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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ug 19. 2023

아섭이가 다시 롯데로 간다면?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14: 또 다시 잠실

6월 27일(화) ~ 6월 28일(수)


'야구장'이라는 저 폰트마저 클래식해 '사회문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잠실 야구장.


나에게 잠실이라는 야구장은 '클래식'이다. 인생에서 처음 만났던 야구장이고, 가장 많이 들렀던 야구장이기에 내가 야구장을 보는 모든 기준은 다 잠실에서 왔다. 야구장 크기, 시야, 단차, 불펜의 위치 등 모든 게 다. 새로운 구장엘 가도 '아, 여기는 잠실보단 작네'(잠실이 국내에서 제일 큰 야구장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잠실은 불펜이 내야에 있는데 여긴 외야에 있네' 혹은 '잠실보단 먹거리가 낫네'(잠실이 음식 가짓수는 많아도 웬만한 타구장들보다 퀄리티가 굉장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등으로 철저히 잠실 기준의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눈물 콧물 바람 휘날렸던 광주 원정 이후, Y와 나는 가까운 수도권 원정은 거를 수가 없는 열혈 팬이 돼 있었다. 창원 6연전 이후 이어진 잠실, 수원, 고척에서의 수도권 9연전은 가능한 한 모두 가겠노라고 의지를 불태우게 됐다. 개중에 가장 만만한 잠실은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온 잠실의 3루 내야석은 여름이 더욱 깊어짐에 따라 직사광선이 정수리를 마구 두들겼다. 캡 모자에 이어 양산을 쓰거나, 가지고 온 유니폼을 부르카처럼 두르며 햇볕을 막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오늘 경기는 NC vs 두산. 이번 시즌 잠실에서 본 경기가 다 LG 경기였기에, 처음으로 보는 NC 대 두산전이었다.


여타 팀에 비해 두산을 볼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은, NC의 주축 선수 대부분이 두산을 친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수 이용찬이 두산에서만 14년을 뛰다 2021년 FA로 NC로 넘어왔고, 붙박이 3번타자인 박건우도 2022 시즌을 앞두고 두산서 NC로 왔다. 올 시즌 직전에도 포수 박세혁이 두산에서 적을 옮겨 NC로 와서, 이용찬과 다시 배터리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 전에는 KBO 최고의 포수라는 양의지가 두산에서 8년을 있다가 2019년 NC로 건너왔고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일군 뒤 올해부터는 다시 두산 소속으로 뛰고 있다. 나와 Y는 이용찬, 박건우, 박세혁의 이전 사진 수백장을 보면서 두산 유니폼에도 더러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야구에 '차애'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꼽자면 두산이 거기에 가까울 것이라고(우리의 소중한 자원들을 인큐베이팅 해준 곳이기 때문에!) 여러번 얘기를 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잠실 3루 응원석. 나는 115블록에 앉는 걸 좋아한다. 바로 밑에 원정팀 불펜이 있는데, 개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선수들이 피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3루 원정석에서는 다수의 'NC 양의지'(NC 유니폼에 '양의지'를 마킹한 사람)와 '두산 박건우'(두산 유니폼에 '박건우'를 마킹한 사람)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NC 양의지'는 마산 NC파크에서도 자주 본 레퍼토리였는데, 그는 2019년 NC로 이적한 이래 줄곧 팀내 유니폼 판매 순위 1, 2위를 다퉜었기 때문이다. '두산 박건우'는 그가 두산 소속이었던 2009~2021년이라는 무려 12년에 달하는 기간 중 어느 순간에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팬덤의 증거일 것이다. 그걸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저 멀리 두산 더그아웃에서 '90즈'(두산 소속으로 절친했던 90년생 3인방 허경민-정수근-박건우를 이른다)가 재회해 노닥거리고 있었다. 착잡을 넘어 울적해졌다. Y에게 말했다.


"박건우 두산 유니폼 입은 사람 되게 많다."

"그러게. 저 사람들은 속이 찢어지겠지?"

"이적한 지 오래 됐는데 아직도?"

"그래도 또 이렇게 경기장까지 와서, NC 소속 박건우를 보면 좀 그렇지 않을까?"


이것은 경기장에 가서 시간이 짬짬이 남을 때, 혹은 카톡으로 선수들 짤을 나누다 더 이상 떡밥이 떨어졌을 때 우리가 자주 나누는 대화의 연장선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아섭이가 롯데 다시 가면 어떡할래?"

라고 내가 먼저 선공을 때리면,


"용찬이가 두산 다시 가면?"

이라며 Y가 반격한다.


내 물음에 Y는 "와, 그러면 너무 배신감 들 거 같은데"라며 "딴 팀도 아니고 롯데에서 NC 올 때는 건넌 다리 불사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는 거지!" 라는 말을 덧붙였다. 롯데와 NC가 갖는 연고지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남 창원을 연고로 하는 NC가 창단할 때 부산이 연고인 롯데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더라는 서사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용찬 두산 컴백'에 대한 내 대답은 사뭇 달랐다. "아싸, 잠실이 홈이니까 더 자주 보고 좋겠네! 두산 올드 유니폼에 '이용찬' 마킹해서 입고 다녀야지!" (나는 두산의 옛날 유니폼이 10개 구단 유니폼 가운데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라고 답해서 나보다 더 'NC 원팀' 기조에 충실한 Y의 부아를 돋우었다. (실로 F스러운 Y와, T스러운 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저것은 단순 도발에 불과할 뿐, 하나하나 이치를 따져서 말하다보면 결국 우리는 'NC가 NC여서 좋아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든든한 캡틴 아섭이가 있고, 컨택 능력도 좋지만 주루도 잘하는 '날쌘돌이' 민우와 쳐야 할 떄 쳐 주는 건우, 최고의 파이어볼러 페디와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클로저 용찬 등등…. 오늘의 플레이는 이들이 모두 있어서 볼 수 있는, 오늘 하루 밖에 없는 플레이이고, NC의 오늘을 응원하러 나와 Y는 이 용광로 속에도 야구장에 나와 있는 것이다.(때론 팔도를 누비며) 결과적으론 우리가 좋아하는 아섭, 민우, 건우, 용찬, 페디, 주원, 마틴 등등이 다 있는 지금이 'NC의 황금기'라는 평화롭고 스스로도 적이 안심이 되는 결론에 다다랐다.


NC의 명물이 된 경기 직전의 명언 타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안감에 채찍질을 하는 것들은 있다. 가령, 타팀의 일임에도 우리가 가슴 아프게 봤던 것은 손아섭의 NC 이적 당시 관련 굿즈들을 중고 시장에 내놨던 판매자다. 그는 손아섭 유니폼 90벌, 2000안타 기념 미니 배트, 여러 기록 기념구, 사인볼 다수 등의 여러 굿즈들을 일괄 내놨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좋아해서 열심히 응원한 선수였지만 이제는 더 응원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내가 왜 부산에 태어나서 이 팀을 응원하고 있는지 아쉬울 따름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단 두 문장인데, 그 어떤 긴 말보다 마음을 후벼판다.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알았던지, 아섭도 나름으로 노력했다. 사실 나의 NC 입덕에 큰 영향을 미친 선수가, 아니 제1의 트리거가 된 선수가 아섭이다. 그의 악바리 근성, 워크에식 등도 존경스러웠지만 딴 것보다도 이적하며 지역 신문인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낸 광고에서 그의 품격이 느껴졌다. "보내주신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며 "여러모로 부족한 저에게 보내주신 롯데 자이언츠 팬분들의 무한한 사랑을 평생 가슴속에 간직하겠습니다"라는 것. 마지막으로 "최고의 롯데 자이언츠 팬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까지. 그리고 나는 봤다. 이적 소식에 울며 슬퍼하는 롯데 팬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그가 하나하나 '하트'를 누르며 미안함을 표했던 것을.


일반 회사원들의 이직은 사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물론, 간혹 노골적인 서운함을 드러내는 동료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건 촌스럽게 느껴지는 게 요즘 분위기 같다. 'MZ오피스' 같은데서 보는 것처럼 되레 유망한 기업의 면접장에서 회사 동료를 경쟁자로 만나는 게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이적이 직장인들 이직 마냥 쿨하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팬들은 그 선수까지 한 데 묶어 '원팀'으로서의 팀을 사랑한 것이기에, 조금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구단이 매우 고약한 게 아니라면) 팀에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팬들의 심정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가 이적하면, 그 선수를 팀의 일원으로 응원했던 나의 한 시절이 떠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손아섭의 유니폼만 90벌 이상을 모았던 그 팬처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직이 잦았던 Y는 NC의 '프차'(프랜차이즈) 박민우를 그런 면에서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한 회사에 진득하게, 오래 다니는 모습이 좋아뵌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면 박민우는 더그아웃에서도 유독 화이팅을 많이 불어넣고, 다른 선수들의 안타나 호투에도 내 일처럼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잠깐 임시 주장을 한 전력도 있지만, 창단과 더불어 입단한 프랜차이즈 스타여서 그런지 'NC = 나' 같은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돋보인다.


물론 NC 팬인 입장에서, 박민우는 특별하다. 그렇게 구단에 충성도가 높은 선수는, 구단이나 팬 입장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적생들, 혹은 저니맨(Journeyman)이라고 불리는 이적이 잦은 선수들의 진정성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오래 지내 정 들었던 팀을 떠나야 했던 나름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팀이 곧 기회의 땅이었을테다. 어딜 가서나 일부러 못하려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모두가 그 때의 진심, 순간의 진심을 품고 연습을 하고 플레이를 했겠지, 라고 약간의 저니맨 같은 삶을 사는 나는 혼자 생각했다.


경기가 시작돼 양의지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응원가인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 안타를 날려줘요~ 홈런을 날려줘요~"가 고막을 때렸다. 다른 선수들 타석 때와는 비교되는 데시벨이었다. 유튜브에는 '양의지 두산 복귀 첫 타석'이라는 영상이 즐비할 만큼, 그의 복귀를 바랐던 두산 팬들의 염원이 느껴졌다. 두산 3연전의 이틀 째 경기에서는 두산에서만 14년을 뛰었던 이용찬이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뒷문을 굳게 걸어 잠궜다. 두산에서 함께 뛰었던 박세혁과 배터리를 맞춰, 양의지를 유격수 땅볼로 잡았다.


뭐, 그런 것이지. 사람은 자기 쓸모를 찾아가는 것이지. 그리고 그렇게 찾아온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고 그날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2루수 김한별의 호수비를 보며 생각했다. 공이 오며 죽어라 따라 붙는 야수들처럼. 나도 오늘의 NC와 오늘의 감정, 나의 쓸모를 바라는 순간에 충실하자고 탕아가 된 저니우먼 마냥 여러번 다짐했다.


멀리 건너다보이는 두산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주중 경기라 사람이 많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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