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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y 30. 2023

좌판의 정겨움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최근 목과 어깨 근육 통증이 심해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 일자목 진단과 함께 일정기간의 도수치료와 물리치료를 처방받고 매주 토요일마다 병원에 다니고 있다. 오래전 도수치료를 받아본 적 있지만 사실 치료사가 손수 잡아주는 통증치료이다 보니 언제까지 거기에 의존할 건가 싶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신경 써서 근본적인 원인을 개선하는 것이 맞겠다 생각해서 3년 전에도 같은 진단과 처방을 받았었지만 치료를 받지 않았고, 지금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해 이번에는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9시 첫 타임으로 예약해 치료받고 물리치료까지 마치면 1시간 이 훌쩍 지나있다. 속근육을 다스려주니 받고 나면 아프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나른해지기도 한다.


치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역 입구에는 한 아주머니가 좌판을 펼쳐 식품들을 팔고 계셨다. 주말마다 나오시는 듯했고 지난주에는 좌판에 모시송편이라고 쓰인 것을 보며 지나쳤었는데, 이번에는 어머님과 나의 간식으로 한 봉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좌판으로 향했다.


이미 손님 두 분이 식품을 고르고 있어서 나는 한발 떨어져 순서를 기다렸다. 좌판에는 식품이 다양했다. 건나물류, 도토리묵, 우무, 콩물, 모시송편, 마른오징어, 바지락살 등등. 상품 종류가 통일성 없는 것 같지만 전통먹거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는 속눈썹까지 붙이시고 나름 외모에 신경 쓰신 모습에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했고 손님이 하나를 물어보면 그 대답에 이어 짝이 맞는 상품을 권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 좌판에 용무가 있어 보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젊은 아가씨 뭐 줄까? 와서 이거 한번 마셔봐요." 하며 시식용 작은 종이컵에 시원한 콩물을 따라주셨다. 살짝 소금간이 된 콩국물은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진했다. 공복이었던 내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다고 하자 "우리 언니 황기 먹어? 이거 내가 황기랑 둥굴레랑 넣고 5시간 끓인 건데 몸에 좋아. 이것도 한잔 마셔봐." 그러자 앞서 있던 손님이 황기가 독소를 빼주잖아 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황기물까지 시식하고 살 물건을 정식으로 주문하려는데 앞 두 손님 계산이 오래 걸린다. 계산하다 삼천포로 빠져 다른 얘기 하시고 그 와중에 길을 묻는 행인에게는 본인은 좌판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만 알지 그 외의 길은 모른다는 재치 있는 대답을 하셨다. 그러다 기다리는 나를 보고는 대뜸 미안하다고 하신다. 오늘 팔 떡을 같이 만들 사람이 갑자기 못 한다고 해서 혼자 떡 하느라 두 시간밖에 못 잤다고. 아이고, 나사 하나 빠진 듯 정신없어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모시송편 만 원어치랑 콩물 1통 주세요."

"응~" 했지만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콩물에 우뭇가사리 송송 썰어 넣고 호로록 마시면 맛있는데, 우무도 하나 할려?"


"아니요. 저는 콩물만 할게요."

"응 그랴 그럼."


주문받은 물건을 비닐에 싸주시면서 "언니 오래 기다렸으니까 떡 2개 더 넣어줄게. 하나는 가면서 먹어." 하며 일회용 포크에 떡을 푹 찍어 주신다. 걸어가면서 뭐 먹지 않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건 다음에 또 오라는 뇌물이야." 하며 마른오징어 몸통을 덤으로 넣어 주셨다.(다리는 왜 없는지 의문)


마트는 말할 것 없고 요즘은 시장에서도 이렇게 말 많고 덤 얹어주는 일 거의 없는데, 작은 좌판의 사장님은 조금 정신없었지만 소란하면서도 푸근했다. 오랜만에 느낀 그 바이브가 반가워서였는지 기다리는 시간도 잊고 그 상황을 보고 듣고 맛봤던 것 같다. 포크에 꽂힌 떡을 오물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 힐끗 쳐다보는 눈길에 살짝 부끄러워지는 건 내 몫이 되었지만 모시송편은 향이 좋아 구수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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