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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ug 16. 2023

퇴사 후에도, 집 나간 집중력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21


얼마 전의 일이다. 자정까지 칼럼 마감을 앞두고 있던 나는, 그날 내내 노트북 앞에서 씨름을 했다. 머릿속으로 대강의 얼개를 그려놨음에도, 각 문단의 첫 문장 외에 도통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지 않았다. 이 기사 저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다 다시 글 쓰는 한글 프로그램 화면으로 넘어오곤 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부터 하던 대로, PC 카카오톡도 켜놨다. 회사 소속의 기자일 때, 나는 도무지 PC 카톡이 없으면 일을 못했다. 카톡은 그 때 그 때의 취재 지시나 취재원 연락이 오는 곳이기도 했지만, 회사 동기 및 선후배, 지인들과 잡담을 나누는 창구였다. 마감 시간이 급박해 기사를 쓰면서도 카톡 창을 최소 5개는 열어놓고 여기저기에 답해가며, 그 날의 핫이슈에 놀라거나 분개하고 서로의 마감을 북돋우다 다시 기사창으로 돌아와 기사를 마무리했다. 늘 기사는 '마감이 써준다'는 말을, 나처럼 잘 체감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고 오랜만에 짧은 호흡의 촉박한 마감을 만나, 그 시절 그대로 PC 카톡에서 늦은 밤 나처럼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인 친구와 조우했다. 기사 분량이 얼마나 남았니, 칼럼이 얼마나 남았니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요즘 내가 늘 SNS에 올리는 야구 얘기로 대화 주제가 건너갔다. 친구는 야구에 문외한이지만, 대상을 향한 팬심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터라 내 얘기를 꼬박 경청해주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관심있게 보던 선수 A로까지 이야기가 튀었다. 내가 A에 관한 어렴풋한 추측을 내놓고, 거기에 친구가 '그럴 것 같다'며 확신을 더하자 어느덧 얘기는 기정사실처럼 입력돼 기본 전제가 됐다. 순간 감정적으로 업 앤 다운(Up & Down)을 거듭하며 내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올랐고, 그 홧홧한 열기 때문에 도무지 내 칼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칼럼으로는 뻗지 않았던 생각의 가지가, 영 엄한데서 뻗어가는 형국이었다. 결국에는 팩트 체크를 위해 지인에 지인까지 동원해 그 야밤에 확인을 받고서야 그 해프닝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내 머리는, 불태운 뒤에 남은 재 마냥 정념이 식어 말 그대로 하이얀 상태가 됐다. 마감은 꼬박 1시간 남아 있었고, 그 때부터는 글을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정말로 내 집중력이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도 늘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집중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긴 호흡의 기사가 아니고서야 정보전달이 주 목적인 기사는 문단별로 달막달막, 필요한 정보를 디스크 조각모음하듯 붙이면 끝이었다. 크게 생각의 얼개나 순서가 중요하지 않았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긴 호흡의 칼럼을 쓸 때, 정보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글을 쓸 때 생각의 얼개, 전후, 논리 구조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걸 밑에서부터 다져서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을 때 독자가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더라도, 최소 '아,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전개를 거쳐 이런 결론을 이끌어 내는구나' 정도까지는 가야 '칼럼'일 것이다. 내가 시간의 흐름이나 장소의 변동이 없는 긴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여겨 보고 있었지만 구매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급히 샀다. 정말로 내 스스로가 집중력을 도둑 맞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멀티태스킹'은 컴퓨터라는 기계의 성능인데, 이를 인간에게 가져와 적용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하는 '멀티태스킹'이란 정확히는 '저글링'이다.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의식에서는 아주 매끄러운 경험을 하게 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순간순간 뇌를 재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고요."(60쪽)


아, 나는 정확히 안다. 여러 작업 사이를 오가며 순간순간 뇌를 재설정하는 것, 가끔 노트북도 너무 많은 인터넷 창을 켜두면 버퍼링일 걸리는 것처럼 이 작업과 저 작업 사이를 오가다보면 다시 집중하기까지 버퍼링이 걸린다는 사실을. 지난주 칼럼 마감 사태 때 나는 뼈저리게 겪었다. 특히나 흥분이라는 감정이 개입되고 나니 더더 그 마음을 억지로 식혀서 냉철한 논리로 중무장해야할(그런 걸 쓸 자신은 없지만) 칼럼을 쓰기가 너무 버거웠다. 칼을 벼릴 수 있는 수준의 불이 아니라, 칼을 녹이는 수준의 불이 마음에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퇴사 이후의 나는, 또 다른 방향으로 과각성이 시작됐다. 나는 과몰입 인간이며, 도파민 중독이었고회사에 다닐 때는 주로 일로써 이를 해소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퇴사 후 일상이 잔잔해지며 끝없는 이완만이 계속 됐을 뿐 몰입할 대상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찾은 도파민 가운데 하나가 야구였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함께 야구 직관을 하러 다니는 친구 Y와 늘 얘기하는 한 가지는, 이보다 더한 도파민은 없다는 거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거나 지거나 할 때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의 수치는 기타 여가활동(독서, 영화·콘서트 관람, 물놀이 등의 야외활동)을 크게 상회한다고.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우리 팀 4번 타자가 끝내기 역전 홈런을 쳤을 때, 혹은 내내 이기던 우리 팀이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았을 때 느끼는 환희 혹은 좌절의 기분은 위로든 밑으로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의 정점으로 솟구친다. (나에게는 그렇다.) 이렇게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 번 직관을 다니며 일종의 과각성을 계속해서 경험했더니 별 일이 없는 고요한 상태를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퇴사 이후의 환경은, 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꽂혀 있기 때문에 과각성이 되기 쉽다. 평소에 회사일로 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이 축적돼, 혹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왔던 분이 축적돼 하고 싶은 일, 특히나 순간적 쾌락을 주는 일을 하는데 더욱 골몰하기 때문이다. 나같은 과몰입 인간에게 '이완'은 지루하다. 예를 들면, '난 남들보다 시간이 많으니까 쉬엄쉬엄 해야지'가 아니라 '이런 시간이 언제 또 오겠어 맘껏 놀아야지!' 혹은 '마냥 놀 수는 없으니까 시간 많을 때 자기 계발을 위해서 하나라도 뭘 해야지!'로 수렴하는 것이다. 나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욱 멀티태스킹을 한다. 산책을 할 때, 샤워를 할 때 꼭꼭 시사 라디오를 듣고, 설거지를 하면서 야구 뉴스를 전해주는 유튜브를 보며,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도 시간 아깝다며 열심히 뉴스 기사를 읽는다. 그러다보면 꼭 음쓰 버리는 걸 깜박하고, 수챗구멍을 채운 머리카락 정리하는 걸 잊고, 가끔은 정류장을 놓쳐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곤 한다. 또는 그 시간을 함께 보낼 콘텐츠를 찾느라 산책과 샤워와 설거지가 30분, 1시간씩 뒤로 밀린다.


게다가 내게는, 기록에의 강박이 있다.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졌던 나는 기자로 일할 때 녹취에 목을 맸다. 내 기억력은 믿을 수 없어도, 녹취는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대한도로 사진이나 영상 자료도 많이 남겨 두고두고 쓰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도,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강박에 시달린다. 글로도 쓰고 싶고,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남기고 싶다. 야구를 보러 가서도 줌 기능이 좋지 않은 내 폰카에 화질이 깨질지언정 선수들의 모습을 가급적 많이 담고 싶다. 질이 좋지 않은 영상 장비를 가진 사람이 그나마의 '퀄'을 가진 영상을 찍기 위해서는 피사체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민첩하게 사람들 사이를 뚫고 선수들 근처로 가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게 찍은 영상이 수십개를 넘어, 혼자 보긴 아까워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그 순간을 눈으로 담는 것이 '실감'을 얻기 위해 경기장에 직접 간 취지에 부합하지 않겠느냐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나의 나쁜 기억력을 생각하면 늘 카메라에 담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폰에 찍힌 선수들 영상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표정, 어떤 행동, 어떤 플레이가 담겨 있었다. 그러다보면 경기장에서 집중력은 더욱 포기하게 된다. 와, 써놓고 보니 나는 야구 보러 가서도 노는 게 아니구나. 피곤하다, 나란 인간.


그렇게 9개월째를 살고 있는 내게, <도둑맞은 집중력>이 주는 함의가 컸다. 책은 우리들의 집중력을 앗아가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존재들 - 세계적인 거대 테크 기업 - 이나 살인적인 노동 시간, 허리둘레·심장과 함께 집중력을 파괴하는 가공 음식들에 대한 진단을 하며 '진실은, 전 세계의 집중력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우리는 자신을 탓하고 자기 습관을 바꾸라는 말을 듣고 잇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말이 맞다. 우리를 이렇게 내몬 감시 자본주의, 성장 우선 전략 등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나를 바꾸는 노력부터 하나씩 해보려 한다. 멀티태스킹 하지 않기(집안일 할 때, 샤워할 때, 버스로 다닐 때 핸드폰 보지 않기), 하루 한 시간 핸드폰 없이 산책하기, 시간을 보기 위해 핸드폰 말고 시계를 애용하기(손목 시계를 다시 차고 다니고 있다), 글 쓸 때 PC 카톡 켜지 않기 등등. 그리고 합목적적이지 않은 일, 비효율적인 일에도 조금은 관조적일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무던히 지켜보고 싶다. 그리하여 진짜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참고로 이 글은, 내가 실로 오랜만에(10년은 족히 더 된 것 같다) 핸드폰을 보지 않고, 온라인 메신저나 다른 인터넷 창을 켜지 않고 작성한 글이다. 그 사이에 계속 딴짓을 하고 싶어서 자주 허공에 손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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