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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성극 아카이브 Feb 26. 2020

이유있던 비판 : <더블캐스팅>

좋은 취지, 게으른 구성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를 안방에서 즐길 기회는 흔치 않다. 요즘엔 공연 실황을 방송에서 틀어주지도 않고(물론 예전에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시상식 중계방송도 시원치 않다. 이렇다 보니 뮤지컬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모든 공연 팬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2일 첫 방송을 한 <더블 캐스팅> 또한 그랬다.

이 전에 비슷한 결의 프로그램으로는 <팬텀 싱어>가 있었으나, 팬텀 싱어는 각 분야의 숨은 보컬리스트들을 발굴하는 범규모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고, 그 안에 뮤지컬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일반인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컬 배우가 있는 경우였다. 하지만 <더블 캐스팅>은 프로그램 이름부터 업계 언어로 된,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취지 또한 관심을 끌만 했다.

  일반 관객은 물론 공연을 좀 보러 다닌다는 공연 팬들 사이에서도 앙상블 배우는 주목하기 힘든 분야이다. 하지만 앙상블은 분명 많은 배우들이 거치는 배역이기도 하다. 좋은 커리어를 쌓고 있는 민경아 배우는 <아가사>의 앙상블이었고, 이제는 대배우가 된 박혜나 배우도 앙상블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 <위키드>로 빛을 본 경우이다. 대극장 뮤지컬들은 잘 뽑은 단체곡, 즉 앙상블들의 실력이 돋보여야 하는 넘버들을 킬링 넘버로 삼기도 한다. 나 또한 <아이다>의 ‘신의 사랑 누비아’ 나 <레베카>의 ‘새 안주인 미세스 드윈터’같이 앙상블의 힘이 돋보이는 넘버를 좋아한다. 잘 정리된 여러 음역대의 목소리들이 힘 있게 울려 퍼지고, 앙상블들은 각자의 자리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뮤지컬의 씬이 넘어가거나, 감정이 고조된다. 주연 배우의 천장을 찌를 듯한 성량,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는 것과는 다른 결의 짜릿함이 앙상블 넘버에 있다.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는 각 공연의 앙상블에게 주는 상까지 있다. 이 정도로 앙상블은 공연 구성에 꼭 필요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앙상블이라는 배역 특성상 앙상블 개개인에게 주목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관객들은 앙상블의 재발견에 목이 마르기도 하다. 관객들은 언제나 뉴페이스에 관심이 많다. 정말 잘하는 앙상블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앙상블에서 끝나기 아쉬운 배우들이 그저 기회가 닿지 않아서, 혹은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주조연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더블 캐스팅>의 취지와 방향은 어느 정도 예비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

심사위원의 스타성만 고려한 캐스팅 

   하지만, 첫방 이후 SNS와 공식 영상의 덧글 반응은 싸늘했다. 프로그램은 분명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앙상블의 처우를 잘 알고, 같이 공연을 했던 현직 배우들은 냉정한 심사가 힘들다는 점이 그중 하나이다. 앙상블 페이 미지급은 뮤지컬이라는 업계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어두운 이면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턱없이 적은 페이, 그마저도 제 때 받지 못하는 상황은 주연급 배우들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 점이 아니더라도 배우 심사위원과 앙상블 모두 현장에서 활동 중인 현직 배우라는 점에서 오류가 난다. 한 마디로 ‘다 아는 얼굴들 이군.’ 상황이 나올 수 있고, 이미 어느정도 그랬다는 점이다. 몇달동안 땀흘려가며 연습하고 공연한 동료들의 단점을 어떻게 불특정 다수 앞에서 꼬집고 비판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참가자의 실력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호평일색의 심사평에 공감하지 못한 주 시청자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이런 구성은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뮤지컬 레드북 : 중소극장의 경우 조연과 앙상블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여자 앙상블도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요상한 규칙이 있었다. 남자 앙상블만 참가자가 될 수 있다. 앙상블은 남성만 하는 배역인가? 절대 아니다. 앙상블, 스윙, 댄서 모두 여러 장면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혼성으로 준비시키는 배역이다. 당연히 여자 앙상블만 부르는 노래도 많다. 그리고 앙상블이라는 위치가 불합리한 조건에 많이 놓이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실력을 확인받을 기회가 없는 건 성별을 떠나 모두에게 동일하다. 앙상블을 재조명하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였는데, 그 재조명 대상에서 여자는 쏙 빠져있었다.

  <더블 캐스팅>은 우승자들로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스포츠처럼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성별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 뮤지컬이라는 업계가 주 활동인이 남성인 업계도 더더욱 아니다. 언제나 디폴트를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판단이 프로그램 기획과 섭외를 거칠 때까지 여자 앙상블도 있고 그들도 기회가 필요하다는 기초적인 사실마저 지워버렸다.

  남자 버전이 잘 돼서 여자버전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남녀를 나누어 버전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게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블 캐스팅>이 자기 PR이라는 방식을 빌려온 <프로듀스 101>는 우승 상품으로 아이돌 데뷔를 제시했기 때문에 아이돌 업계 특성상 성별 구분이 필요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경우 트로트 업계 특유의 감성으로 성 상품화된(이 전략에 대한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서라도) 참가자들 속 '진정한 가수'를 가려낸다는 거대한 플롯을 따라갔기 때문에 성별 구분이 유의미했다. <더블 캐스팅>은 이런 특수한 상황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뮤지컬 마틸다

재미도 감동도 없이 찝찝함만 남았던 서사 연출

  첫 방송이 시끄러웠던 이유는 이것 말고 또 있다. 유일하게 여성 배우로 참여한 심사위원이 첫 방송의 메인 서사로 쓰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 있다. 모 배우의 출연이 사전 협의된 건지 아닌지는 구태여 추측하지 않겠다. 협의가 됐던, 되지 않았든 간에 심사위원이 서류를 보자마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고, 감정을 추스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서사로 쓰였다. 여자 심사위원이 무명의 남편을 보며 눈물을 쏟고 심사평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림이 작가진이 원하는 킬링 요소였다면,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작가진의 올드하고 일차원적인 선택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심지어 이런 결과물은 현재의 공연계 시류와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트렌드 하고도 모두 동떨어진 결과물이다.

  노이즈 마케팅도 선이 있고 정도가 있다. 첫 방송에서 여성 심사위원은 ‘무명 배우를 남편으로 둔 아내’로 전락했다. 남성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과정에서 신중하지 않으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공연이라는 분야를 애정 해서 프로그램을 챙겨봤던 뮤지컬 팬들도, 그냥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멈춘 일반 시청자들도 온전히 공감하기 힘든 감정 요소였으며 그 뒤에는 찝찝함만 남았다.


  나는 <더블 캐스팅>의 제작진들이 악의를 품고 여성 앙상블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의도적으로 여성 배우 심사위원에게 ‘아내’와 ‘눈물’의 키워드를 준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남성 중심의 오디션 프로가 너무 당연하고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앙상블만 섭외하고,  여성 심사위원이 겪는 감정폭력이 바로 써먹을 소잿거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겠거니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결과적인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는 건 자질의 문제다.



뮤지컬 시카고

소재로 전락한 '앙상블'

  이런 문제점을 가득 안은 첫 방송의 상황을 봤을 때, 프로그램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만 혈안이다. 앙상블이라는 배역 자체를 소재로 써먹으면서 그들의 처우개선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그저 개개인의 사연팔이를 이용하기에 바쁘다.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문제이긴 하나, 유난히 <더블 캐스팅>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비슷한 구성으로 개개인의 사연에 집중하더라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프로그램을 보다 건강하고 품위 있게 만들 수 있다. 저 많은 앙상블 중에 정말로 페이 미지급 이슈가 있던 앙상블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운이 없어서’, ‘그저 기회가 닿지 않아서’ 실력 있는 배우들이 주조연을 맡지 못하는 상황이 과연 스타 캐스팅에 공연의 흥망을 맡겨버리는 일부 회사의 판매방식과 연관이 없을까? 즐기자고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에 애정을 가질 준비를 하고 첫 방송을 기다린 사람들은 대부분 공연업계에 애정을 가진 팬들이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불분명한 타깃층

  무작정 팬들 입맛에 맞게 프로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타깃을 기존 공연 팬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시청자로 잡는 것도 훨씬 안정적이고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이 프로그램도 일반 시청자를 의식한 듯, 첫 방송 전에 각 참가자들의 자기 PR영상을 업로드하는 등 최근 유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첫 방송을 본 결과, 일반 시청자에게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소 불친절했다. 대체 일반 시청자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나 <더데빌>이 어떤 공연인지 알 리가 있겠는가. 신선한 노래를 듣는 재미는 초반 1, 2회나 먹힌다.

  <더블 캐스팅>은 온 동네 뮤지컬 넘버가 총집합될 프로그램이다. 일반 시청자를 타깃으로 삼았다면 프로그램은 과할 정도로, 공연 팬들이 본다면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친절했어야 했다.  <더블 캐스팅>은 공연과 넘버에 대한 정보 전달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뮤지컬적인 기준에서 이들의 기술적 면모를 체크할 심사위원들도 위에서 말한 이유들로 제대로 된 심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시청자가 참가자들의 경연을 보며 이들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는데에서 온다. 심사위원과 프로그램의 자체 구성은 이런 과정을 보다 쉽게 만들어주기 위해 전문 지식을 시청자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더블 캐스팅>은 이런 부분을 완전히 놓쳤다. 일반 시청자는 그동안 수많은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쌓아온 지식으로 참가자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모르는 게 많으니 금방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래만의 뮤지컬 안방 행사가 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 첫방부터 구설수 덩어리에 영광 없는 상처만 남았다. 공연계 시류와도 전혀 맞지 않는 참가자 선별 기준(성별)과 득 없이 실만 가득했던 서사와 구성을 보완하려면 지금이라도 타깃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많은 수정을 거쳐야 한다. 녹화방송의 이점은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이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보다 나은 2화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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