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Hong Oct 24. 2022

호주에서 머리 깎는 CEO가 되리라.

2호점을 준비하기로 했다.

2022년 뜨는 해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꼭 올해는 잘 준비해서 2호점을 내고 싶다.


이 전부터 팀원들과 약속을 했던 부분이고, 나 자신의 다짐이기도 했기에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아끼고 아침시간을 이용해 2호점이 될만한 상가를 찾아다녔다.


"호주는 한국과 달라서 미용으로 브랜드 만들기가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리고 한국의 큰 미용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에게 말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느낀 건 사람이 성장하며 사업이 성장하는 제대로 된 교육이나 시스템이 아직 없었다는 것이었고, 나는 미용을 제대로 교육받고 본인의 기술을 성장시키고 싶은 친구들을 팀원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그만큼 본인의 기술을 위해 뭔가를 투자하려는 친구들을 찾기도 힘들었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교육일정과 직업적으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중간에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 명, 두 명 교육을 하고 함께 성장하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친구들 사이사이에 나의 브랜드에 남아 본인을 성장시키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기간 중에 코로나가 터져서 가게를 1년이나 닫아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팀원들과 기술 공부를 하고 우리 팀워크를 만들었다.

코로나가 끝나고는 한국의 한 방송사 뉴스에서 촬영을 왔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이 코로나를 겪은 것들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호주는 2021년 11월에 코로나 락다운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이후 우리의 준비를 고객들이 알았는지 많은 고객님들이 찾아와 주셨다.


2022년이 되면서 아직도 나의 곁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팀원들을 보며 결심했다.

꼭 2호점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투자도 없이 내 팀원들과 온전히 내 힘으로 이뤄내 보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많이 무너졌고, 심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고는 고객이 몰려들어 매출이 그 전보다 2배 3배 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생각지 못한 지출이 너무 많이 나가기도 했고, 2호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산을 정리해 봤다.

조금씩 늘고는 있었지만, 호주에서 뭔가 더 일을 키우기에는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지출을 최대한 줄였다.

무조건 모았고, 모은 돈들을 새벽에 일어나 공부한 것들을 토대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투자한 것에 대한 가치가 떨어져도 그냥 내가 명품을 사고 내 욕심을 위해 쓰면서 돈을 버리는 것들보다는 확실히 돈이 모였다.

옷도 티는 $20 바지는 $40가 넘어가면 쳐다도 보지 않았다.

무슨 궁상이냐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최대한 깔끔한 모습으로 사치 부리지 않고 그렇게 돈을 모았다.

그리고 2022년 10월 상가 계약을 해 버렸다.

상가를 찾아다니며 내가 본 것은 상가가 2층이어야 했다.

아무래도 지출을 줄인다면 호주에 렌트를 하고 살면서 나가는 렌트비를 없애야 했기에 2층에 집을 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상가 계약이 끝나자마자 2층에 집을 만들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자재비가 올랐고, 인건비가 올라 생각보다 금액이 만만치 않게 나가고 있다.

그래서 주 7일 일을 하며 일하기 전. 일이 끝난 후에는 공사현장에 가서 공사를 체크하고 직접 페인트칠하고 공사를 해주시는 분들이 해야 할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끝내고 있다.


그러면서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할아버지가 살던 낡은 일본식 주택을 손수 삽을 뜨고 벽을 칠하며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드셨다.

그 보금자리 가장 귀퉁이에는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하는 어머니의 작은 바람을 담은 어머니의 첫 미용실인 "행복 미용실"이 있었고, 그 미용실 가장 끝에는 전기로 바닥을 데우는 장판이 깔린 우리 부모님의 작은 방이 있었다.

가게를 열어두고 늘 집안일을 하시며 손님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그 작은방 문을 옆으로 여시며 손님을 맞이하러 나가시던 어머니.


누구보다 열심히 주 7일을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일하셨다.

지금도 한 달에 2번만 쉬시고는 주 7일을 유지하고 계신다.


그리고 내가 호주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그것들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락다운, 크리스마스, 부활절 휴무(미용실은 크리스마스. 부활절 휴무에는 열 수 없다고 한다.) 외에는 주 7일을 하며 호주에서 미용을 하고 있다.

운이 좋게 좋은 조건으로 첫 매장을 시작했었고, 코로나가 터지며 다들 일자리를 잃고 기존의 직장에서 사람들을 내칠 때 나는 오히려 좋은 사람을 찾아 우리 매장의 팀원으로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

물론 우리 매장도 장사가 안되고 문을 닫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코로나가 끝날 시점을 생각하면 나에겐 꼭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 팀원들이 지금 나의 첫 번째 매장을 빛나게 해 주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직원들, 고객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2호점을 해야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찾은 2층 상가에 나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삽을 펐고, 벽을 칠하며 호주에 내가 살 보금자리를 만들며 우리의 2번째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

단지 나의 부모님과 조금 다른 것은 아마 부모님은 나와 동생 그리고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나는 나의 목표, 나의 꿈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이 끝나고 집에 가도 집에 또 다른 매장이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집에 가서도 내 분야의 일을 더 집중해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출, 퇴근의 부담 없이 언제고 내가 필요한 고객님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에 너무 설레고 더욱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것을 향해 집중하고 그것을 위한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2호점을 준비하며 요즘, 오늘 내내 생각나는 것들을 꼭 적어두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호주에서의 첫 여행, 그 여행에서 결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