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취생 Feb 25. 2024

출장 중 사색 (1)

기본이란 무엇인가?

 해외로 출장을 나왔다. 당분간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지만, 속세의 삶은 적당한 돈이 필요하기에 한편으로는 급여가 조금 더 오른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다만 과거 장기간 해외 출장으로 경험했던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출장은 공장에서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사물이나 현상, 이론, 시설 따위를 이루는 바탕)을 잘 지키는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이 일은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다.


- 기본이란 무엇인가?


 기본이라는 말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나는 주로 회사에서 이런 문장으로 많이 들었다. "넌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

 누구나 기본이라는 말을 은연중에는 알고 있지만, 기본의 본질에 대해서 과연 생각하고 사용하는 걸까?


 기준이라는 말이 있다. 이 기준은 기본이 되는 표준을 의미한다. 그럼 '기본 = 기준' 일까? 그렇지 않다. 표준이 없는 것들 중에서도 기본은 있다. 예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나 문화와 같은 일종의 문서화되지 않은 약속표준이 없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은 기준이 있는 것들과 기준이 없는 것들의 합이라 말할 수 있다. 다만 기준이 있는 것들은 명확하게 기본 안에 들어가지만, 기준이 없는 것들은 너무나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기본이 되지만 되지 않을 수 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본'이라는 단어는 명확한 것들과 불명확한 것들이 섞여 결국은 불명확한 단어가 되었다. 그래서 혹여 누군가 당신에게 '기본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면, 흘려듣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기본이 되어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윗사람들이 나에게 기본 준수 점검과 보완에 대해 지시를 내린 것에 '기본이 무엇입니까?'라는 논제로 질문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네, 알겠습니다.'라고 불명확한 지시에 불명확한 답변을 할 뿐이다.


 -기준에 관하여


 제조업에서 근무하다 보면 수많은 표준을 접할 수 있다. 재미난 것은 이 표준이 겹치는 것이 많고 상반되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기준은 명확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기준 또한 인간이 정하는 것이기에 명확한 부분과 불명확한 부분이 합쳐서 불명확한 기준이 되어 버린다.


 기본이든 기준이든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다고 믿고 사용한다. 결국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누군가의 믿음으로 기준이 되고 기본이 된다. 크게는 국가도 누군가의 믿음이 기준이 되고 기본이 된다. 그리고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기준과 기본이 달라지고 논쟁이 일어나며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은 돈 버는 일에서 나의 자아 성취를 꿈꾸는 것은 현명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영업을 하면서도 똑같이 느꼈다. 내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 손님이 원하는 대중적인 상품을 만들어야 했다. 결국 내가 을이라는 가정하에 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현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믿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안다고 이야기했던 현실은 과연 명확한 것이냐에 대해서 나도 확신할 수 없다. 나 또한 믿음을 가지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서론은 길었지만 결국 난 20일째 1000개가 넘는 타국의 언어로 작성된 표준 문서의 항목을 확인하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진짜 이 표준대로 작업을 하느냐를 생산 시설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작업자가 기본에 맞게 제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평가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왜냐하면 '1+1='에 대한 답이 2가 맞느냐처럼 일부 명확한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글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DJ DOC의 노래 가사 중에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난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잘 먹어요.'라는 소절이 있다. 이처럼 굳이 표준과 일부 다르지만 시간 안에 정상 제품을 잘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과연 문제가 있다고 평가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된다. 오히려 표준에 적힌 젓가락질보다 그 작업자의 젓가락질이 더 잘하는 것일 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UnsplashMarten Bjork

  

  


  

 


 

작가의 이전글 넌 어디에서 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