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슬기 Jul 28. 2023

야알못을 야구장에 데려갔다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11

혼자서 처음 잠실에서 직관한 이후, 꾸준히 야구 얘기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많이들 부러워했다. 대개가 직장인인 그들은 주중에도 오후 6시 30분 경기를 보러 야구장으로 달려가는 넘치는 나의 여유를 부러워하는 것도 같았고,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부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야구를 잘 모르지만, 나 따라 야구장은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가자고 하면 격무에 치인 대한민국 일개미인 그들은 시간을 빼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개중에 Y는, 야구를 궁금해하기보다는 나의 변모를 신기해하는 류였다. Y는 나의 대학 동기다. 싸이월드 '언문(언어문학부) 07 클럽'에서 만나 학교 매점에서 운명적인 첫 만남을 한 이래 늘 붙어다니는, 대학 이래의 '짱친'이다. 함께 학식을 먹으며 취업 준비를 했고, 내가 언론사 시험해 합격해 본가인 경기도 평택에서 급하게 상경했을 때 자신의 자취방 한구석을 내어준 이도 Y다. 거기서는, 주로 야밤에 눈물콧물 쏙 빼가며 각자의 상사를 욕했다.


아무튼 그렇게 Y가 16년을 지켜보며 파악한 나의 관심사 가운데 야구는 없었고, <최강야구> PD 지원을 불사할 정도로 야구에 진심인 나를 Y는 줄곧 신기해 했다.


"야구가 그렇게 재밌어?"

"어, 경기장 가면 노래하고 춤추고 맛난 거 먹고 다 하고… 피크닉 온 것 처럼 신나! 함 갈래?"

"스트라이크랑 볼도 구분 못 하는 사람도 가도 되나?"

"야구장 가면 어차피 멀어서 스트존이 보이지도 않아. 심판이 손 뻗으면 스트라이크고, 아니면 볼이야."


나는 Y에게, 경상인으로서 서울 한복판에서 "쎄리라"와 "쫌"을 외치는 쾌감을 거푸 설명하며 함께 갈 것을 권했다. Y도 통영 출신의 경상인이기에, 가능하다면 우리는 함께 NC를 응원하는 사이 좋은 듀오가 되리라는 대도 있었다. 그렇게 2023년 6월 3일 토요일, 나와 Y는 잠실야구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3루 내야석에는 자리가 없어, 더 비싼 3루 익스트림존에 각 3만원씩 주고 예매를 했다.


이날 나는 친구의 결혼식에 먼저 들렀다가 야구장에 가야하는 처지였다. 야구장에는 모름지기 가장 편한 옷을 입고 가는 게 장땡이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로 버글거릴 친구의 결혼식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리를 굴려 여러 옷들을 하이브리드로 매치했다. 네이비 블라우스에 아래는 청바지, 검은 로퍼를 신었다. 야구장 가서는 웃옷만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 될 터였다. '결혼식에 청바지는 조금 민폐인가' 하는 생각이 쑥 지나갔지만, 어차피 사진을 찍더라도 상체만 나올 것이고 잠깐 얼굴만 비추고 나올 텐데 뭐… 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가방은 에코백으로, 나의 요술방망이(응원용 봉)를 안 보이도록 깊숙이 쑤셔 박았다. 결혼식에 에코백도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전에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착장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이 더위에도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고양에서 광화문까지 갔다는 사실이며, 잠깐의 결혼식에 비해 길 야구 관람을 생각해서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했다. (그날 결혼식의 신랑인 친구와 찍은 사진은 내 예상과 다르게 전신샷이었다.)


오늘 저녁을 대신할 김밥과 만두까지 야무지게 사서, 잠실 야구장으로 갔다. 토요일 한낮이라 사람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Y는 지하철 출구서부터 터져 나온 인파에 놀란 표정이었다. "이렇게 야구 보러 온 사람이 많다고?" 나도 주말 야구장은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긴 매한가지였다.


3루 파울라인에 바투 붙어 있는 익스트림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헬멧을 받아가야했다. '파울 볼에 맞아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구단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데 서약도 해야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며 이렇게까지 비장해진 건 처음인데. 그러나 막상 주말 한낮을 맞아 더욱 푸르른 야구장의 잔디와 하늘을 보니 공포는 싹 가시고 마음 한 켠이 부풀어올랐다. 올해만 네 번째 보는 야구장 시야에 내가 새삼스레 놀라고 있을 무렵, Y는 나보다 더한 감동인 듯 했다. "어렸을 때 이모랑 이모부 따라 사직 갔던 기억 나는데… 그 때도 이렇게 시야가 넓고 시원했었나?" 정수리로 내리쬐는 햇볕을 도통 피할 수 없는 익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받아온 헬멧을 이리 쓰고 저리 써가며 인증샷을 남겼다. 나는 '이용찬'이 마킹된 NC의 충무공 유니폼과 '손아섭'이 마킹된 원정 유니폼을 들고 왔는데, 손아섭 유니폼은 Y에게 하루 대여해주었다.

2023년 6월 3일의 잠실야구장. 특별히 타구를 더 주의해야 하는 3루 익스트림존이다.


3연전 중 두 번을 보러 오던 지난 5월에 이어 또 NC와 LG의 경기였다. 이날은 선발 맞대결부터가 눈길이 갔다. 리그 최고의 투수인 NC의 페디와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했다 연이은 호투로 3선발 자리를 꿰찬 LG 임찬규의 맞대결이기 때문이었다. 임찬규는 '스톡킹'에서 '오빠'와 함께 나와 입 터는 것을 보고 반하게 된 선수였다. (특유의 위트, 통렬한 자기 반성, 스스럼없는 단장 디스 등) 임찬규와 손아섭은 투타 맞대결을 할 때마다 2루타 이상은 아섭 승, 단타까지는 찬규 승으로 서로 내기를 한댔나 어쩐댔나.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았다. 그런 저런 얘기를 Y에게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역시 사람이 무언가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는 '서사' 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당찬규'가 마운드에 섰다. 3루 익존은 '반지하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기장보다도 살짝 꺼진듯 높이가 낮아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3루 베이스에서도 한참 뒤쪽이라 NC의 3루 베이스 코치인 이종욱의 뒷모습이 투수를 한참 가렸다. 임찬규의 디셉션 동작만 살짝 살짝 보였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은 더 보기 힘들었다. 3루쪽 NC 응원석에서 '짝짝짝짝'이 터져나오면 뭔가 친 것으로 알기로 했다.


5월 한 달 간 승수와 평균자책점이 모두 리그 1위라던 임찬규였으되, 이날 NC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서호철 안타, 박건우 볼넷에 이어 마틴의 2타점 적시타가 터져 나왔다. 4회에는 무려 홈런이 2방이었다. 권희동의 솔로포에 이어 서호철의 스리런 홈런까지. 그 사이에 '오빠'는 2루타를 쳤다. 오늘의 내기는, 완벽히 '오빠'의 승이겠다 싶었다.


더위를 날리는 홈런 세례에, 나와 Y도 연달아 일어나 고성을 질렀다. 익존엔 LG 팬들도 비교적 많아 NC의 공격 이닝 때는 조용했는데, 소리지르는 건 거의 우리 둘 뿐이었다. NC의 공격이 불뿜는 한편으로 '탈KBO급'이라는 페디를 만난 LG의 타선은 비교적 조용했다. 수비 이닝은 휘리릭, 빨리 끝나고 공격 이닝은 길게 이어지는 게 매우 맘에 들었다.


오늘의 일용할 저녁.


이날 경기는 7-3, NC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Y를 데리고 원정팀 버스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선수들에게 퇴근길 사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선수들 이름을 우렁차게 불렀고, 가져온 유니폼에 NC 투수 조민석, 김시훈, 김영규, 하준영의 사인을 받았다. 이 모든 장면을 Y가 영상으로 남겼음은 물론이다.


경기가 끝나고도 여흥이 남은 우리는 근처 투썸플레이스에 들러 한숨 돌리기로 했다. 세상 달달한 밀크쉐이크를 시켜 당을 보충해가며 오늘의 경기를 복기했다. Y는 경기장이 탁 트인 게 너무 시원했다는 평과 함께, 홈런이 펑펑 터져나오는 경기의 짜릿함을, 몇 번 안 듣고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응원가를 부를 때의 쾌감을 말했다. 나도 누구와 함께 응원을 한 것은 고릿적을 빼고는 이날이 처음이어서, 혼자일 때보다 주눅 들지 않고 여러 응원가들을 열창했다. 나는 오늘 본 선수들에 대한 여러 짤들을 뿌리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손아섭은 팀의 주장인데 '악바리'로 유명한 선수고, 평범한 땅볼 타구에도 1루까지 전력으로 질주하는 근성을 가졌으며… 인기가 많은 3번 타자 박건우는 뽀얀 피부로 유명한데, 타격도 타격이거니와 외야에서 홈까지 공을 한 번에 뿌리는 강한 어깨를 가졌으며… 등을 열거하며 유튜브에 나오는 관련 짤을 열심히 Y에게 보여줬다. Y는 적잖이 상기된 얼굴로 내 얘길 들었다. 이거 성공인걸?


이후로 우리의 톡방은 내내 야구 관련 짤들과 야구 기사 등으로 도배되었다. Y는 유튜브에서 '야구 규칙' 등을 뒤져 무엇이 스트라이크인지부터 차근차근 공부를 했다. 선수들 나무위키도 꼼꼼히 읽었다. 먼저 책을 사서 보던 나와는 다소 다른 방식의 '입덕'이었다. Y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야구 얘기로 도배가 됐는데, Y의 친한 회사 동료들이 Y의 외도(?)를 질투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Y는 인스타에 경기 인증샷이나 선수들 사진을 줄기차게 올렸다. NC의 팀스토어에서 야구공이나 수건 같은 관련 굿즈들도 맹렬히 사들였다. 선수 유니폼 말고는 통 관심이 없는 나와는 달리, Y는 그것들을 집 한 켠에 올려두고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다른 야구팬들은 어떤 방식으로 야구를 좋아하는지 통 알 길이 없었는데, Y를 보며 '어느 NC 팬의 삶'을 직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즈음 회사를 그만 둔 Y는 더욱 깊이 야구에 빠져들었다. 같은 퇴사자로서, 야구 말고는 딱히 탐닉할 게 없는 나와 같이 무서운 속도였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TV로 야구를 보며 손으로 문자 중계를 이어갔다. 전에 없던 욕을 마구 뿌려대면서. 그래도 MBTI 상 'T'인 내가 NC에 대해서도 '팩폭'을 하는 쪽이라면, 'F'인 Y는 선수들이 뭘 해도 부드럽게 감싸는 쪽을 택했다. 내가 WBC 기간 내 음주 파문을 설명하며 "'스낵바'라는 공간을 출입한 선수에 대한 노여움과 함께, 그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을 때 Y는 "좋은 걸 뭐 어쩌겠냐"며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 착한 그도, 경기 중 실책성 플레이 등에 대한 급발진은 나보다 더 격한 면이 있었다. 나는 상욕으로 점철된 우리의 톡방을 보며 'Y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Y와 나는 이렇게 16년 새 처음으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심지어 '최애'에 관한 취향도 거의 겹쳐서 또래인 손아섭과 이용찬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소위 남자 보는 눈이 한 번도 겹친 적 없는 우리에게, 처음 일어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나와 똑같이, Y는 손아섭과 이용찬이 또래여서 더욱 응원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야 기껏 회사에 가도 직급이 '과장' 정도지만, 같은 나이에 팀의 '주장'이나 '베테랑'의 무게를 짊어진 선수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고, 나와 똑같은 말을 Y는 했다. 불굴의 이심전심이었다.


직관이 어려우면 함께 우리집에 모여 '집관'을 할 만큼 우리의 전우애는 더욱 돈독해져갔다. 경기의 승패에 따라 매일의 기분이 요동치는 것은 물론이었다.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나오는 만년 꼴찌팀 삼미의 팬인 '나'와 그의 친구처럼, 우리는 소설 속 표현 마냥 '짜장면에 뜬 두 개의 완두콩' 같은 우정을 쌓아나갔다. 인스타그램에 우리의 사진을 올리면 '행복해뵌다'는 댓글이 차곡차곡, 더욱 쌓여갔다. 완벽히 고립돼서 더욱 즐거운 행복이었다.


잠실야구장 3루 익존의 헬멧 쓴 나.



매거진의 이전글 나 소크라테스 응원가 부르고 싶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