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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Jul 15. 2021

예술의 확신

폴 세잔과 쿠사마 야요이의 확신

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를 종종 느낍니다. 상황 속에서, 사고 속에서, 기로의 앞에서도요.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맞는 선택지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두려워합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가지고 있는 신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내면으로부터 정해진 신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확신에서 의심의 살들과 신뢰의 부재가 피어나 괴로울 때도 있겠지만 끝내 창작하는 행위는 시도만으로도 예술을 실현하는 가치적인 문제이며 내면에 파묻힌 진심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일 겁니다.     


확신을 토대로 내면 깊이 파묻힌 진심을 발견하다 보면 고민이라는 감정이 더 값지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갖고야 마는 그리고 그것을 고민하는 자세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어떤 사람보다도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일화마저 전해지는, 정확한 묘사를 표현하려 했던 현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도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 말했습니다.      


외면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생명을 묘사하는 것은 그 당시 화가로서 쉽게 가질 수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연이 가진 내면의 생명을 묘사하기 위해 폴 세잔은 구의 원형인 사과를 선택하고 수없이 파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라는 폴 세잔의 확신이 인류의 3대 사과(ⓐ) 중 하나를 차지했으니 이 시도를 의아해하는 시선과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폴 세잔이 가졌던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한다던 다짐은 정복뿐만 아니라 후대의 미술사 판도 자체를 바꿨습니다. 



<사과 바구니>, 65x80cm, 1895 / 폴 세잔


 

쏟아진 바구니와 식탁 주변은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사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부분 부분들의 정물들은 불안정하지만, 전체로 보면 견고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습니다. 비평가들의 악평과 조롱에도 사과다운 사과를 그린 것은 학습으로 인식된 이미지가 아닌 수십 번을, 어쩌면 수없이 많은 시선으로 체득한 사과이기 때문일 겁니다. 


물체의 내면 생명을 파악하고 질서 있게 표현하려 했던 이런 시도 덕분에 우리가 가장 잘 아는 현대회화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회화의 암묵적인 규칙을 깬 폴 세잔의 고집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미술사는 과연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색채의 실험은 확신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로 인해 이후 예술가들은 틀에서 해방되어 야수파, 큐비즘 등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이상하게도 환 공포증이 찾아왔습니다. 밀집되어있는 원이나 구멍을 보면 팔뚝에 잔뜩 힘을 준 닭살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목덜미까지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환 공포증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 있습니다. 실제 작품을 바로 코앞에서 봤는데도 오히려 따스한 느낌을 받은 작품,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입니다.      



<호박> 시리즈 / 쿠사마 야요이

  

뉴욕에서 어느 날 캔버스 전체를 아무런 구성없이 무한한 망과 점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내 붓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캔버스를 넘어 식탁, 바닥, 방 전체를 망과 점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 손을 봤을 때, 빨간 점이 손을 뒤덮기 시작했고 내 손에서부터 점이 번지기 시작해서 나는 그 점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점들은 계속 번져가면서 나의 손, 몸 등 모든 것을 무섭게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고 응급차가 와서 벨뷰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가 진단하기를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고 정신이상과 심장 수축 증상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사건 이후에 나는 조각과 퍼포먼스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방향 변화는 언제나 내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결과다. 
- 쿠사마 야요이 자서전 중에서

          


뉴욕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활동했던 쿠사마 야요이는 여러 장르를 실험했습니다. 빨간 머리 할머니의 땡땡이 호박이라고 하면 단번에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호박> 작품은 사실 쿠사마 야요이의 환영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문득 바라본 빨간 꽃무늬 식탁보의 잔상이 집안 전체로 실현되는 환영을 겪게 됩니다. 그 후 꽃무늬들은 물방울무늬로 변형되어 계속해서 자신의 몸에 따라붙는다 생각하게 되었고 이 환영은 훗날 자신의 작업에 평생 쓰이게 되는 소재가 됩니다. 어린 시절 학대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환영의 계기가 되었고 이 내면의 정서가 작품으로 발현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52년 23살의 나이에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정신 의학 교수인 니시마루 시호 박사는 쿠사마 야요이가 지속적인 작업과 관심을 끌게 도와줍니다.   

   

자신의 정신질환을 다스리고 내면으로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예술성을 확신하며 그것을 시각화한 작품이라는 점이 주목이 갑니다. 쿠사마 야요이가 정신적으로 환영에 사로잡혀 표현한 강박과 증식이 원에 대한 주제로 확장되었습니다. 

다른 이에겐 공포의 존재일지도 모르는 환영. 

쿠사마 야요이는 정신질환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녀는 쿠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에게 환영은 내면세계를 다스릴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고 그것을 꾸준히 해내며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확신을 하게 했습니다.      



예술은 강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을 찾아 헤매고 스스로 질문하고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창작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신뢰와 확신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같습니다. 해낼 수 없을 거라는 의심을 탈탈 털어내고 남들보다 못할 거라는 편견을 깨고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전진하는. 개척해 나가는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중 위대한 예술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품에 안고 나아간다고 말이에요.




ⓐ 인류의 3대 사과란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일컫는다.

위 본문은 예술 플랫폼 아트렉처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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