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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Oct 09. 2023

기본의 중요성

기본을 사소하게 취급하지 말자

지금이 10월이라는 것도 믿기지 않지만, 12월 말 크리스마스는 너무 연말이라 정신없이 지나갈 것 같아서 나에게는 주말과 오늘 한글날까지 이번 3일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연휴로 여겨졌다. 특별한 일정을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을 하며 시간을 알차게 보낼지 대략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책 읽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집안일하고. 그렇게 나를 채울 수 있는 몇 가지 일들로 구상해 두고 하나씩 하기 시작한 토요일. 연락 올 일이 없는 저녁시간에 불길한 카톡 알림 소리가 들렸다.


"카톡!"


책상에서 하던 일이 있어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가, 10분쯤 지났을 때 폰을 보았다.  


"내일 출국인데 항공권에 제 영문 이름 스펠링이 여권과 다른 것을 지금 발견하여 연락드립니다."

(참고로 나는 회사에서 출장 관련 업무 담당자다.)


오 마이 갓.


해외에 갈 때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것은 여권, 항공권, 비자다. 여권의 유효기간은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하고(*방문할 국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6개월 이상 남으면 문제없기에 6개월로 인지하는 것이 속 편하다.), 항공권과 비자는 그 여권자료와 반드시 일치된 정보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인 지금, 그중 하나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잘못된 이름으로 발권된 그의 출장 티켓은 국적항공사 1건과 외국항공사 1건. 총 2건의 티켓이었다.


여행사 Emergency team에 바로 연락을 취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수정을 요청했다. 다행히 당장 급한 국적항공사 1건은 금방 수정 처리가 되어 변경된 항공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항공권 탑승자 이름 뒤에 붙는 성별표시(MR, MS 등)가 두 번 들어간 티켓이 수신되었다.


'..... 이건 누가 봐도 성별표시니까 두 번 들어갔어도 문제는 없겠지... 괜찮겠지...?'


온라인에서 예약을 조회했을 때 확인은 잘 되었지만 상당히 찜찜했다. 왜 티켓 상에 성별이 두 번 표시되어 있는가. 이미 지금 잘못된 것을 수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꼬이면 안 된다. 출장 당사자에게 항공사 앱에서 체크인 확인해봐 달라고 했고 바로 답이 왔다.

 

"자동으로 조회되지 않길래 이름 뒤에 성별을 붙여서 조회하니 예약이 나오네요."


하아... 성별표시까지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수정이 필요했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직원은 난감해하며 항공사 예약과 야간근무도 종료된 시간이어서 내일 아침 일찍 확인해 연락 주겠다고 했다.


더 문제는 외국항공사 티켓이었다. 외항사는 영문 이름 변경이 안되어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맞는 이름으로 새로 진행해야 하는데, 기존 비행기에 좌석이 없어서 새 예약은 그다음 출발 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임원, 팀장과 동행하는 출장자였기 때문에 그가 더 늦게 이동하는 것이 끼칠 불편은 파급이 클 것이었다.


여행사에서 만석이라고 안내받았지만 '응 그렇구나...'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름이 잘못되어 있는 티켓은 어차피 못쓰니 취소해 달라고 했고, 다급했던 나는 스카이스캐너에서 해당 구간 비행기를 검색해 봤다. 눈을 씻고 두세 번 다시 보았다. 원래와 동일한 비행기에 예약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행사에서는 만석으로 보인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다시 연락을 취했다.


"급해서 따로 찾아보니 예약이 가능한 걸로 나오는데, 혹시 날짜를 잘못 지정하시거나 잘못 확인하신 것은 아닐까요?" 물어보니 여행사 시스템에는 동일 날짜 동일 비행기에 여전히 비즈니스석까지 한 석도 없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투시를 할 수도 없고 답답했지만 거기에서 못한다면 내가라도 해야지. 어쩔 수 없었다. 취소 가능한 조건으로 온라인에서 내가 직접 예약을 진행해 두고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7시. 국적항공사 티켓 이름에서 성별 표기 정정 처리 되었다는 여행사 직원 전화를 알람으로 쉽게 잠에서 깼다. 잘 처리되어서 한시름 놓았고, 일요일의 비상응대담당자에게 지난 상황을 설명하면서 여행사에서는 만석인데 나에게는 예약 가능하다고 보이는 그 비행기 자리를 다시 확인하여 결국 외항사 티켓도 여행사 통해 원래의 일정대로 다시 처리할 수 있었다. 어제 내가 따로 끊었던 티켓은 바로 취소했고 정리된 최종 항공권을 출장자가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전달하면서 모두 해결을 보았다. 연휴에 출장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러모로 부담이었을 그에게 항공권으로 신경 쓰게 한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그는 겉으로는 내게 괜찮다고 했지만 별 생각이 다 스치며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잘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난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점심때까지 있었던, 잘못된 일 바로 잡는 과정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줄인 게 이 정도다.)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애초에 내가 담당자로서 항공권 영문 이름을 한 번만 확인했더라면 이 긴 상황을 겪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여 소비했던 시간을 박제해 놓기 위해서다.


우리는 일을 배울 때와 가르칠 때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많이 말한다. 기본 규정, 기본 매뉴얼, 기본 원리...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업무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그것을 종종 잊는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오래 해 오면서 그 일에서 겪을 만한 일들을 웬만큼 겪은 경우, 별문제 없이 넘어간 누적치가 많을수록 기본 사항을 사소하게 취급해 버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이번처럼 내가 그렇게 일했구나 하는, 머리 한 대 얻어맞는 상황에 직면하고서야 깨닫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출장 업무 초심자였던 때를 떠올려 본다. 항공권 메일을 받으면 출력해 영문 이름과 항공편명 시간등을 손으로 체크표시 해가며 잘 되었나 확인하던 내 모습이 보인다. 그게 기본이고 제일 중요한 사항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일일이 체크를 했었다. 여행사에서 잘했겠지만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내가 2차 체크해서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업무의 기본이었다. 그걸 망각한 바람에 소중한 휴일을 반나절 이상 소모하게 되었다. 시작이 잘못되었더라도 내가 중간에 확인했더라면 미리 조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기본을 잊은 업무 처리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10년 넘게 해  이 일이 싫지 않았다. 코로나로 2년 반동안 출장이 끊겼을 때 회사와 직원들이 나를 잊을까 봐 시키지도 않은 각 국의 출입국 규정을 정리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공지했고, 부서의 다른 일들을 좀 더 맡으면서 비워진 업무 공백을 메웠다. 임직원의 해외 출장 항공권과 비자는 모두 나를 통해 처리되니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다시 업무가 정상화되어 바빠졌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더 할지 모르지만 하는 동안은 여전히 잘하고 싶고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런 마음만큼 철저한 업무 처리에 부족함이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생각하는 업무 기본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느슨했던 부분을 다시 조여보려 한다. 아무리 경력이 길어도 기본이 중요함은 불변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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