로 한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었는데, 바뀌는 것이 거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아마도 본격적인 변화는 어떤 부류의 조직적인 저항이 사그라들 때까지 눈앞에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부류의 조직적인 저항?'


이번 윤석열 정권의 성립 또는 유지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있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했던 사람들,

내각을 구성하고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그리고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실행했던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크게 두 그룹을 나뉠 것이다.

비상계엄을 직접 도왔던 "적극 그룹"과 비상계엄을 돕지는 않았지만 이번 정권의 성립 또는 유지에 기여한 "소극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적극 그룹"은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나면서 수사의 대상이 되어 현재 힘을 잃었거나, 힘을 감추고 있다.

이에 반해 "소극 그룹"은 숨죽이며 현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잠을 잘 시간도 모자랄 것이다. 대통령 임기 "5년"을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므로.


"소극 그룹"은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 중 일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소극 그룹"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작은 사소했을 것이다. "양심"보다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이익"을 취했을 뿐.


"양심"보다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이익"은 "정의"보다 조금 위험한 "이익"을 의미한다.

High Risk High Return. 조금 더 위험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더 큰 이익을 얻은 것이다.


그들에게도 애초에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들의 처한 상황에 따라 "이익"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빠른 승진"일 수도 있고, "화려한 경력"일 수도 있으며, "두둑한 보상"일 수도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이제 막 절반을 지나고 있었다. 


아직 2년 반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것이 실패해 버렸다.


비상계엄에 관여하진 않은(또는 못했던) "소극 그룹"의 입장에서는 날벼락같은 상황이다.

위험한 투자를 했고, 이제 겨우 이익을 회수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또한 자신이 양심과 정의를 무시하고 "몰래 그릇된 이익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

자신이 부끄러운 판단과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시작할 때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회수해야 할 이익이 있고,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경력과 명예가 있다.


"소극 그룹"의 저항은 조직적일 것이다.


"소극 그룹"은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약간의 이익을 취하려고 했을 뿐인데, '부역'했다고 치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시작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시작했고, 멈출 수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켜질 것이라 믿었고, 그에 맞추어 타임라인을 촘촘히 꾸렸을 것이다.


때로는 권력에 저항할 수 없었고, 권력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회수해야 할 이익이 생겼고, 지켜야 할 경력과 명예가 생겼을 것이다.


그 이익을 포기하는 것, 그 화려한 경력과 명예를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물러날 곳이 없다.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조금이라도 더 지켜내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본전"이라도 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극 그룹"은 조직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특히 그들의 경력과 명예를 어떻게든 지키기 위하여 저항할 것이다.


그 저항의 적법절차로 포장될 수 있고, 태업으로 발현될 수 있다. 그 저항이 국민이 기대하는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원인이 될 것이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누구도 그 상황에는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소극 그룹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헌법과 법률을 따지기 전에 그들은 스스로 양심을 선택하지 않았고, 정의를 선택하지 않았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엄청난 차질이 생겼을 것이다.


난 아닌 척, 아둔한 척, 순진한 척하면서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그들이 버틴다는 말은 그만큼 더 느리게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명예와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저 멀리 있는 헌법질서를 논하고 있지만,

"소극 그룹"에게 바로 눈 앞에 있고 손에 잡히는 명예와 이익의 문제인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과 언론이 벌겋게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인생이 걸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난 아닌 척, 아둔한 척, 순진한 척하면서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 주권자인 국민은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발언을, 그들의 행동을, 그들의 민낯을 기록하고 기억하여야 한다.

'속전속결'이 아닌 장기전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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