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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Dec 27. 2023

'타팀 팬' 아빠와 마지막 야구를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22

2023년 11월 5일(일)


올해 무수히 많은 이들과 야구장엘 갔다. 더러 혼자였으나 대부분은 Y와 함께였고, 15년 만에 재회한 여고 동창, 기자 생활을 같이 했으되 지금은 둘다 퇴사한 처지인 친구, 문화부 기자 시절 알고 지냈던 취재원,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NC팬 등등. 그러나 내게 가장 먼저 야구라는 세계를 알게 한 사람인 아빠와는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았다. 약간 '아빠와 같이 클럽을 간다면?' 싶은 느낌이기도 하고(노래하고 춤추는 곳이니 클럽과 비슷하기도 하다) 마음 한 켠이 거북해서, 행동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시즌 야구가 끝나기 전에는 꼭 한 번 아빠와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NC가 한국시리즈에 가면 같이 가자고 얘기를 해뒀다. NC가 연승을 거두던 플레이오프 2차전 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확률에 기반한 팩트에 가까웠다. 그러나 3, 4차전에서 거푸 패배하고, '리버스 스윕'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나는 초조해졌다. 한국시리즈까지 기다렸다간, 아빠와 NC의 야구를 못 볼 수도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NC의 야구였고, 그것만이 나에게 '야구'였다. 원래도 가려던 수원에서 열리는 5차전에, 아빠와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행한 것이, 그날은 아빠가 출근을 안하는 일요일이었다.


예매 역시 쉽사리 성공했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11월 초, 겨울의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비 소식이 있었다. 수원의 KT 위즈파크는 내가 사는 고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40분 가량 걸렸다. 그것도 운좋게 기다림 없이 환승을 했을 때의 시간이지, 타이밍이 안 좋으면 20~30분에 한 대씩 오는 수원행 버스를 기다리다 2시간 여 걸려서 도착할 가능성이 컸다. 왕복 4시간 가까이 길에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하늘이 잔뜩 내려 앉았다. 경기 직전까지 개최 여부를 알기 힘들겠다, 싶었다. 팬카페에는 지방에서 출발하는 이들이 경기 우천취소 가능성을 염려하는 글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그에 비하면 편도 2시간은 '껌'이었지만, 껌에게도 나름의 고민은 있는 법이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에는 도착해 티켓 교환 등을 마무리 해야 할 것이었다. 안양에 사셔서, 수원에 1시간이면 도착하는 아빠에게는 12시에 출발하시라 카톡을 보냈다. 나는 오전 11시에 출발을 했다.


광역버스의 입석이 금지된 가운데, 나는 위팍으로 가는 여러대의 광역버스를 놓쳤다. 의왕톨게이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KT 유니폼을 입었거나 응원 도구 등을 손에 든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버스를 다섯대쯤 보내고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초조한 마음으로 위팍에 도착하니, 예상시간보다 30분 늦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먼저 도착한 아빠와 만났다. 지류 티켓으로 교환하고, 야구장에 입장했다. 오전부터 내린 비 때문에 의자는 축축했지만, 실시간으로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축축한 바닥 때문에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오롯이 무릎 위에 안고 앉았다. 응원석 답게, 앞뒤 양옆으로는 응원 타올 및 배트, NC 마스코트 머리띠 등을 한 젊은이들이 빼곡히 앉았다. 아빠는 "저 머리띠한 사람은 광팬"이라며 '킬킬' 웃었다. 자기 딸이 머리띠만 안 했다 뿐이지 누구 못지 않은 '광팬'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응원단장의 주도 하에 응원이 시작되자 아빠는 아예 귀를 막아 버렸다. "아이고, 시끄러워라. 저기 저 자리는 비싸냐?" 아빠가 가리킨 저기 저 자리는, 포수 후면의 테이블석으로 응원보다는 관람을 택한 이들이 점잖게들 앉아 있었다. '비싼 거야 둘째 치고, 저 자리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요. 사실 이 자리 구하기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고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음엔 저 자리 갑세~" 하는 정도로 마무리 했다.


음식으로는 위팍 별미인 '진미통닭'을 어플로 시켰다. 불과 2시간 전에 점심을 먹었지만, 야구장에선 뭘 먹어야 한다는 아빠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위팍은 자리에 가만 앉아서 먹거리를 앱으로 시킬 수 있었다. 자리까지 가져다 주는 건 아니고, 직접 수령은 해야 했지만. 원래는 10분이면 찾아가라는 알람이 뜨는데, 이 날은 경기가 시작되고도 40분이 넘도록 음식이 다 됐다는 소식이 없었다. 앱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꼬박 그 앞에서 기다려야 했단 말인가. 아빠가 옆에 있어서인지, 야구장이 디지털 리터러시가 부족한 이들에게 얼마나 불친절한 공간인지 다시금 실감이 됐다. 예매에서부터 먹거리 구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로 모든 게 다 가능한 세상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현장 발매를 기다리거나, 혹은 통닭 하나를 사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이의 고단함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그마저도 티켓 발매의 경우는 헛수고가 될 공산이 크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디지털 세상의 문법을 잘 모른다고 해서, 야구 팬이 아닐리는 없는데.


통닭을 기다리는 대신 생맥 한 잔씩을 입에 물고 경기를 지켜봤다. 아빠는 내가 챙겨간 '손아섭 유니폼' 입기는 마다했으나, 친구들한테 보낼 인증샷에는 연신 욕심을 냈다. 양옆으로 짐을 잔뜩 짊어진 이들이 앉아 있어 운신이 어려운 와중에 여러 각도로 인증샷을 남겼다. 아빠가 부리나케 동창들 단톡방과 네이버 '밴드'에 사진을 올렸다. 아빠는 2년 전 쯤 동생과 함께 고척돔을 찾은 게 가장 최근의 직관이었다.


유전자의 힘은 무섭다.


비는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귀신 같이 그쳐, 경기는 순탄하게 시작됐다. 우리의 선발 투수는 신민혁, KT는 벤자민이었다. 마운드에 오른 두 선수를 보는데, 심경이 복잡했다. 1차전에 등판했던 NC의 에이스 페디가 5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지 않는 것을 두고, 전날까지 언론에서는 무지하게 두들겨 댔다.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NC의 강인권 감독은 4차전 직후부터 페디 등판 불발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기사들은, 페디의 결정이 팀보다는 개인을 생각한 이기적인 결정이라며 힐난했다. 1차전에 이어 사흘만인 4차전에 다시 등판한 KT 쿠에바스를 칭찬하며 비교하기도 했다. 페디는 정규시즌 끝물에 타구에 팔을 맞은 후 줄곧 컨디션 난조를 호소했다. 그를 두고 기사에서는 '골절 등의 부상이 아니라면 던질 수도 있었다'며 페디의 컨디션 난조를 경미한 부상 정도로 몰고 갔다. 시즌 초반 하위권으로 분류되던 NC를 정규시즌 4위에 올려놓기까지 '20승 투수' 페디의공이 지대함을 NC 팬 모두가 알고 있는데, 에이스의 팀을 향한 로열티를 폄훼해가며 팬들의 기를 죽이는 기사가 연일 생산되고 있었다. 골절 정도의 심각한 부상만 아니면 투수는 다 던져야 하나. 별다른 근거 없이 선수의 진의를 의심하는 기사들에 열이 뻗쳐 올랐다. 그럴수록, 마운드에 오른 우리의 선발 신민혁을 더욱 목청껏 응원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의 직관은 여러모로 어려웠는데, 그것은 아빠가 '삼팬'이었기 때문이다. 가을야구에서 일찍 탈락한 삼성의 원년팬인 아빠는 그 극성스런 NC 응원석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팔짱 끼고 느긋이 경기를 보는 이였다. 틈틈이 "벤자민한테 되겄나~"하며 초치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나는 신민혁이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제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음을 피력했으나, 아빠는 "페디면 몰라도" 라며 내 신경을 박박 긁었다. Y와 함께라면 일심동체 '뇌클라우드'가 발동되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수준이었을텐데… 나는 그 때마다 응원단상 앞쪽에서 응원하고 있을 Y에게 카톡을 보냈다. 역시나 찰떡같은 답장이 돌아왔다. 가끔 아빠에게는 "삼성 내년에는 뭐 되겄나"하며 '수동 공격'을 날렸는데, 그 때마다 아빠는 말을 잊은 듯 '한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아빠에게는 내가 NC팬인 것도 다소간 의문인 듯 했다.


"왜 NC 팬이여?"

"내 고향이 창원이니께."

"니 고향이 내가 태어난 대구가 아니고 창원이여?"


엄밀히 말하면 내 출생지는 아빠의 고향인 대구가 맞다. 엄마가 나를 시댁 근처의 대구 경북대 인근에서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가 산후 조리를 위해 머문 잠깐 이후 곧바로 거주지이던 인천으로 옮겨갔고, 이후 초, 중, 고 시절을 모두 창원(정확히는 진해)에서 보냈다.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를 줄곧 창원에서 살았다 하면, 내 고향은 당연히 창원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지만 아빠는 나와 달랐다. 당신의 고향이 대구이면, 딸내미의 고향도 단연코 대구라는 게(본적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게) 아빠의 생각이었다.  "대구 출생, 창원 출신이지."하고 대꾸했더니 아빠가 세상 말세라는 듯 했다. "허 참 나"


투수전 양상으로 흘러가던 경기의 흐름이 달라진 건 3회였다. NC와의 경기 때마다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던 KT 유격수 김상수가 2연속 실책을 기록했다. 1사 1, 2루. 손아섭의 좌전 안타, 서호철의 희생플라이로 1-0으로 앞서갔다. 5회에도 손아섭의 적시타로 한 점 더 달아났다. 야구는 역시 선취점, 기세의 경기이고 연이은 패배로 '리버스 스윕' 위기에 몰린 NC에게는 더욱 절실한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5회말, 그때까지 '퍼펙트'를 기록하던 신민혁의 기세가 꺾였다. 장성우-문상철에 대타로 나온 김민혁까지 2루타-안타-2루타… 기뻐했던 것도 잠시, 경기는 원점이 됐다.


긴박했던 5회가 끝나고, 클리닝 타임이 찾아왔다. 필드에 박세혁이 캐치볼하며 몸을 푸는 게 보였다.


"오, 빡세 나와서 몸 푼다."

"빡세가 누구여?"


두어번 생맥주를 받아와, 얼근하게 취한 아빠가 말했다.


"두산에서 온 포수 박세혁. 원래 주전이었잖아."

"원래 5회 끝나면 후보 선수들 나와서 몸 푸는 겨~"

"나도 알거든. 아빠 딸 수십번 야구장 왔거든."

"나는 야구 본 세월만 수십년이다, 이놈아."


비가 내리다 멈춰 11월 초 치곤 굉장히 덥고 습한 날씨 가운데, 부녀의 대화는 매번 핀트가 어긋났다. 그것은 날씨 탓이기도 했고, 응원 열기로 도대체 일상 대화가 불가능한 환경 탓이기도 했고, 각자가 흥분해 있어서 더욱 청해력이 떨어진 탓도 있었으나 더욱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빠의 '맨스플레인'을 참지 못한 까닭이었다. 기본적으로 야구장에 남성과 함께 가는 일은, 몸에 힘을 꽉 주고 가는 일이다. 상당수 남성들은 여성들이 가진 야구 지식이 자신보다 못할 것이라는 전제 때문에 "에이~" 하는 접두어로 시작하는 말투와 함께, 결국은 다들 '썰'에 불과한 얘기를 하는 것인데도 자신의 말은 결단코 맞으며 너의 말은 '낭설'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물론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팬이었던 아빠의 구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너는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하는 얘기에는 입을 앙 다물고 되받아 칠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선발 투수 신민혁이 강판되고, NC가 자랑하는 불펜 김영규-류진욱이 나섰던 6회에서 KT는 1점을 더 앞서 나갔다. 손동현-박영현-김재윤으로 이어지는 KT 불펜의 무서움을 알았기에, 그 1점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어줍잖게 마신 맥주 한 모금의 기운이 불쾌지수를 더욱 드높였다. 내 마음 마냥 NC의 타선도 갑갑했다. 내 등 뒤에 적힌 위팍의 구호 "수원에 9회말은 없습니다"가 점점 더 무서운 기세로 나를 짓눌렀다.


1점 차로 뒤진 8회 말, 이용찬이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패하면 경기는 없는 것이기에 당연한 수순이면서도, 지는 경기에 오르는 클로저라니 속이 쓰렸다. 조용호 라인드라이브, 김상수 땅볼, 황재균 플라이로 세 타자 모두 범타로 끝났다. 올 가을야구에서 가장 완벽한 그의 피칭이었다. "마무리가 다르긴 다르네" 딸이 줄곧 그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발견한 아빠가 말했다.


수비 이닝을 순탄하게 마무리 했으니, 그깟 1점 차쯤 어떻게 극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시작된 9회 초. 그러나 아웃 카운트가 착착 쌓여가고 나의 마음도 돌덩어리를 얹은 듯 무거워졌다. 2사 후 김형준의 타석. 서, 설마 홈런 잘 치는 형준이가 기, 기적을? 어려울 걸 알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 모아 타석을 바라 봤다. 6구 째 투수 땅볼 아웃. 2023년 NC의 야구가, 그리고 나의 야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선수들이 도열해, 관중들을 향해 인사했다. 아빠도 이 때 만큼은, 같은 야빠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별다른 '겐세이'를 걸지 않았다. 야심전심이었다.


표표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야구장을 빠져 나왔다. 근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아빠는 안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고, 나는 선수들 퇴근길을 보러 원정 선수들 출구쪽으로 향했다. 경기 내내 떨어져 있었던 Y가 선수들 지나는 통로의 비교적 앞줄을 선점한 게 보였다. 나는 철문에 더욱 가까운 쪽에 가만히 붙어섰다. 선수들이 차례로 나왔다. 캡틴이 내 팔뚝만한 키링을 달랑거리며 나와, 팬들에게 인사했다. 직전의 인터뷰에서 손에 힘이 없어 그 좋아하는 소고기를 집을 힘마저 없다던 캡틴이던가. 코끝이 시큰해졌다.


캡틴의 2023 시즌 마지막 퇴근길


선수들을 배웅하고 Y와 위팍에서 올 시즌을 마감하는 인증샷을 남겼다. 사실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선전이었지만, 한국시리즈로 가는 길목에서 겪은 패배가 아프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야구의 시간이 영화라면, 2023 시즌 NC의 러닝타임은 굉장히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시즌 4위로 밑에서부터 올라가느라 와일드카드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에 이르기까지 가을야구 내내 NC가 치른 게임만 9경기. 한국시리즈는 길게 가봐야 7차전이니까, 정규시즌 1위 팀인 LG 팬들도 가을야구에서 치르는 경기는 7경기에 불과한 거니까. (물론, 결과적으로는 플레이오프 5경기에 한국시리즈 5차전까지 치른 KT가 가을야구에서 가장 많은 게임을 치른 팀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NC의 팬이어서, 야구의 시간이 길었다는 생각에 선수들에게 적이 고마웠다.


가족들 카톡방에 아빠의 '손아섭 싸인 받았냐'는 카톡이 떠 있었다. '아니' 라고 보냈다. 오늘은 아빠가 NC 경기를 보러 왔으니, 새 시즌에는 아빠와 삼성 경기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양과 제일 가까운 고척돔에서. 아빠가 경기 내내 곁눈질 했던 테이블석으로. 엄마 없이 우리끼리 즐긴 유희에 영 미안해진 내가 '담엔 엄마도 같이 보러 가자'고 운을 띄웠다. 엄마는 말했다. '아니~ 난 싫어' 30년 세월 비야구팬이었던 내가, 그 말을 가장 잘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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