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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Aug 06. 2023

2023 여름휴가 기록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 나도 모르게 지겨움을 토해낼 즈음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평소와 다름없는데 특별히 시간이 느리게 가거나, 늘 하는 일인데 유독 지겨움이 느껴질 때가 바로 쉼이 필요할 때. 내 연간 사이클에는 그런 조짐이 핀다 싶으면 휴가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유난히도 덥고 습한 이번 여름.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3박 4일의 휴가를 다녀왔다. 요즘 워낙 해외여행 가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이들도 당연히 해외를 가고 싶어 했지만, 해외여행은 못해도 6~7개월 전에는 준비해야 그나마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데 이번에는 미리 준비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비행기 맛이라도 볼 수 있는 제주도로 행선지를 정했다. 그 무렵 휴가에 대해 회사 직원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여름에는 더워서 제주도 절대 가지 않는다는.... 순간 잘못한 선택일까 싶었지만 비행기도 호텔도 이미 결제를 했기에 되돌릴 수 없었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고 여행은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다녀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제주도였다. 둘째 태어나기 전 큰 아이 어렸을 때 한번 가보았지만 아이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마라도에서 짜장면 먹었던 기억만 떠오른다.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커서 이제 짐도 가볍고 몸 편히 여행할 수 있어 좋구나 싶었다. 그런데 몸만 편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와 곧 사춘기를 맞이하는 아이 둘은 여행을 즐기려 하지 않았다. 덥고, 귀찮고, 또 여러모로 예민한 큰애는 네 식구가 한 방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하여 도통 잠을 자지 못해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났다. 마음을 비우고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지만 여기 갈까 저기 갈까 하는데 별 반응 없이 심드렁한 아이들 앞에서 자꾸만 기운이 빠졌다.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왔는데 정작 의욕을 보이지 않는 녀석들 손목 잡고 끌듯 하는 시간은 정신적으로 다소 피곤했다. 가 볼 곳을 미리 예약하거나 일정표를 짜지 않고 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 위로하며 우리 부부는 둘이 사려니 숲길을 걷고 시장도 구경하며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머문 함덕은 바다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착 당일 잠시 소나기가 지나간 것 외에는 있는 내내 날씨가 정말 좋았다. 높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피었고, 뜨거운 공기와 청명한 바다, 부드러운 모래는 한여름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3일 중 하루는 해변에서 물놀이를 했다. 더웠지만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기분이 탁 트인 듯 시원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한 달 살기 하러 제주에 오는지 나는 고작 함덕 한 곳에만 있었을 뿐임에도 그 매력을 알 것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주는 느린 일상을 누려보고 싶은 마음에 노후를 제주에서 보내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감당해야 할 물가는 높고, 관광으로 잠시 와서 느끼는 것과 삶의 터전을 삼는 일은 접근이 달라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가슴 깊숙이 고이 접어두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는 날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허허) 이날 공항 근처에서 먹은 고기국수는 30분 정도 대기시간이 있었지만 기분 좋았던 아이들 입맛을 쉽게 만족시켰고 네 식구 모두 맛있게 먹은 제주 마지막 식사가 되어주었다.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익숙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집이 제일 편하다며 좋아했다. 


나도 그랬긴 했다. 여행은 지루해진 보금자리를 벗어나게 해 주지만 돌아올 때면 그 보금자리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휴식의 시간은 또 한 번 열심히 뛰어보자는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나는 이런 쉬는 시간을 통해 일상을 돌릴 체력을 얻는 것 같다. 휴가의 마지막날이 저물고 있지만 아쉽지 않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업무들에 맞설 몸과 마음이 있으니 파이팅 해봐야지.   


함덕 서오릉해변
사려니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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