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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ul 08. 2024

마다가스카르섬의 바오바브나무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 잔지바르


철광석은 무거워서 선창반도 안 찼는데 배가 푹 가라앉는다.

컨베이어로 이틀 만에 계약량을 다 싣고 더반항을 출항했다.

남아공에서 미련 갖지 말고 얼른 떠나는 게 이항사뿐만 아니라 모두의 만수무강에 좋을 거 같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항로를 마다가스카르섬 동쪽 멀리 잡았다.


어린 시절 읽었거나 들어봤던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가 마다가스카르섬에 많다.

바오바브나무의 괴이하고 초현실적인 모습에 마귀가 심심해서 거꾸로 처박았다든지, 열받은 하이에나가 바오바브나무 묘목을 집어 던져 거꾸로 처박히는 바람에 가지가 땅속에 박히고 뿌리는 하늘로 올라가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원주민 전설이 있다고 한다.

수명이 길어서 삼천 년 넘게 살 수 있고, 30m 높이에 굵기 또한 엄청나다.

다만 줄기의 속이 비어 있어서 재목으로는 쓸모가 없다.

옛날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 불멸의 나무를 매우 신성시했으며, 사람이 죽으면 이 나무줄기 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이 나무 안에 카페를 차려놓은 데도 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령 천 년 이상 된 바오바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충격을 받아 돌 지경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바오바브나무는 껍질을 벗겨도 죽지 않고, 줄기가 부러지거나 쓰러져도 다시 살 만큼 생명력이 강한 나무인데 죽어가니 말이다.

그 죽음이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나쁜 식물의 싹이면 보이는 대로 뽑아 버려야 한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다. 바로 바오바브나무의 씨앗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린 왕자의 아주 작은 별에는 바오바브나무가 덕이 안 되는 식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는 바오바브나무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이 소중하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는 농사나 짓고 물고기나 잡아먹으며 한적했을 것 같지만, 18세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던 동인도 해적들의 경유지였다.

해적들이 동인도 근해에서 도적질하고 돌아갈 때 지름길이던 마다가스카르의 해안을 선호했었는데, 평상시 파도가 잔잔하고 섬에 먹을 게 많아 그 당시 최고의 기항지였다고 한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전부 마다가스카르에 처넣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독일령 폴란드 총독부 지역에 몰아넣다 보니 약 250만 명이 넘쳐나 폴란드 총독이 자신의 총독부를 '인간 쓰레기장'으로 만들 거냐며 반발하자 마다가스카르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영국 해군의 포위망을 뚫고 마다가스카르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계획은 백지가 되었고, 대신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베우제츠 같은 살인공장을 만들어 다 죽여버렸다.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0년 아프리카의 봄에 독립했다.

그린란드, 뉴기니, 보르네오 다음으로 큰 섬이며 인구는 약 삼천만 명이고 영토는 한반도와 일본 전체를 더한 크기와 비슷하며 많은 종족이 산다.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이면서도 경제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세계 최빈국 중 한 나라이다.

놀랍게도 조상은 흑인이 아니라 기원 전후에, 보르네오섬에서 이주해 온 폴리네시아계 사람들이다.

이천여 년 전 옛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어떻게 8,000km가 넘는 인도양을 횡단할 수 있었는지 폴리네시아 카누를 타고 실제 실험했다.

평균 시속 5노트로 항해할 때 36일이면 도착할 수 있고, 무역풍을 타고 자바섬이나 인도양의 섬에서 보급받고 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추측된다.

그래서인지 동남아시아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현지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식도 쌀이고 공식어인 프랑스어 외에 쓰는 말라가시어는 말레이 인도네시아어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 위쪽으로 동아프리카의 작은 섬 잔지바르는 예로부터 교역항으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잔지바르는 동아프리카에서 내륙으로 가는 출발지 중 한 곳이었다.

사냥꾼들은 이곳에서 짐꾼을 고용해 아프리카 본토로 갈 보급물자를 챙겼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사냥한 노예와 코끼리 상아는 잔지바르에 모였다.

많은 범선이 노예와 보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잔지바르 항구로 몰려들었다.

보물 중에는 상아와 향료가 있었고 야생동물 가죽도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잔지바르 표범은 진귀한 가죽으로 유럽과 아랍에서 인기가 있었다.


잔지바르 시내에서 북서쪽 해변으로 올라가다 보면 기묘한 산호 동굴을 볼 수 있다.

사냥해 온 노예를 임시로 이 동굴에 가두었다가 배에 실어서 유럽, 미국 그리고 중동으로 보냈다.

산호 동굴로 가려면 날카로운 바윗길을 걸어가야 한다.

노예들이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맨발로 걸어 발바닥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동굴에 끌려왔다.

일부는 상처가 도져 죽거나 팔려 가는 배에서 후유증으로 죽어갔다.

산호 동굴을 지나 바닷가 언덕에는 지하 감옥이 있고 지붕에는 작은 숨구멍만 뚫어놓았다.

여자 노예와 어린이를 보관했다가 수출하던 노예 저장소이다.

노예는 남쪽의 스와힐리 해변에서 수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큰 무역선이 들어오는 잔지바르에서 팔렸다.

그러나 모든 노예가 수출된 것은 아니다.

잔지바르의 향료 농장에서도 노예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항구를 통해 매년 5만 명 이상의 노예가 실려 나갔다.

노예 상인은 유럽과 미국인만이 아니었다.

낙타 타고 온 아랍 노예상은 수천 명의 강력한 원정대를 이끌고 아프리카 내륙에서 노예와 코끼리를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아랍 상인은 상아를 잔지바르로 옮기고 노예 시장에서 사람을 팔아먹는 겹 장사를 해서 떼돈을 벌었다.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출생지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번화한 옛 거리와 아름다운 건축물에는 노예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스톤타운 복판에는 영국 교회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예전에 노예시장이었던 곳이다.

1873년에 노예제를 폐지하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

앞마당에는 노예 기념비가 있고 지하에는 당시 노예 수용소가 있다.

잔지바르섬은 한때 동아프리카 최대의 노예, 상아, 향신료 무역의 중개지로 번성하다가 수에즈운하가 생기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잔지바르는 아름다운 섬으로 인도양의 보석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프레디가 잔지바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1964년에 잔지바르의 아랍왕조가 흑인에 의해 망하면서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이 맨몸으로 쫓겨났는데 프레디의 가족들도 인도계였기에 쫓겨났던 아픔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잔지바르에는 프레디 동상 하나 없고 추모하는 이도 거의 없다고 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프레디의 고향인 잔지바르도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최근에는 프레디의 출생지라 유럽과 아시아에서 오는 퀸의 팬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수 밥 딜런이 대중음악을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머큐리(수성)는 이미 행성으로 존재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프레디 머큐리란 소행성도 있다고 하니 가히 역사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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