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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un 04. 2023

함께 걷는 시간의 좋은 점

부부 걷기 예찬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마음이 지치고 가라앉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근래에 남편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로 인해 예전과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를 겪었다.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직장인으로서 스트레스받는 이유가 십분 이해되어 나도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환경, 잠시나마 머리와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우리는 주말 걷기 운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주말 걷기를 한지 두 달가량 되었다. 함께 걷는 시간의 좋은 점을 몸소 체험하였기에 몇 가지 공유해보고 싶다.



하나. 주말 휴일도 하루를 일찍 시작하게 된다.


주말에는 평일에 못했던 집안일 등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운동을 일찍 한 후 아이들 챙기고 집을 정리하는 순서가 마음 편하다. 그래서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시작하고 점심즈음에 끝낸다. 운동을 나가기 위해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는 것 자체로 건강함을 느끼게 된다. 이른 아침 공복에 걸으면 몸도 가볍고 프레시한 기분으로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둘. 방해 요소 없는, 부부의 오롯한 대화 시간을 갖게 된다.


걷기 시작하면 걸음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대화도 시작된다. 밖에 나왔을 때의 느낌을 이야기하기 시작해 걷는 길에 핀 꽃이나 풀, 날아가는 새와 같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공유하다가 이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각자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 어디선가 듣거나 본 인상 깊었던 말들이 뒤섞인다.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각종 디지털기기나 매체 등 끼어드는 요소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상대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서로 잘 듣고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시간. 걷는 숨 사이로 주고받는 이야기는 그 범위와 깊이, 공감의 레벨이 평소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그 바이브는 무겁지 않고 가볍다. 집에서 하면 잔소리로 통할 얘기도 이때 하면 좋게 흡수되기도 한다. 워치에 쌓이는 걸음 수만큼 부부의 대화가 쌓이고, 운동으로 흘린 땀만큼 각자에게 쌓였던 마음속 미세먼지도 배출되는 느낌이다. 가족으로 묶여 함께한 세월이 길어도 독립적인 존재로서 짊어진 각자의 삶이 있기에 언제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걷는 시간은 나와 배우자에게 집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준다.   



셋.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만난다.


차로 지나가며 늘 보는 길이지만 걷다 보면 못 보던 것들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던져놓은 쓰레기 사이로 피어있는 보랏빛 여린 꽃,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 터를 잡고 끈질기게 피어난 작은 풀들, 여기저기 돋아나 있지만 먹거리가 많은 지금은 가치가 떨어진 쑥, 하천에서 보이는 왜가리, 백로, 오리, 그리고 물고기들. 얼마 전에는 다리 위 배전반 뒤에 자리 잡은 큰 새집을 보았는데 그 안에 어미와 새끼들이 있었다. 나무 위를 올려다봐야 보이던 새집을 눈앞에서, 게다가 집주인과 아이들이 있는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쉽게 만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뭇가지로 지은 새집은 정교하고 아늑해 보였다. 어미와 아비는 그 집을 짓기까지 수백 번 나뭇가지를 물어다 날랐을 것이다. 그 안에서 새끼를 키우는 일은 또 수백 번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일 터. 가족과 자식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나 새나 부모의 일이란 그런 것이구나 싶어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순간을 남편과 함께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넷. 운동 의지가 솟아오른다.


집에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지 체감할 수 없는데, 휴일에 근처 공원에만 나가봐도 운동하는 사람이 정말 많음을 알게 된다. 자전거 타는 사람, 인라인 타는 사람,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행사를 다녀오신 건지 정장을 입은 채로 한강 트랙을 자전거 타는 분도 있었고, 혼자였을 강아지를 전용 백팩에 태워 양 어깨에 메고 운동하러 나온 분도 보았다. 이어폰 끼고 홀로 달리는 사람과 우리처럼 함께 걷는 사람도 있었다. 걸으며 보게 되는 각양각색의 운동인들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삶에 열심인지 깨닫는다. 나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다. 다들 균형 있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그들의 모습에 나를 비춰본다. 저마다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니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어쩐지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될 것 같다. 그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받는다. 더 활력 있게 걷게 되고 더 땀 흘리고 싶어 진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없는 곳 보다 사람이 있는 곳을 걷는 것이 더 좋다.



크게 위의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지만 사실 좋은 점이 더 있다. 운동 후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짜릿하고 밥은 더 맛있다. 스마트폰에 남은 운동 기록은 성취감을 주고, 부부애도 깊어지며, 아이들에게 생활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모의 좋은 모습이 된다. 함께 걷기는 부부에게 공유와 공감의 시간이 되어줌으로써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도록 도와준다. 배우자와 함께 걷고, 느끼고, 보고, 말하며 현재의 여러 느낌과 생각, 감정을 나누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일에 긍정적인 동력이 된다.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고 싶지만 현실 일정 상 불가능하여 주말에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평소 운동은 각자 알아서 조금씩 하고, 주말에는 함께 걸으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다지는 시간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배전반 뒤에 지어진 새집과 그 집의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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