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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ul 10. 2024

안드로메다 공주는 에티오피아인

칵뉴부대는 백전백승, 아베베는 올림픽 이관왕


해피 라틴 호는 인도양 적도 가까이 항해하고 있다.

바다는 거울같이 잔잔하고 밤하늘에 무수한 별이 반짝이는 게 보인다.

철광석을 방방하게 실어 배가 푹 가라앉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너울은 아주 길게 퍼진다.

베트남에 파병된 혈기 왕성한 대한 용사들이 정글에서 밤하늘의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고국에 있는 부모 형제와 아내, 자식 그리고 애인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다는 이야기와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안드로메다 은하수를 보며 남희 생각에 잠긴다.


무엇이 꼬였을까?

나는 나대로 내 자리에서 그대로 항해하고 있고, 그녀는 독일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연락도 뜸하고 뭔가 서먹하다.

역시 가슴이 뜨거웠던 연인 관계도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지는가?

왜 군대 가면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나왔을까나.

머리에서 고작 세 뼘밖에 되지 않는 가슴도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을 느낀다.

아씨, 보여야 뭔 말을 하든지 투정을 부리든가 하지...

애달픈 청춘 마도로스는 한바다가 부르는 것 같아 칠흑 같은 바다를 노려본다.

어디가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밤하늘의 별들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전해온 별자리가 있고, 누구나 별자리를 자기 마음대로 지을 수도 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그리고 퀸의 프레디 머큐리 처럼...

위성 항법 장치인 GPS가 없는 배에서는 한바다에서 저 별자리를 보고 위치를 내 목적지를 찾아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십자성을 볼 수 없다.

남십자성은 중심에 밝은 별이 안 보여 십자가보다도 긴 마름모 모양이다.

북쪽과 남쪽의 별에 직선을 그으면 그 방향이 남극을 가리키므로, 남십자성은 근대 항해 시대부터 남쪽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중요한 이정표였다.

남십자성은 은하수 사이에 있지만 밝은 별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안드로메다자리는 우리나라 늦가을 초저녁 북동쪽 맑은 하늘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배달민족이라 이백여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에서 짜장면을 시켜도 배달해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안드로메다는 신화 속의 에티오피아 공주다.

엄마는 우리도 잘 아는 별자리, 카시오페이아 여왕이시다.

그 안드로메다은하가 해피 라틴 호가 항해하는 저 위에 멀고도 가깝게 느껴진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국제연합군으로 참전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이다.

1951년 황실 근위대가 포함된 Kagnew 부대 1,300여 명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모두 육천여 명을 파병했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병사들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하지 말고, 거기에 가서 모두 용감하게 싸워라!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어떻게 당해왔는지 그 고통은 뼛속까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파견된 뉴부대는 에티오피아의 산악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은 정예부대였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칵뉴부대는 탁월한 전투 능력을 발휘했고 253번의 전투를 해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전투에서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다.

전쟁이 끝나고 에티오피아 정부는 북한에 포로를 석방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죽을 때까지 싸웠지, 항복한 칵뉴부대 병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또한 그들은 전투에서 죽은 전우의 시체를 두고 가지 않았다.

연합군 동료들은 이러한 뉴부대원을 존경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운 많은 참전용사 덕분에 우리나라는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

은혜를 모르면 댕댕이만 못한 거지.


한때 아프리카의 강국이었던 에티오피아는 공산당이 나라를 말아먹어 이제는 농업 국가로 매우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고 커피의 원산지라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중요한 수출품이고 많은 농부가 커피밭에서 일해 먹고산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원두 가격으로 쇠 빠지게 일하고도 거의 입에 풀칠하기 바쁘단다.

최근 커피 농장의 기계화로 커피 생산량이 대폭 늘고 다국적 커피 기업들은 헐값에 사 간다.

상대적으로 저개발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이들의 대량생산에 맞설 기술과 자본이 부족하고 모든 걸 수작업으로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이란 더 나은 갑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과 발전을 돕는 무역 형태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얻으려는 선진국의 저개발국에 대한 착취는 자유무역 체제가 만든 세계 빈부격차의 고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무역과 달리 공정무역은 최소의 비용이 아닌 합리적인 값을 지불하고, 남는 것은 을에 돌려준다는 개념이다.

스타벅스는 오랫동안 에티오피아 커피 원두를 헐값에 사가 비난을 받다가 수매가를 열 배 이상 올려준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제 스타벅스에 파느니 공정 무역에 파는 것이 더 낫다고 거래를 피할 지경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인구가 일억이 넘고 국토 대부분이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라 적도 부근이지만, 사계절을 하루에 겪을 수 있다.

시원한 아침에 일어나 낮엔 더워서 땀 흘리다가 밤에는 눈이 오기도 하고 새벽에 무릎이 시리다.

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가 안 된 두 나라 중 하나이다.

라이베리아는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되고 돌아온 노예 출신들이 건국에 참여한 나라라 미국의 비호를 받아 식민지로 삼기에는 명분이 없었다.

에티오피아는 당시 군사력이 만만치 않았고 천주교인이 많은 나라라 유럽 열강이 집어삼키기에는 껄끄러운 상대였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오 년여 동안 이탈리아에 강점되었으나 평화협정에서 이탈리아는 오히려 에티오피아에 전쟁 배상금을 지급했다.

게다가 셀라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저항 세력이 에티오피아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식민지가 된 적은 없었다.

희한하게도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중 에티오피아 출신이 많다고 한다.

유대인 인구 부족으로 이스라엘에서 정책적으로 에티오피아에 살던 유대인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왕의 후손이며, 다른 나라 사람이 유대교를 믿는 줄 몰랐다고 한다.




마라톤에서 세계적인 강국이다.

나라가 고원 위에 있어 일반적으로 폐활량이 커 훌륭한 마라토너가 종종 나온다.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두 번 연속 우승한 아베베 비킬라는 맨발로 뛰었다.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선수 출신이 아니고 황실 호위대 소속의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공으로 일병에서 중위로 진급했다.


한국전쟁 때 1년 동안 참전했던 것으로 알려진 아베베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1960년 로마올림픽은 운명적이었다.

당초 아베베는 대표팀이 아니었지만, 한 선수가 발목을 다쳤고 그에게 기회가 왔다.

로마 대회는 중계방송을 시작한 첫 올림픽이었다.

아베베는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계기록으로 금메달을 땄고 게다가 맨발이었다.

조국을 침공했던 이탈리아의 심장부에서 거둔 우승.

세계의 언론은 '에티오피아를 점령하기 위해서 이탈리아군이 6년 동안 못 했지만, 로마를 점령하는 데는 단 한 명의 에티오피아군이 두 시간 만에 가능했다.'라고 보도했다.

자신들을 총칼로 짓밟았던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거둔 승리였기에 국민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베베는 국민적인 영웅이 됐고, 황제는 그를 장교로 승진시켰다.

그는 '나는 내 조국 에티오피아가 항상 강인하게 시련을 이겨내 왔음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고, 나는 조국과 황제를 위해 달린다.'라고 말해 에티오피아 국민을 또 한 번 감동하게 했다.

그가 귀국하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직접 마중을 나가 '당신이 황제인 나보다 백 배나 우리 에티오피아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쳤다.'며 아베베를 환영했다.

아베베 선수가 맨발로 뛴 이유는 대체 선수로 나가게 됐는데 선수단 신발 중에 맞는 게 없었다고 한다.

당시 선수화는 지금보다 무거웠고 발에 맞는 신발이 없으니 유럽인 코치가 맨발로 뛰자고 제안다.

아베베 선수는 맨발로 뛴 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뛰었다.

다음 도쿄 올림픽 때는 협찬사에서 미리 준비해 주어 제대로 된 운동화를 신고 뛰었다.


아프리카에서 세계 챔피언이 됐던 우리나라 홍수환 선수는 일병으로 의장대 사열과 카 퍼레이드만 했다.

그런데 멕시코의 알폰소 사모라에 타이틀을 빼앗기자, 수경사에서 영창에 보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영창에서 나오자마자 유격 훈련에 보냈다지.

세계 챔피언이 된 홍 선수가 청와대에 초대되어 찍은 사진을 보니 당시 수경사령관은 진종채 장군이었다.

글쓴이가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마치고 이등병으로 2군 사령부에 오니 진 장군님도 보안사령관 하다가 별 셋 달고 2군 사령관으로 오셔서 이취임식을 했다.

군대 말로 전입 동기란 말이지.

그런데 수경사령관할 때 자기 병사가 세계 타이틀전에서 졌다고 참모들이 괘씸죄로 영창 보내고 유격훈련 보내는 데 묵인했다는 것에 의아한 생각이 든다.

그 바람에 홍수환 선수는 군대에서 지옥 훈련을 받는 거보다 권투가 더 낫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그만두려던 생각을 접었다고 한다.

그리고  년 뒤 한 번 더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200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3분 벽을 처음으로 깬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선수는 우승 상금으로 받은 돈이 에티오피아 직장인 연봉 수십 년 치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래서 엄청난 부자가 되어 그의 집에서 하루 먹여 살리는 사람이 무려 5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성공한 영웅이 본인과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나는 뭘 해서 주변의 가난한 여인을 먹여 살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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