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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Hong Nov 07. 2022

11월 두 번째 주 멜버른의 아침을 걸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11월 첫 주는 계획했던 것들보다 내 멘털을 흔드는 일들이 많았던 한 주였다.

2번째 매장인 오클리점을 계획하며 늘어난 내가 할 일들과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들로 흐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들 그리고 기존에 일하던 팀원들이 한국 휴가 중에 그들만의 계획이 바뀌어 앞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통보 메시지까지 여러 가지로 기존의 계획들이 변경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한 주가 지나갔다.




그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유로 가만히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 6시 몸을 일으켜 멜버른을 한 바퀴 걷기로 했다.

걸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걷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나에게로 흘러들어오고 그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에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걸음부터 10분 정도는 그동안의 복잡한 생각들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걷다 보니 내가 호주에서 1년의 브리즈번 워홀 생활을 끝내고 멜버른에 왔을 처음이 생각이 났다.


여름이 되면 이렇게 강 위에 자리를 만들어 펍을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다.

시티를 걸어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사우스 뱅크를 걷다 보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마냥 걷다 보니 내 코에 익숙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브리즈번에서 그리고 멜버른에 넘어와서도 새벽에 일어나 새벽청소를 했던 적이 있는데,

두 지역 다 펍에서 청소를 했었다.

그 전날 사람들이 쏟아버린 알코올의 냄새, 그리고 그걸 청소하기 위해 쓰이는 청소 약품의 냄새가 섞여 나는 청소를 하면서 맡게 되는 냄새가 있는데 그런 냄새가 새벽에서 아침이 넘어가는 시간에 사우스뱅크에 있는 펍을 청소하는 사람들로 인해 내 코를 자극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초반 호주 생활이 생각이 많이 났던 산책이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청소를 하는 2~3시간 동안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들리지 않는 영어를 들으면서 입으로 내뱉는 연습을 해보기도 하고, 혼자 생각에 잠겨 앞으로의 계획을 하기도 했었던 그때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으니 그저 그런 계획들이 즐겁웠고,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청소를 하기 위해 의자를 올리고 바닥을 청소하며 더러웠던 바닥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고 청소가 다 끝난 후에 오늘도 새벽 일정을 미루지 않고 해 냈구나 하는 성취감까지 들었었다.

그렇게 부지런하게 뭔가를 하면서 돈까지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하지만 샵을 오픈하고 2호점을 준비하면서는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이 들어오면서 나 혼자만의 계획과 행동으로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구나 하면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로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걷기로 마음먹고 걸었던 것인데, 나름 내 생각이 정리가 되고 초기 호주 생활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아침도 운 좋게 얻어 낸 것 같다.


걷다 보니 멜버른에 처음 살았던 집이 생각이 났다.

한 집에 방은 두 개 화장실 두 개인 셰어하우스였는데 그 안에 총 7명이 살았다.

방 2개에는 2명씩 마스터룸과 세컨드 룸에 살았고,

거실에는 커튼으로 파티션을 만들어 3명에서 거실을 이용했는데 나는 2명이 사는 거실 파티션에서 몇 달을 살다가 혼자만 쓸 수 있는 공간에 살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혼자 쓸 수 있는 거실 공간으로 옮겨서 살았었다.

그때는 그렇게 거실에 사는데 $125 정도 들었다.

그냥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니까 잠만 자면 되니까 하는 생각으로 거실에 살았었는데, 그 또한 나름 낭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우스뱅크에서 강을 건너 가장 처음 살았던 집으로 가는 길에 멜버른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플린더스 역이 너무 아름다운 날씨에 너무 이뻐 보여 사진을 다시 남겼다.

멜버른에서 첫 직장이 트레인을 타고 40분 정도 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어서 아침마다 플린더스 역을 이용했는데, 트레인을 타기 위해 건너기 전 플린더스 역에서 시티로 출근하기 위해 걸어 나오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도 인상 깊었었다.

영화에서 보면 아침 출근시간 멋지게 슈트를 차려입고 출근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들이 나왔는데, 딱 그 장면을 실제로 눈으로 보는 느낌??

그래서인지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땐,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해서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처음 살았던 아파트의 입구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거실에서 일어나 새벽청소를 가던 그 시기를 생각했다.

그때는 그 모습들을 담아 유튜브 영상도 만들기도 하고 뭔가 호주의 삶이 하나하나 소중해 담고 싶었는데 요즘의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첫 번째 매장을 하고, 두 번째 매장을 준비하면서 모든 게 처음인 시기에 "이게 맞나?" 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데, 그 이전의 멜버른 생활 또한 그때는 분명 힘든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든 상황들이 100개면 10개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과거의 힘듬은 그 순간이 지나고 상황을 이겨내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런 상황들을 견디고 버텼기에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침을 보냈다.


아침에 걸으면 확실히 많은 부분들이 정리가 되고, 생각이 바뀌는 것 같다.

과거의 힘들었던 순간들도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의 순간들도 내 선택과 내 행동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 번씩 모든 걸 놔 버리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래서 조금 정신 차리고 걸으며 든 생각을 또 글로 정리해 두고 싶었다.


분명 이 글을 나중에 볼 때도 이때도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들었구나 하면서 꺼내어 볼 수 있는 나만의 추억의 한 순간이 될 것처럼 지치더라도 꾸준히 그것들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가면서 이뤄낼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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