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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Dec 08. 2023

야구장에 가면 MBTI를 알 수 있다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20: 플레이오프 1차전 (NC vs KT)

2023년 10월 30일(월)

 

NC의 야구는 여름에서 끝나리라던 뭇 전문가들의 예측과 달리 가을을 넘어 겨울의 문턱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와일드카드전까지는 먼저 1승을 챙긴 상태로 시작하는 거라 '이기겠거니' 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작년 우승팀 SSG을 맞아 내처 3연승을 달릴 것이라고는 팬들도 예상 못했다. (적어도 나의 예상 밖의 일이긴 했다.) 승전가도를 달리는 선수들 덕에 나의 야구생활도 폭풍 질주하기 시작했다. (겨울에 닥칠 금단 증상을 걱정했던 게 먼 옛 일처럼 느껴질 만큼)


전쟁의 서막은 '피켓팅'이었다. KT와의 플레이오프 1·2·5차전은 수원에서, 3·4차전은 창원에서 열리는데 내가 가고자 한 것은 역시 1차전이었다. 5차전까지 갈지는 경기 결과에 따라 미지수고, 3·4차전은 창원이니까 아무래도 어렵고, 그렇다면 1·2차전인데 아무래도 승부 전체의 향방을 좌우할 1차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2차전도 가고 싶었지만 나에게도 생업이라는 게 있기에 좀 참아야 했다.) 인터파크 시간 오후 2시에 맞춰 '땡'하고 들어갔다.


물론 이번에도 박이 터졌고, 나는 6000번째 대기자였나 그랬다. 내가 노리는 자리는 언제나 그랬듯 3루 응원석 중에서도 타석·마운드에 가까운 쪽이었다.


야구장에서 여러 자리에 앉아 보면, 자신이 I인지 E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확신의 'E'들은 응원단상 앞 응원석을 선호한다. 그 자리는 공격 이닝 내내 올타임 스탠딩도 불사하며 응원단장의 진두지휘 하에 각 선수들 등장곡, 응원가에 맞춰 현란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동시 경기 진행 상황도 기민하게 살펴야 한다. TV 중계나 구단 유튜브 카메라에 잡히기 가장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나는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전에 만난 O님의 도움으로 처음 응원단상 앞 응원지정석에 앉았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올 타임 스탠딩을 소화했는데 가히 도파민이 터지고, N뽕도 터지고, 가을 한복판에 땀샘도 터지는, 궁극의 자리였다. 내가 목청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전에 없이 춤사위에 온 힘을 쏟을 때 옆에 선 O님의 일사불란함에 몇 수 배운 자리이기도 했다. O님은 그 때 그 때 다른 응원도구를 꺼내 응원했다. 손아섭 등장 땐 그의 플레이어데이 굿즈에 포함된 플래카드를, 오영수 등장 땐 그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단체곡에서는 NC의 민트색 타올을, 그 외엔 응원 배트를 드는 식이었다. 수비 이닝 땐 샤인머스캣을 먹어가며 당을 충전하고, 옆에 앉은 처음 보는 이에게도 권하며, 심판 판정이 의심스러울 땐 중계 화면도 켜서 스트존을 정확히 확인했다. 머뭇거림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응원의 질서정연함에, 나는 탄복하고 속으로 박수도 치고 밖으로도 박수를 쳤다. (그날 O님의 열성적인 응원 덕에 나와 O님은 함께 TV 뉴스 화면에 잡혔다.)


'응지' 입문 치고 너무 황홀한 경험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수들에 좀 더 가까이 가고픈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에 NC 팬계정을 만들어 부지런히 짤을 찍어 올리게 된 이후로, 더욱 강력해진 열망이었다. 테이블이 있는 포수후면석 등은 가격도 비싸고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까, 타협 가능한 선에서 홈플레이트와 3루 사이, 최대한 앞열로 가자는 게 나의 목표였다.(그리고 나는, 7회쯤에는 외야에 불펜 쪽으로 가서 몸 푸는 불펜 투수들을 모습을 영상에 담는 루틴이 생겼다.)


나의 자리에 관한 니즈는 대개 Y의 니즈와 비슷했다. Y는 취업 이후 전만큼은 야구장에 자주 못 가지만, 휴일이면 곧잘 야구장으로 향했다. 게다가 플레이오프 1차전 때는 반차를 내고 가겠다고 선언한 바였다. 직장과 카페에서(Y 직장, 나 카페) 각자 피켓팅에 전심전력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내 앞에 6000명이 먼저 입장한 다음, 나도 피켓팅 대전에 입장했다. 메뚜기 떼가 훑고 간 논 마냥 남은 자리가 없었다. 뭐야, 이렇게나 빡세? 카카오톡 건너에서 Y도 어김없이 패전보를 울려왔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 50번이 넘는 티켓팅을 겪어본 결과, 결국 답은 '간절력'과 '집요함'에 있다는 것을 학습한 나는 애써 침착하게 새로고침을 갈겼다. 2시 30분까지만 해야지, 나도 일이란 게 있잖아? 30분, 35분, 40분이 다가도록 나는 '일'이란 게 없는 사람 마냥 전심전력으로 새로고침을 눌러댔다. 그러던 3시 19분. 중앙테이블석(3인)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어? 손으로 터치. 어??? 결제를 요하는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어????????? 총 24만 3000원. 결제.


그 3인석은, 중앙테이블석 가운데서도 맨 앞열, 정말로 포수와 타석 바로 뒷자리였다. 중간석에서 살짝 왼쪽, 3루쪽으로 치우친 자리여서 원정 더그아웃을 보기에도 최적인 자리였다. 아니, 이런 자리가 나에게? 응지도 못구했는데? 물론 나는 정규시즌 중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시즌 종료 직전의 경기에서 운좋게 챔피언석을 구해 포수 뒤에 바로 앉아본 전력이 있다. 그러나 그건 페넌트레이스고, 이건 플레이오프다. 게다가 그땐 나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Y 자리까지 같이 구해야 할 책무가 나에겐 있었다. 그걸 한큐에 성공한 것이었다. 3인석 중 나와 Y자리를 제외한 공석 하나는, NC 팬카페를 통해 파티원을 구했다. 모든 게 완벽한 10월 26일의 일이었다.


그 후로 경기가 있기까지 나흘을 정결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나는 이 다시 없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꼬박 고민했다. 원 헌드레드 퍼센트로 플레이오프 포수후면석을 즐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 번째 스텝으론 야구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 있으되 처박아뒀던 '야구 교과서'라는 책을 꺼내 투수들 구질에 따른 그립, 타격폼 메커니즘, 주루 플레이의 기초 등을 고3 마냥 책에 줄쳐가며 공부했다. 생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공부 시간은 잠자기 전 1시간으로 정해 두었다.


두 번째 스텝, 갤럭시 울트라23을 대여했다. '반 찍덕'인 나는 그간 나의 갤럭시 Z플립3로 모든 영상을 찍어왔는데, 그 때마다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카메라 기능이 유독 안 좋은 Z플립은 엄청난 노이즈를 매번 유발했으므로, 멀리서 잡은 선수들 얼굴은 표정을 알 수 없게 뭉그러져 있었다. 기왕 자리도 좋은 김에 기기를 업그레이드 해야겠다고 여겼는데, 당장에 카메라나 폰을 사기엔 자금도 시간도 부족했다. 친구의 조언대로 대포 카메라를 대여할까도 고민했는데, 그걸 들고 있는다 해서 갑자기 없던 카메라 스킬이 생기는 것도 아닐테고 비싼 대포 카메라에 생채기라도 낼까 걱정도 됐다. 그래서 고민 끝 요즘 대포여신들도 즐겨 쓴다는 갤럭시 울트라23을 대여하는 방안을 알아봤다. 나처럼 콘서트와 야구장 등등에서 멀찍이서라도 최애를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로 관련 후기가 넘쳐났다. 만원이 좀 넘는 금액에 하루 대여하기로 했다.


여러가지로 예열을 하다 보니, 결국 D-DAY가 왔다. 수원 위즈파크로 가는 길에 대여한 갤 울트라23을 받아왔다. 뒤이어 나타난 Y와 선수들 출근길도 봤다. 다들 표정이 좋았다. 긴장한 기색 같은 게 보이지 않아서, 더더 좋았다. 긴장은 나와 Y가 더 한 것 같았다.


티켓을 현장 수령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NC 타자들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한창 타격 연습에 집중하고 있었을 즈음이었는데, 우리의 바로 앞에 그들이 있었다. Y의 표현에 따르면 선수들 침방울이 튈 것만치 바투 붙어 있는 자리였다. 뒤늦게 온 파티원 분께도 지류 티켓을 전달했는데, 그 분이 자리에 앉아서는 "정말 가깝다"며 "고맙다"고 할 만치 자리는 정말 선수들과 가까웠다. 선수들간의 사담도 다 들릴 정도였다. 나와 Y는 대여해온 갤 울트라를 가지고 경기장 이곳저곳을 휘저어 다니며 '슈퍼 망원렌즈'로 선수들의 여러 모습을 담았다. Y는 연신 "디즈니랜드에 온 것 같다"며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올해만 40번은 본 이용찬이 앞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현실이 맞긴 맞는 것 같았다.


그 날 우리의 시야는 이랬다.


위팍의 명물인 정지영커피로스터스의 코코넛커피를 하나씩 입에 물고, 두 번째 명물인 진미통닭을 테이크아웃해가지고 와서, 맥주 두 잔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6시 30분, 이윽고 경기가 시작됐다. 부상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던 우리의 에이스, 아니 KBO 최고의 투수 에릭 페디가 마운드에 올랐다. 부상 여파로 경기 감각이 떨어졌을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단순 기우라는 것을 그의 피칭이 온몸으로 증명해보였다. KT의 공격 이닝, 즉 우리의 수비 이닝은 더 없이 짧았다.



반면 우리의 공격 이닝은 길디 길었다. '20승 투수' 페디와 '무패 투수' KT 쿠에바스의 대결이라 투수전 양상이지 않을까 했는데, NC의 타자들은 쿠에바스의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쳤다. SSG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NC 타자들이 상대편 투수의 전력분석을 완벽히 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와 Y 사이의 토템은'1회에 오빠(손아섭)가 출루하면 그 날은 되는 날이다'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날 캡틴은 1회부터 우중간 안타로 선두 타자 출루에 성공했고, 이어 박민우 2루타, 마틴 좌익수 뜬공으로 이어져 선취점을 냈다. 2회에는 '마산 대장' 오영수가 솔로포를 터뜨렸다. 더그아웃이 흥분으로 넘실 거렸다. 나와 Y도 있는대로 소리를 질러가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 넓은 야구장에서 확보 가능한 시야란 앉은 자리에 따라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 날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타자들의 대기 타석 루틴이나, 더그아웃 상황 같은 것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기 타석에서는 홈인 해서 들어오는 주자가 있으면 하이파이브도 하고(아웃 돼서 들어오는 주자 혹은 타자에게는 엉덩이도 토닥이고) 방망이에 미끄럼 방지 스프레이도 뿌리고 각자의 루틴에 따라 허공에 방망이를 헬기 띄우듯 돌려봤다가 앞선 타자 타이밍에 맞춰 스윙도 몇 번 날려보는 등 대기 타석은 대기 타석대로 분주했다. 포수 바로 뒤편, 후면석 1열이었기에 약간은 타석에 선 타자의 입장이 되어 날아오는 볼을 바라보기도 했다. 시속 150km/h를 쉽게 넘나드는 페디의 공은 스쳐도 사망일 듯한 느낌이라 앞에 서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릴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쳐내는지(물론 쳐내는 타자가 많지는 않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이 됐다. 데드볼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는 얘기나, 중·고교 때는 투타 겸업을 하다 공이 무서워 투수로 전향했다는 이야기 등에 심히 공감이 갔다.


대기 타석에서도 부지런 그 잡채인 캡틴.


이날 5회에는 그 점잖은 페디가 주심의 볼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도 연출됐는데, 얼마나 놀랐느냐 하면 벤치에 있던 강인권 감독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말릴 정도였다. 투수들이 볼 판정에 민감한거야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기는 경기에서는 불필요한 제스처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 뛰쳐나가, 페디를 말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페디가 주는 에이스침대 같은 안온함으로, 경기를 보는 내 마음도 시종일관 편안했다. 타자들도 분전한 이날의 경기에서, 4회에만 4점을 뽑아내며 8-1로 일찌감치 달아났다. 2사 1, 2루 상황에서 권희동의 3루타로 1, 2루에 있던 손아섭, 박민우가 한꺼번에 들어와 어깨동무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내 마음에 저절로 난로가 지펴졌다. 이날 스타팅 멤버가 아닌 선수들도 더그아웃에서 열심히 NC의 상징인 민트색 타올을 흔들며 응원의 불을 지피고 있었다. 수원을 찾을 때마다 연이은 패배로 'KT 트라우마'가 있던 나와 Y가 모처럼 안도하며 보는 경기였다.


성난 페디와 급박했던 마운드.

위기는 의외의 지점에서 왔다. 벌어진 점수차에도 이날 NC는 필승조를 가동, 9회말 2사 만루에 '클로저' 이용찬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의 팬인 나로서는 너무 반가운 지점… 인 줄 알았으나 그가 초구를 던지는 순간 '딱' 배정대의 타구가 거침없이 하늘로 포물선을 그렸다. 만루 홈런이었다. 배정대는 지난 8월 12일에도 이용찬을 상대로 9회말 동점타를 뽑아내 결국 4-3 승리를 이끈 바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점수는 9-5였지만, 1구 1홈런 4실점이라니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다. 다음 타자 문상철을 투수 뜬공으로 잡고, 경기는 끝이 났다. Y가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나는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이용찬의 뒤꽁무니를 오래 바라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겼고, 정규 시즌 전적이 6승 10패로 열세였던 KT를 상대로 이겨서 더욱 값진 플레이오프 첫승이었다. 역대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확률은 78.1%라던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78.1% 가까워진 마냥 마음이 부산하게 꼼지락거렸다. 이날 서울로 가는 버스는 대기만 1시간 이상이었지만, 연신 야구장에서 찍은 영상을 들여다보고 새로 올라온 뉴스 기사를 확인하고 선수들 인터뷰를 보느라 다리가 저리는지 마는지도 체감할 수 없는 일종의 진공 상태가 됐다. "우리 진짜 코시(코리안 시리즈) 가는 거야? ㅠㅠ" 아직 코시로 가려면 2승이 더 남은 시점이었지만, 그런 건 모르겠고 풍선으로 치면 바람이 78.1% 이상 부풀어오른 나와 Y의 가슴이 도통 사그라들질 않는 밤이었다.


9회 2사 만루에 나와 몸 풀던 클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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