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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03. 2023

오늘 느낀 좋은 마음들

신경 쓸 게 많았지만 그래도 일들이 잘 마무리되고 편안한 주말이 시작된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문득 오늘 내가 느낀 좋은 마음들이 생각났다. 그들의 모습과 말들이 내 마음에 좋게 남아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 아들의 생일선물을 산 부장님


정 많고 어쩔 수 없이 살짝 꼰대이신 부장님께서 아들 생일선물을 뭘 해주는 게 좋을지 며칠 전부터 고민하시는 것을 보았다. 성인의 생일이니 꼭 필요한 걸 사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한번 아드님께 물어보시는 건 어떤지 말씀드렸었는데, 자고로 선물은 서프라이즈여야 더 좋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지 결단을 내리시고 구입한 선물이 이 날 회사에 도착했다.


마땅한 쇼핑백이 없어 살짝 난감해하시는데 마침 나에게 적당한 것이 있어 쓰시라고 드렸더니 딱 맞는다며 좋아하셨다. 아들의 카톡 프사가 바뀌어서 보니 아이가 살 것으로 적어놓은 목록에 부장님이 준비한 물건이 있다며 맞춤 선물이 될 것에 뿌듯해하셨다. 내색은 없었지만 그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들 생각에 중년의 아버지도 하루 내내 설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부장님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알까. 아빠가 얼마나 자신을 생각하는지,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다 알 수는 없어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꼭 필요한 선물을 해 준 아빠에게 감동받을 것은 분명했다.    



# 차장님과 같이 왔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이날은 우리 팀에서 진행하는 외부 만찬 행사가 있었던 날이다. 사전에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정작 당일 현장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에 나는 사무실 업무를 하고, 팀원 둘이 현장 업무를 진행했다. 미리 꼼꼼하게 체크했고 행사장에서도 준비를 잘해주어 무리 없이 잘 끝낼 수 있었다. 고생한 두 팀원에게 수고 많았다고 안부 전화를 했더니 팀원이 이런 말을 했다.


"차장님. 여기 처음 와보는데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정말 좋았어요. 일하러 왔지만 눈과 입이 호강한다 싶을 정도로 현장이 아름답더라고요. 차장님도 같이 왔으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분명 좋아하셨을 텐데 너무 아쉬웠어요."라고.


나는 "그렇게 좋았어? 힘들게 일하러 갔는데 좋은 게 있었다니 다행이네. 거기 못 갈 곳 아니니까 일과 엮이지 않은 좋은 날에 셋이 한번 가자."라고 약속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들으니 얼마나 좋은지 궁금하기도 했고.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던가. 그런 곳에서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것이 조금 감동스러웠다. 팀원으로 만나 함께한 세월이 어느새 10년을 넘겼다. 팀원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 되었고, 나의 성장이 팀원에게 도움이 되면서 지겨우리만치 긴 시간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안다. 단순히 업무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좋은 것을 함께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만큼 가깝다는 사실이 창 밖으로 저무는 아름다운 노을처럼 내 마음을 물들였다. 팀원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하철 에서 딸을 맞이하던 부모님


집 근처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아빠와 엄마로 보이는 두 분이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는 딸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았다. 딸은 성인 학생 같았고 차림은 가벼웠으나 어디 여행을 다녀오거나 자취하다 오랜만에 본가에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딸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에 하트가 뚝뚝 흘렀다. 아이를 보며 활짝 웃으셨고 딸이 올라오기도 전에 아빠의 두 팔은 이미 허그를 하려고 마중 나와 있었다. 딸내미는 자연스럽게 아빠 팔에 안겼고 아빠는 아이의 등을 몇 차례 두드려주면서 반가움과 애정을 표현했다.


나도 부모이다 보니 이제는 다른 부모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짜박짜박 걷는 아이들의 부모는 행여 다칠세라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꼬마로 성장한 아이의 부모는 말 좀 한다고 이말 저말 가져다 조잘대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아이가 신기해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의견을 묻기도 한다. 부모의 키만큼이나 성장한 아이는 부모 곁에서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를 키울 때는 매 순간이 고민이고 고뇌이고 선택의 연속이다. 육아라는 알다가도 모르는 미지의 길을 걸어오며 아이와 부모는 함께 성장하는데, 그렇게 단계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가 내 곁의 아이다. 꼬꼬마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리 컸지. 성장한 자식은 단단해지고, 늙어가는 나는 점점 약해진다. 그래서일까... 단단했던 나를 보는 듯한 아이의 모습에 더 애틋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내 나이에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까 잠시 짐작해 본다.


딸내미를 마중 나왔던 부모님은 딸아이의 웃는 얼굴에 덩달아 빛이 나는 얼굴이 되었다. 어깨동무하며 기대며 집으로 가는 세 식구의 뒷모습이 그렇게 흐뭇해 보일 수 없었다. 행복한 주말이 될 것이다. 나와 남편도 내 아이들에게 저런 눈빛이겠지.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자식이니까.


하루하루 똑같은 것 같지만 찬찬히 보면 다른 것들이 많다. 슈퍼문이 뜬다고 화제였던 이 날에 나는 슈퍼문처럼 빛나는 것이 하늘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본 마음들도 달처럼 크고 둥글고 반짝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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