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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y 22. 2023

우체국 다녀오는 길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제법 먼 우체국 가는 길도 가볍게 느껴진다. 회사 근처 우체국이 공사 중이라 좀 더 떨어진 지점으로 가야 하는데, 도보로 왕복 30분 거리는 주로 앉아서 일하는 내게 잠시 좋은 활동 수단이 된다. 오후에 등기 발송할 서류를 챙겨 운동 겸 외출을 했다.


햇볕이 뜨겁고 바람도 제법 후끈하지만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한 속도로 걸으며 남편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이런 시간이 아니면 하루에 한 통화도 하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땐 서로 간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여기는 것 같다.


10여분 정도 걷다 보면 양쪽으로 가로수가 나란한 200미터 정도의 길이 나온다. 한쪽은 장대같이 키가 크고 탄탄한 기둥을 가진 나무들이고 맞은편은 은행나무다. 높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서 걸을 때마다 시원한 기분이 드는 길이다. 이 나무들의 정체가 궁금해 찾아보니 이름도 익숙한 메타세콰이어다. 이건 명소에나 있는 나무 아니던가? 그저 평범한 도로에 이렇게 멋진 키다리 나무를 심어 휴식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다니, 누가 한 일인지 모르지만 걸을 때마다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우체국은 여느 때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번호를 놓친 아주머니께 한차례 순서를 양보하고도 내가 우체국에 머문 시간은 5분 정도. 많이 기다렸다면 오고 가는 길도 기분이 달랐을 텐데 여러모로 적당했다. 크고 잘 되어있는 곳도 좋지만 동네 자그마한 공공기관이 풍기는 소소함도 바쁜 일상을 pause 해 주는 것 같아 좋다. 


우체국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새로 생긴 무인 문구점에 잠시 들러보았다. 오며 가며 보기만 하다가 어릴 적 문구점에서 펜 구경하며 힐링하던 생각도 나고 뭐가 있나 궁금하여 잠깐. 기대했던 것만큼 물건이 많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내가 구경하고 있는 사이 한 초등학생이 들어와 훑어보더니 그냥 나갔다. 요즘은 학교 앞에도 문구점 없는 곳이 많다. 우리 둘째 초등학교 앞 문구점도 카페로 바뀐 지 오래다. 온라인이나 다*소, 대형 문구점들로 구입처가 다양해지면서 동네 문구점이 사라졌다. 그러다 필요한 곳에 이렇게 무인으로 하나씩 다시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등하굣길 학교 앞 문구점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는데. 요즘 아이들은 북적이는 학교 앞 문구점, 그 앞에서 떡볶이도 먹고 달고나도 먹고 뽑기도 하는 그런 경험들은 없겠구나. 하지만 이건 세월에 젖은 어른의 감상일 뿐이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걸.  


집에 망가진 수정테이프가 생각나 하나 고르고, 딸아이에게 깜짝 선물이 될 만한 걸 찾아봤는데 마땅한 게 없어 수정테이프만 키오스크로 결제하고 나왔다. 나도 다*소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천 원짜리가 없는 매장 시세가 비싸게 느껴졌다.


다시 메타세콰이어길을 지나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바닥 공사하는 구간에서 현장 지도자분이 친절하게 이동 경로를 안내해 주신다. 덥고 먼지 많은 업무 현장에서 타인에게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 모습은 사람의 격을 높인다.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금요일 오후, 이렇게 한 주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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