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미소
외국 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했던 때 방콕은 선원들이 좋아했던 항구이다.
주로 쌀을 실으러 많이 갔는데 화물선이 짜오프라야강에 도착하면 강 입구부터 현지 여인들이 미소로 반겨주었다.
많은 외항선이 입항하기 위해 강 하류에 대기하고, 강변 양쪽에는 수십 척의 화물선이 접안해서 분주히 화물을 싣거나 풀어준다.
타일랜드는 불교 국가로 젊은 남자는 승려가 되기 위해 절에 가거나 군대에 가고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관광업에 종사한다.
타이족은 중국 윈난성에서 10세기경 건국되어 300여 년간 번성했던 대리 왕국의 후손이라고 한다.
돌의 이름인 '대리석'은 이 대리국에서 나왔다고 한다.
몽골의 침략으로 망하여 탈출한 이들은 타이 북부와 라오스, 버마 일대로 많이 이주해 왔다.
라오스인과 버마 샨족이 타이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피부색이 중국인처럼 하얀 편이고, 푸껫 아래 남부 지역 주민들은 말레이인이나 크메르인 혼혈이 많아 외모상 차이가 나고 피부색이 비교적 검은 편이다.
타이 남부의 경제권은 말레이계 원주민이 아닌 남중국에서 배 타고 이주해 온 화교들이 잡고 있다고 한다.
이런 중국계 타이인들이 타이 사회의 상류층이다.
대다수의 일반 백성이 주로 일차 산업에서 일하다 보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게 고단한 편이다.
젊은 여성들이 마사지 샵이나 화류계에서 벌어 먹고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나라에서 쌀 수출해 번 돈으로 절을 어마어마하게 크게 지어 금으로 처바르고 백성에게 매일 절이나 하라 하고, 음식 팔고 몸판 돈으로 승려에게 공양하라고 하니 어디 늘푼수가 있겠나.
타이에는 삼합회가 유통하는 마약이 널리 퍼져 있고 워낙 마약을 쉽고 싸게 구할 수 있어 마약 관광을 오는 외국인도 많다.
동남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에이즈 감염국이라고 한다.
지금은 에이즈 퇴치 정책으로 많이 줄었다지만, 공무원 수만 명이 HIV에 걸려 있고 심지어 승려까지도 에이즈 환자가 많다고 한다.
타이의 문제점 중 또 하나는 난민과 인신매매이다.
타이에는 무국적자나 난민이 수백만 명이나 산다.
과거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의 공산화, 버마의 군부 쿠데타로 숙청과 학살을 피해 타이로 피난 온 동남아인이 많다.
그리고 버마의 로힝야족이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로 밀입국하기 위해 태국을 경유한다.
이들이 박해를 피해 밀입국하다 보니 신분이 없어지고 그들이 타이에서 낳은 자식들은 무국적자가 되어 인신매매 조직의 밥이 된다.
난민들을 새우 양식장, 쓰레기 처리장이나 사창가에 팔아버려도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
타이인들은 비교적 느긋하게 사는 편이다.
요즘은 '레오 레오(빨리빨리)'를 노래 부르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말이다.
낯선 이에게도 친절한 편이고 얼마나 잘 웃는지 '미소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어떤 상황이든 흥분하지 않고 태연하려고 한다.
글쓴이가 한잔 걸치고 건널목에서 녹색 신호등에 좌우를 보며 건너다가 전화부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좌회전하는 차에 치여 쓰러졌는데 아는 사람도 나서질 않는 걸 겪었다.
주변 사람과 갈등을 불편해하기에 운전자와 피해자가 다툴 소지가 있으니 이상할 정도로 '난 몰라요.'로 일관했다.
이는 무책임한 게 아니라 서로 편을 가르지 않고 조화롭게 살자는 생각이 아닐까.
그런 것들이 올라갈 수 있는 권력이나 부가 정해진 답답한 사회에서 어찌할 수 없어 체념하는 정서가 몸에 밴 건 아닌지...
타이는 겉보기에는 평등 사회로 보이지만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왕과 귀족이 아직 있으며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상류층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과 인맥을 바탕으로 돈 되는 사업을 독점하여 부를 이어간다.
소수의 화교 또는 화교 혼혈인 사람들이다.
일반 서민은 입에 풀칠하기 바빠 큰돈을 벌거나 신분 상승은 언감생심이다.
이렇게 타이는 정경유착, 부패로 부의 편중과 빈부 차가 큰 편이다.
삼성 회장가보다도 개인 재산이 더 많은 타이 부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계층 간의 갈등은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그 이유는 종교적으로 전생의 업에 따라 현재 자신의 삶이 그렇게 정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현세에서 물욕을 누르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 것을 강조하는 불교 가르침의 영향도 백성의 우민화에 일조한다.
타이 남부 말레이시아 국경 지역의 이슬람교도와 지금도 내전 중이다.
거기 3개 주는 대부분이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무슬림이었으나 태국이 차지한 게 고작 백 년 남짓하다.
소승불교 국가 타이는 무슬림을 박해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였고 군대를 보내 모스크를 강제로 불교 사찰로 개조하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타이 정부는 여기에 불교도들을 이주시켰는데, 무슬림들이 보복 살해하면서 막장 판이 되었다.
또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타이군 초소를 공격하면서 군인 수십 명이 죽었고, 푸껫에서 관광객을 테러해 공포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 때문에 푸껫 남부 지역은 외국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타이가 세계적인 매춘 국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베트남 같은 주변국에 비해 규제가 느슨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타이인의 정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여인들이 많은 것 또한 불편한 사실이다.
오래전 미아리에서 했었다는 섹스 쇼를 방콕에서 본 적이 있다.
타이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특이한 것은 성 소수자에게 관대한 것이다.
그래서 성전환 수술도 많이 해 타이의 관련 의료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은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자기 관리를 잘하는 일부 동성애자들이나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 또는 예술 방면에서 먹고산다.
물론 극히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그래도 자신이 레이디 보이라고 밝혀도 사회적으로 박대하는 분위기는 아니기에 커밍아웃하기 쉬워 트랜스젠더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 트랜스젠더들이 공연하는 알카자 쇼나 티파니 쇼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본래 남자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쁜 사람들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데 웬만한 여자보다 더 예쁘게 보일 정도이다.
한국 관광객들을 많이 배려하는 편이었으나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이 대세라 대부분의 공연에 중국 색이 짙어졌다.
10세기 전후 크메르족의 전성기에 타이 대부분이 앙코르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다.
타이는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제국주의 시대 당시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국가이다.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식민화한 영국, 네덜란드와 동쪽에서 베트남,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고 밀고 오는 프랑스가 서로 완충 지대로 타이를 남겨두기로 합의한 것이기에 운이 좋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타이 군주들의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단다.
유럽 군사력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던 타이 군주들은 열강들에 무력 개입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 무척 노력했다.
당시 타이 영토에 속했던 라오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버마의 영토를 떼어주고 중립국을 표방하는 등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애를 많이 썼다.
이차 세계대전 때 살아남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은 흑역사가 있으나, 정작 일본에 별로 협조하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전범국에서 빠졌다.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해 우리나라를 살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으로 수교했고, 형편이 나아진 지금은 전사자와 참전군의 후손에게 빚을 갚고 있다.
타이에는 석유가 나온다.
탱커를 타고 육지도 안 보이는 한바다 제트에서 원유를 실은 적이 있는데 민간인 구경을 못 했다.
기름배를 타면 이렇게 세상 구경하는 재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