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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Hong Aug 24. 2023

영어한마디 못하는 내가 호주에서 미용사업을 시작했다.

왜 영어한마디 못하는 내가 호주에서 미용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2017년 7월 내 호주생활은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호주 입국 시, 잠시 묵을 비즈니스 호텔을 예약하고 쉐어하우스를 구했다.

쉐어하우스에 2주 치 디파짓을 내고, 2주 치 페이를 하고 나니 내 통장에 $600 남짓의 돈이 남았다.

물론, 한국에서 배운 기술이 있었고 일할 곳도 마련해둔 덕분에 큰 문제없이 호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은 $600이었다.

적은 돈이지만 1,2주는 어떻게 살아볼 만한 금액이었지만 2주 뒤에 쉐어비를 내기 위해선 당장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알아본 미용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호주는 조금 더 자유로운 것 같아.”라고 하며 일했지만 확실히 한국에서 일하던 환경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마인드도 너무 달랐다.

호주는 한국과는 다르게 주급이 있어 매주 돈이 들어왔고, 한주 벌어 한주를 살았다.

그런 삶에 익숙해지니 어떻게 보면 돈을 써도 다음 주에 바로 돈이 들어오는 상황이라 뭔가 돈이 계속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생활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여유"라는 단어에 속아 게을러 지는 내가 보였다.

한국에서 함께 일했던 회사의 동료들의 성장을 보면서 뭔가 계속 뒤처지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더이상 "여유"라는 단어에 속아 게을러지지 말자 라는 생각이 들어 새벽청소를 세컨드잡으로 나가해보기로 했다.

돈이 없고, 생활이 궁핍해서가 아니라 지금 호주에 살면서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했던 내가 남의 돈을 받고라도 일하면 책임감 있게 새벽에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무렵, 1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크게 성장하는 동료들을 보게 되었다.

”지금 이대로 한국에 가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브리즈번보다 조금 더 큰 도시인 멜버른에라도 한번 살아보고 들어가자 하면서 멜버른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될 무렵, 브리즈번에서 일했던 미용실의 원장님이 1년을 일하면 주기로 약속했던 금액을 절반밖에 주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계획적과 금액적으로 조금 큰 타격이 있었던 순간이다.

멜버른으로 가려면 우선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아닌 학생비자로 학비가 들어가는 상황이었고, 그러기엔 약속한 금액을 받지 못하면 돈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주변 친구의 도움으로 학비를 해결했지만, 원래 계획이었던 로드트립은 결국 포기하고 멜버른행 비행기를 끊어 지역을 이동했다.

그때 내가 브리즈번에서 일했던 원장님께 했던 말이 “큰 금액은 아닌데.. 그 금액 때문에 원장님은 소중한 인연을 하나 버리시는 거네요..”라고 말했지만, 나 또한 그 ‘큰 금액은 아닌데..’라는 금액 때문에 그 원장님과의 인연을 끊기로 다짐했다.

그저 금액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크지 않은 그 금액을 위해 3,4달 더 계획을 미뤄가며 채우고 가기 위해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났고, 그래서 결국 그 원장님과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뭐.. 생각해 보면 나뿐만 아닌 그만두는 다른 분들도 몇 가지 이유를 대며 약속한 금액을 지키시지 않았지만, 나에게 까지 그렇게 하실 줄 몰랐고, 그분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못준다는 태도인 것이 사실 가장 큰 이유다.


어찌 되었든 학비와 다른 것들을 해결하고, 2018년 7월 브리즈번에서 1년을 살고, 멜버른으로 지역을 옮기게 되었다.

그때의 나의 재정상태는 -$1500이었다.

주변 친구가 선뜻 빌려준 그 금액은 그 당시의 나에게는 엄청 큰 금액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선 샵을 빨리 알아보고, 세컨드 잡을 알아봤다.

다행스럽게도 샵을 구해 1주 만에 바로 일할 수 있었고, 2주 정도 적응기간을 생각해 새벽청소도 2주 뒤에 시작하는 방향으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렇게 내 멜버른생활이 시작되었다.

주 5일 샵에서 일하고 샵을 가지 않는 날에는 학교를 나갔고, 매일 새벽 4시 반에 청소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 주변 친구들을 만나고 사귈 시간이 없었고 그렇게 일하고 학교만 다니다 보니 학비 내는 돈, 집값, 식비 외에는 특별히 지출이 없다 보니 돈이 모였다.

친구와 약속한 금액을 2달 만에 전부 보내주고 계속해서 돈을 모았다.

-$1500으로 시작한 멜버른생활에 조금씩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3번째 잡을 구했다.

새벽청소, 헤어숍 그다음 잡은 키친핸드(설거지 및 주방보조)였다.

그렇게 3가지의 일을 하다 보니, 당연스럽게 돈이 모였다.

어차피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매일같이 사람들과 대화하고 즐기며 사는 직업인지라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모은 이유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부모님 통장에 “그동안 저를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반씩 넣어드릴 생각으로 돈을 모았었던 거지만, 호주에서 또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 3년 정도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또 모아놓은 돈을 학비로 지출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기존에 일하던 살롱에서 내부공사를 진행을 하는데 그게 3주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 3주간 살롱 수입이 없이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다른 살롱에서 매니저 제의가 들어와 수락하게 되었다.

그게 내가 호주에서 직원으로 일한 마지막 살롱이었다.


그 살롱을 마지막으로 호주를 떠난 것이 아니고, 미용을 그만둔 것도 아니지만 호주에 살면서 직원으로 일한 마지막 살롱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고객에게 하는 서비스를 아무리 제안해도 “그런 건 더 고급살롱들이 하는 거고 아직 우리는 그렇게 안 해도 돼요.”라고 말씀하셨고, “그럼 내가 일하는 살롱은 고급살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롱의 인테리어, 살롱의 분위기, 팀원들의 용모 모든 게 다 중요하지만, 처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것 보다 직원들에게 비전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너무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이런 생각과 이런 방식으로 고객에게 미용사로 다가가고 이렇게 미용실을 운영해도 호주에서는 고객이 찾아오는구나…“ 내가 느낀 아쉬움과 불편함을 적고, 메모해 뒀다.

사실, 미용실은 시술시간이 긴 시술들이 많다.

3시간 길게는 6,7시간 동안 고객님은 앉아 시술을 받고 그 시간 동안에 오는 허기와 지루함은 고스란히 그날 머리를 이쁘게 해주는 디자이너에게 전달되었고, 머리를 이쁘게 해 주고도 항상 ”미안해 너무 길어서 지루하고 배고팠지…“라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이쁜 머리를 해주고도 미안하단 말을 하기가 싫어서 사비로 고객님들 간식을 사서 챙겨드렸다.

그 부분에서 고객님들이 너무 특별하다며 좋아하셨고, “한국에선 당연한 것들이 호주에선 특별하게 되는구나” 하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 외에 다른 인턴들에 대한 교육을 전부다 나에게 미뤄주셔서 직원들을 교육하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고, 매니저를 하기 전 살롱에서도 같이 일하던 인턴 동생들을 교육해서 그들이 조금씩 미용을 자신 있게 고객님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호주에서도 교육으로 사람을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구나를 느꼈고, 이 또한 ”당연한 것이 특별한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에서 너무 좋은 환경에서 일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런 것들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기에 사업의 오픈을 생각했던 방향을 호주로 바꿔버렸다.


“호주에서 현재보다 더 좋은 환경을 가진 미용실에서 일하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오픈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고, 매니지먼트를 하며 익힌 경험들과 마지막 살롱, 그리고 이전의 살롱들에서 느낀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고 내가 배운 한국 미용문화를 조금씩 호주에 접목시킨다면, 한국에서 오는 디자이너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만으로도 샵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내가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나는 내가 호주에서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뭐… 한국 들어갈 때 부모님께 넣어드리려고 했던 돈도 있었고, 쓰리잡을 하면서 모은 돈이 있었기에 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호주 멜버른에 “Hair by HongShop“이 오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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