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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Dec 22. 2023

나의 불안 관찰기

평범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필요성

 불안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존재했다. 애써 떨쳐내려 해도 불안은 항상 나와 함께 했다. 꽤 많은 불안을 경험한 후 불안은 나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살면서 나의 역할의 수가 증가할수록 불안의 크기도 증가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아들이라는 하나의 역할만 있을 때는 불안을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아직 미성숙했기 때문에 불안이라는 감정의 이해도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아들이라는 역할에서 나에게 요구된 의무가 오직 '건강하게 자라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꽤 건강한 신체를 타고난 나로서는 그 의무를 수행하는데 전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학생이라는 역할이 생겼다. 주변에서 기대하는 학생의 역할을 알아챘을 때, 처음으로 불안에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내하며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나의 의무에서 도망다니며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단지 괴로워서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학생이기 이전에 남자이면서, 집안의 장남이었다. 남자는 가정을 지켜야 하며, 장남은 집안의 기둥이라고 했다. 나는 능력 있으며 어질고 듬직한 한 집안의 장남인 남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때문에 불안했다.


 학생은 성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나는 능력이 부족한 남학생이었다. 비록 능력은 없지만 어질고 듬직한 남학생이 되기 위해 인내했다. 공부도 못하는데 어질고 듬직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주변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착한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마쳤다.


 학생이라는 역할이 끝나면 나의 불안도 끝이 날 줄 알았다.    


 학생의 역할이 끝나고 노동자의 역할이 생겼다. 학생 때 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고, 무엇인가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학생 때 보다 불안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한 사사로운 권태는 있었지만 학생때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러다 남편이라는 역할이 늘어났다.


 아들, 사위, 노동자, 남편의 역할이 생겼고, 과거에는 감내할 만한 권태로움이 어느새 위기로 다가왔다. 만약 나의 역할이 그냥 아들과 노동자까지였다면 조금 더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쉬웠겠지만, 역할이 늘어날수록 나의 선택은 나만의 선택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이미 가장이 되었고 집안의 기둥이기에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의 역할이 하나 더 늘어 아들, 노동자, 남편, 사위, 아버지가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매사에 불평불만과 분노를 터트리는 상사를 만나면서 극에 달했다. 그 상사로 인해 3명의 선배가 퇴사했다. 그리고 나는 선배를 대신해 관리자 역할을 했고, 분노에 찬 상사와 대면할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불안증세가 너무 심해져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이런 문제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완치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퇴사를 미루었지만 살기 위해 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불안장애는 바로 사라졌다. 그래서 잠시 내 불안의 근본 원인은 그 상사였다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자영업을 경험하며 내 불안의 근본 원인은 그 상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영업은 평소 생각했던 일이 아니기에 꽤 많은 손실이 있었다. 그렇게 손실을 보며 3년이 지나고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쯤, 우연한 기회에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꽤 유명한 TV 프로그램이었다. 이제 손실을 회복하고 비상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출연한 촬영분이 방영되고 3일 후 어떤 종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대구는 봉쇄되었다. 가게 밖으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고, 오히려 가게의 매출은 10분의 1로 줄었다.


 주변에는 좋은 경험을 한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이런 유형의 불안은 처음 경험해 보았다. 몇 개월 뒤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직원에게 가게 운영을 맡기고 나는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왕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도전만 하는 백수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과거에 했던 직무와 동일한 일을 하는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평범하다고 말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는 항상 내 삶 곳곳에 있었다. 다만 평소에는 이 불안들을 느끼지 못하지만 관계에서 트러블, 코로나로 인한 폐업, 취업 서류 탈락 등 어떤 사건으로 갑자기 불안을 인지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 많은 부정적 감정들로 인해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역할이라는 것은 관계에서 결정되는 특징을 가졌다.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될 수 있고,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될 수 있으며, 직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관계가 있어야 역할이 생긴다. 하지만 관계가 결정된 이후 상대로부터 기대되는 역할에 대한 의무는 모두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역할에 대한 정의는 일치하여도 그 역할에 맞다고 생각하는 의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즘은 평범한 아들, 평범한 남편, 평범한 부모는 최소한의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모든 의무를 수행해야지만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소히 말하는 '남들만큼'이라는 평범함은 진정한 의미의 평범이 아닌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불안감을 낮추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불안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을 줄이는 것이다. 너무 쉽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이 어려운 이유는 불안감의 근본원인은 위에 말한 것처럼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숨어있기 때문이다.

  

<평범에 대한 정확한 이해>


 비범은 어떻게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쓰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우리의 본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같음(평범함)에 위안을 받지만 다름(비범함)을 갈망한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으면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보았다고 이야기하지 깜깜한 밤하늘을 보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희소성에 더욱 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굳이 이런 예시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과 석유는 우리 생활에 아주 가치 있는 자원이지만, 물과 석유중 석유가 더 비싼 이유는 석유가 더 희소하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음은 희소성을 의미하며, 평범함이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을 의미한다. 의미는 다르지만 품질 통계학에서는 희소성이 평범함에 포함되어 있다. 희소성은 평범함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Data가 모이면 평균이 결정되고, 희소성은 평균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학급에서 30명이 있다면 학급의 평균은 30명의 성적의 합에서 30으로 나누어서 구한다. 그리고 1등의 성적과 30등의 성적은 평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수는 30명에서 가장 적을 것이다. 1등과 30등의 성적은 희소성이 있는 성적이다. 재미난 사실은 각 학급의 1등을 모아 평균을 구해보면 위와 비슷한 모양의 분포도가 생김을 알 수 있다. 이는 각 학급의 30등을 모아도 동일하다. 내가 어떤 집단에서는 희소할지 모르지만 또 다른 집단으로 묶이게 되면 평범해지며 이는 반대로도 가능하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상 대부분 일어나는 일들은 다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까지 포함해서)


  '남들 다 하는'에서 남들을 특정 시간과 공간의 희소성이 있는 데이터로 선정하게 되는 경우 불안은 더욱 커진다. '남들 다 하는 ~것을 나는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서 과연 나는 누구를 '남들'이라고 지칭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평범함은 어두운 밤하늘처럼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짝이는 별처럼 희귀성 있는 데이터가 눈에 잘 들어온다. SNS나 우리가 은연중에 주변사람들로부터 듣고 보는 이야기는 대부분 희귀성이 있는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희귀성 있는 이야기에 많이 노출될수록 비범함은 평범함처럼 보인다.


<기대하지 않기>


 평범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수록 내 안의 불안은 조금씩 작아졌다. 아직도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평범함이 무엇인지 다 알 수 없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확실히 평범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내 삶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이 희귀한 일인지 평범한 일인지 고민한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업무 요청을 할 경우 대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것이 평범한 일이다. 웃으며 친절하게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동료를 가끔 만나지만 이는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는 아주 희귀한 일이다. 만약 그런 동료를 만난다면 그것은 아주 감사할 일이다.


 나는 친절의 평범함에 대해 기본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절이라는 것도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존이 걸린 전쟁터에서 친절하지 않은 것은 평범한 일이 듯이 회사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은 종종 전쟁터로 표현된다. 이때 타인의 친절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된다.


 평범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대하지 않는 습관은 단기적인 불안을 다스리기에 좋다. 누군가에게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체념하다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기를 한다는 것은 나를 존중함과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기대하지 않기는 주체와 객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서로를 높고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체념은 그냥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존중이라는 것이 빠져있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거나 기대하지 않게 된다.     


<희소성을 평범함으로 바꾸기>


 하지만 '기대하지 않기'라는 방법만으로 현실에서 장기적인 불안을 다스리기에는 쉽지 않다. 이 사실을 자영업의 실패와 여러 번의 취업 실패를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여러 방법으로 나의 불안을 다스리더라도 큼지막한 불안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결국 나는 불안에 휘둘리게 된다. 살다 보면 작은 불안이 모여 큰 불안이 되기도 하지만, 한 번씩 갑자기 큰 불안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주하는 큰 불안은 희소성 추구하기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평범함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일상의 사소한 불안을 다스린다면, 실직이나 실패와 같은 큰 불안은 희소성 추구하기로 다스린다.


 희소성은 나의 일상의 평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들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평소 하지 않았던 일을 조금씩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같음에 위안을 느끼는 본능이 있다. 이는 우리는 평균적으로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말이 된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변화에 대해 소극적이지 않다는 것과 어려운 변화를 참아내는 인내심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변화에 소극적이지 않고 인내심이 있다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 외로 재능이나 운 같은 것이 필요하다. 다만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을 확률을 높이려면 위의 2가지 성향을 꼭 갖추어야 한다.


 쉬운 일은 처음에는 희소해도 금방 나의 평범한 일상이 된다. 예를 들어 오늘 처음 TV를 봤을 때, TV 보기가 나의 일상에서 평범함으로 자리 잡기는 금방이다. 하지만 독서는 조금 다르다. 오늘 독서를 처음 했다고 독서가 나의 일상에서 평범함으로 자리 잡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는 통계적인 수치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국민의 연평균 독서율은 해마다 감소 추세이고 TV 시청률은 변함이 없다.


 과거 자영업을 하기 전 나의 일상은 회사에서 일하거나, 집에서 쉬거나였다. 일상에서 희소성 있는 일을 간혹 하였지만 그 일들은 일상의 평범함이 되지 못하고 그냥 희소한 일로 남았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 그리고 자영업을 하였다. 나는 또 카페일을 하거나 집에서 쉬는 것으로 일상을 채웠다. 코로나가 터졌고 백수가 되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 혹은 경험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일을 하며 병행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하지만 그런 희소성 있는 일을 평범함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앞으로 닥쳐올 불안한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이 표현을 일상에서 희소성 있는 일을 평범한 일로 바꾸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30대 후반부터 독서를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출근하는 시간과 퇴근하는 시간을 활용해 독서를 한다. 이제 독서는 나에게 더 이상 희소성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로 철학 책을 읽었다. 요즘은 경제서적, 프로그래밍 등 읽는 책의 분야도 늘여가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희소성을 평범함으로 만들고 있다. 주말에는 평소 해보지 못한 업종의 아르바이트도 해보며, 운동도 주 3일씩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큼지막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이 온다면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어제 보다는 나아진 내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큰 불안이 또 한번 닥친다면 극복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품질 : 불안을 인정하고 활용하기>


 불안은 항상 나와 함께 있다. 이것은 나를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은 사람을 만들고 생존에 도움을 주지만 과해지면 나를 죽이는 독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 불안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불안은 존재한다. '기대하지 않기'로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며, 희소성 있는 일을 평범함으로 바꾸는 노력을 한다면 지금 사랑하는 인연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고 미소로 대하는 것은 희소성 있는 일이다. 이처럼 쉽지 않은 희소성 있는 일들을 평범함으로 많이 만들수록 우리 인생의 품질은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나의 불안 관찰기를 끝내려 한다.



   



 사진: Unsplash의 Jack Lucas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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