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솔로몬의 후예라며 아프리카의 자존심이었던 에티오피아가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 우리는 잘살게 되었는데, 지금은 세계 최빈국으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제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를 떠나는 것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블랙라이온 국립의료원에서 30년간 현지인을 치료해 '코리안 슈바이처'로 불리는 유민철 박사가 정년으로 퇴임했다.
유 박사는 퇴임 후에도 여전히 에티오피아의 환자들을 걱정했다.
유 박사는 1975년 에티오피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정부의 아프리카 파견 의사 모집에 자원했다.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에티오피아에 왔다.
의료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평소의 꿈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해부터 큰 시련을 겪었다.
그 전해 우리나라를 도왔던 하일레 셀라시에 왕정이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고 공산화된 후, 경제는 한없이 추락하고 서방 국가의 지원도 끊겼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러나 현지 의사의 도움으로 블랙라이온 의료원에서 의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1977년에는 소말리아의 침공, 1991년에는 내전이 이어졌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한국대사관은 그에게 철수하라고 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귀국하려던 유 박사를 붙잡은 것은 병실을 가득 메운 환자였다.
800여 병상이 모자라 병원 복도에까지 누워있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대사관에서는 그의 가족만이라도 피신시키려 했으나 '부인은 죽더라도 남편과 함께 여기서 죽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내전이 끝난 뒤 병원은 또 다른 전쟁터가 됐다.
에이즈 환자가 200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에티오피아에서 감염을 무릅쓰고 매일 수술을 했다.
유 박사는 아디스아바바 국립대 부속병원에서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도 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와 미망인, 자녀들에게 무료 진료와 지원을 계속해 왔다.
또 언청이 무료 수술, 화상 입은 아이들 치료를 계속했다.
에티오피아에는 재활용 부탄가스 통을 쓰기에 폭발이 잦아 화상 입은 아이들이 많았다.
유 박사는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있다 보니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함께해준 가족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2년에 한 번씩 14번이나 정부와 계약을 연장한 끝에 맞은 정년퇴임이었다.
그는 '가족 같은 의료진과 환자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망설여졌으나 그동안 에티오피아에 2개의 의과대학이 생겼고 외과 전문의 제자가 200여 명이 배출된 만큼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운 에티오피아에 정부와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부탁했다.
그의 감동적인 삶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나왔다고 한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에티오피아를 돕는 손길이 곳곳에 있다.
KOICA 한국 국제협력단이 그렇고 월드 비전, 따뜻한 하루 등 여러 단체에서 가난한 에티오피아 사람과 참전용사, 그들의 2세들을 직간접으로 돕고 있다.
우리 민초들은 맛있다는 예가체프 커피 등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들을 간접적이나마 돕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알렉스 헤일리가 쓴 어느 미국인 가족의 전설인 '뿌리'라는 책이나 영화를 알게 모르게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킨타쿤테'를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살던 그 소년은 동네 근처 숲에서 놀다가 노예 상인들에게 붙잡힌다.
그는 돼지우리보다도 참혹한 노예선에 실려 미국으로 끌려간다.
이 끔찍한 악습은 15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19세기까지 이어져 무려 1,500만 명 남짓한 아프리카인을 잡아갔다.
인신매매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고대국가 시절, 전쟁에 패한 나라의 군인이나 백성이 승전국의 노예가 되었다.
패전의 대가를 혹독히 치른 것이다.
근대국가에서는 아프리카 등지의 흑인이 미국이나 유럽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흑인을 납치해 돈 받고 팔아넘기는 노예 상인이 적지 않았다.
미국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이 같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슬픈 인신매매 역사를 썼다.
소설로 쓰인 후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이 본 이 작품은 감비아 출신의 '킨타쿤테'라는 흑인이 백인들의 노예로 팔려 온 이후 7대에 걸친 눈물겨운 기록이 담겨 있다.
노예의 신분으로 백인들의 학대와 착취를 견뎌내고 마침내 노예해방을 맞은 후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이다.
작가 헤일리는 한국전에도 참전한 미합중국 해군 중령 출신이시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인신매매의 가장 큰 목적은 노동력 확보였고 따라서 남자 노예의 몸값이 높았다.
그러나 현대 들어 인신매매는 주로 젊은 여성들에 치중되어 있다.
바로 매춘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인신매매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인신매매는 정말 없어져야 할 사회악이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를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는 게 하나 더 있다.
칼라하리 사막에서 사는 부시맨족 마을에 어느 날 경비행기 조종사가 버린 빈 콜라병이 떨어지게 된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에 부시맨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니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에 따라 평화롭던 마을에 분란이 생긴다.
그래서 주인공 부시맨 자이는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콜라병을 신에게 돌려주려고 여행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백인 여기자와 동물학자를 만나면서 문명인들을 접하게 되고 또 아프리카 정부군과 반군 간의 싸움을 보게 된다.
좌충우돌 소동을 다룬 코미디 영화로 배우들의 개그도 재미있고, 순수한 부시맨족 자이의 눈을 통해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인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도 담겨있다.
남아공과 보츠와나가 합작해 저예산으로 만들어 대박 터트린 영화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해피 라틴 호는 밤낮없이 마른번개가 치는 아름다운 말래카해협을 향해 인도양 물살을 힘차게 헤쳐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