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제조업(Display, 반도체 등)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물이다. 제품의 크기가 작을수록 이물에 대한 관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이런 이물 관리는 모든 제조업을 영유하는 회사가 가장 신경 쓰는 불량 유형 중 하나 일 것이다.
이물 불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순서가 있다. 먼저 이물을 판별해야 한다.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Verif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Verify는 이물이 있는 제품을 양품인지 불량인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해당 이물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한데 어떤 위치는 양품이 되지만, 어떤 위치의 이물은 불량이 된다. 그리고 같은 위치라도 크기나 개수에 따라 불량품으로 처리될 수도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이물을 채취하고 이물의 성분을 분석하는 일을 한다.
FT-IR (furier Transform Inrared spectroscopy)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법이라고 불리는 FT-IR은 보통 장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주 쓴다. 실제 각고유의 장비명이 업체마다 있지만 보통 우리 회사에서는 그것을 통틀어 "에프티아이알"이라고 부른다.
대학에서 퓨리에 변환을 통신공학에서 배우긴 했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기억나는 것은 파장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 그 주파수를 합치거나 분해해서 주파수의 성분을 분석하는 용도로 퓨리에 변환을 이용한다고 이해했던 것 같다. 미분 적분학을 배우고, 통신 공학을 배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대학에서 배운 이론을 사용할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내가 사용할 일이 없었다고 그 이론들이 내 주변에서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운용되는 여러 장비를 보며 실제 미분 적분학이나 퓨리에 변환이 응용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FT-IR은 적외선을 광원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적외선의 특정 파장이 분자와 원자에 닿으면 흡수되는 원리를 사용한다. 따라서 분석할 시료에 적외선을 쏘고 어떤 파장이 흡수되어 적게 돌아온다면 해당 분자와 원자가 있다고 판단하여 시료의 정체를 추정하는 것이다. 에프티아이알 장비회사는 이미 다양한 물건의 성분을 분석해 놓은 'library'를 제공해 주어 분석이 완료된 시료가 어떤 물건과 유사한 성분을 가지고 있는지 일치율을 알려준다.
<일상에 내려앉는 이물 개선 방법>
분석이 완료된 이물(異物)이 어떤 물건(物件)에서 떨어져 나왔는지 확인이 되면 보통 2가지 개선안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 물건에서 이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던지, 이물이 떨어지더라도 Cleaning 작업을 통해 이물을 치워내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자이지만, 대부분 후자의 방법으로 개선을 시행한다. 왜냐하면 보통 발생하는 이물은 생산에 꼭 필요한 것들에서 떨어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물이 내려앉아 일상의 품질이 나빠지기도 한다. 매일 하루에 몇 번씩 나의 일상에 이물이 내려앉는다. 이물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사실 그렇게 새로운 이물은 없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 세웠던 계획의 틀어짐, 지인과의 트러블, 새로운 환경에 노출 등 여러 이물로 인해 나의 일상은 종종 불량이 된다.
- 참고로 나의 2023년의 품질 수준은 수율 58.63% (214/365일)이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4일 정도는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했다는 말이 된다. 괜찮은 일상/365 X 100을 하면 나의 1년 일상 수율이 나온다. 매일매일 하루를 마감하며, 달력에 그날의 일상이 괜찮았는지 아닌지 기록하는 것도 인생의 좋은 품질관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표를 관리하면, 1년 단위로 내 인생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나만의 인생 목표를 가질 수 있다. 24년은 괜찮은 날이 70%를 넘기는 것이다.-
오늘 일상 불량을 Verify 한다. 과연 오늘 일상이 괜찮았다면 나는 1년 동안 365개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데 그중 1개의 양품을 생산해 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일상은 불량이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불량의 분석을 진행한다. 이물의 위치와 크기를 측정한다. 과연 이 이물은 나의 일상에 존재 만으로도 불량이 되는 건지 아니면 어떤 위치나 크기에 따라서 불량이 되는 건지를 알아야 한다. 몸이 아픈 것은 존재만으로 일상을 불량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 이물은 최대한 나의 일상에 내려앉지 않게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 이물의 개선 방법은 보편적이며 명쾌하다. 충분한 수면과 식사 그리고 운동이 필요하다.
그 외의 이물은 성분 분석이 필요하다. 회사는 여러 분석 장비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도 FT-IR처럼 일상의 이물을 분석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합리적인 이성'이라고 부른다. 업체마다 분석 장비의 성능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합리적인 이성'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다만 분석 장비의 성능은 한계가 명확한 편이지만, '합리적 이성'은 경험과 반성의 양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 이제 '합리적인 이성'이라는 장비에 나의 일상에 내려앉은 이물을 넣어본다.
그리고 분석된 결과를 과거 내 경험의 Library안에서 어떤 것과 유사한지 확인한다.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발생한 이물을 분석하면 여러 원소가 검출된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 내려앉은 이물을 분석하면 여러 원소가 검출되는데, 나는 그 원소가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난여름 여행을 갔었고, 그 기억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우선 좋았거나 나쁘거나로 답변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좋았거나 나빴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결국 어떤 감정이 들었느냐에 따라 그 답변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루 겪는 대부분 일들은 기억 저편에 감정으로 남아있었다.
내 일상에 이물로 내려앉은 사건들은 보통 슬픔, 외로움, 분노, 답답함 등 여러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내와 언쟁을 하면 그날 하루는 불량이 된다. 그 언쟁을 분석하면 답답함과 외로움 그리고 분노등 여러 감정이 남는다. 모든 일상에 내려앉는 이물들을 분석하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감정이 들어있다. 어떤 일들은 실망과 분노만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일들은 답답함과 외로움만 있을 수도 있다.
예시) 아내와 언쟁 후 느끼는 감정들
이렇게 이물의 성분이 분석이 완료되면 그 이물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다. 건강이 나빠져서 온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언쟁에서 온 것인지, 혹은 계획했던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는데서 온 것인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들이 조금씩 다르다. 이 감정들을 잘 파악해야 이 이물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살다 보면 가끔 내가 오늘 겪은 나쁜 일에 대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기도 한다. 이때는 나의 감정들을 잘 살펴보면 이 이물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있다.
이제 이물을 개선하려 한다. 회사에서 배운 이물 개선 방법은 보통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이물의 발생 원인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지속적인 Cleaning으로 이물을 청소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선은 지속적인 Cleaning으로 진행한다. 왜냐하면 IT 제품의 이물 성분을 분석해 보면 주로 플라스틱 재료, 비닐, 각질이나 머리카락등이 나오는데, 이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필요 자재나 인원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므로 근원적인 차단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효율적인 Cleaning으로 이물을 없애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일상에 내려앉는 이물의 개선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근원적인 차단이 불가능한 이물(상황)이 많다. 경제생활도 해야 하며, 가족, 친구, 동료들과 소통도 해야 한다. 이런 활동은 불가피하게 내 일상에 이물을 떨어 뜨린다. 그렇다고 경제활동을 그만두거나, 소중한 사람과 소통을 차단하는 것은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따라서 일상에 이물이 내려앉으면 어떻게 그 이물을 잘 Cleaning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이물을 Cleaning 할 때 크게 Dry Cleaning(바람으로 불어내거나)과 Wet Cleaning(물로 씻어내거나)을 사용한다. 이 방법은 상황에 맞게 잘 선택해야 하는데, 만약 물을 묻혀 닦아서 지워야 하는 이물을 바람으로 불게 되면 오히려 이물이 더욱 제품에 고착되어 효과를 보지 못한다. 반대로 물로 씻을 경우 제품에 손상이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때는 바람을 불어서 해결해야 한다.
일상의 이물을 Cleaning 할 때도 이와 비슷하다. 과연 이 이물을 Dry Cleaning을 할지 Wet Cleaning을 할지 잘 결정해야 한다. 어떤 감정들은 그냥 불어낸다고 날아가지 않았다. 촉매제를 넣어 닦아야 하는 감정들도 있다. 그리고 그냥 불어내어야 하는 감정에 촉매제를 넣는다면 오히려 그 감정은 증폭이 되어 일상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회사에서 일해보니 이물 없는 공장은 없었다. 그리고 살아보니 이물 없는 삶도 없었다. 심지어 나 스스로도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일상에 내려앉은 이물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오늘도 일상에 내려앉는 이물과 전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 내려앉은 이 이물은 어디서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