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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y 25. 2023

우연히 혼밥 동지를 만나다

일하다 시간이 꼬여 밥때를 놓쳤다. 샌드위치로 대신할까 하다가 바깥바람을 좀 쐬어야겠다 싶어 점심 핫한 시간을 피해 사무실을 나섰다. 식당 많은 곳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혼밥 하기 좋은 분식집이 있다. 김밥도 맛있고, 라면, 들기름 김치볶음밥, 돼지주물럭덮밥 등 실하고 맛있는 메뉴들이 있어서 단골 식당 삼은 곳. 멋쩍게 아는 사람 만나면 혼밥에 집중할 수 없으니, 확실하게 만날 사람 없을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식당에는 혼밥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가운데 자리에 분위기 있는 긴 머리에 흰 피부, 블랙 옷을 착장 한 아름다운 모습의 한 여성도 혼밥을 하고 있었고, 빈자리를 골라 앉으며 그녀를 슬쩍 봤는데


어? 어머..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여성은 같은 회사 직원 S였다. 그녀와는 가끔 약속을 통해 점심식사를 하곤 하는데 이렇게 각자 혼밥하다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아는 이를 피해서 왔건만 너무 아는 사람을 만나버려서 나도 그녀도 살짝 당황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일단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고 어색함을 덮으려고 나도 모르게 수다쟁이가 되었다. 일단 김치볶음밥 주문하고.


나: 식사가 늦으셨네요. 저도 시간을 놓쳐서 늦게 나왔어요.

S: 저는 주변 좀 걷다가 밥 먹으러 왔어요. 차장님도 종종 혼밥 하시나 봐요.

나: 점심을 교대로 먹다 보니 좀 애매해질 때가 있네요. 별일 없었어요? 요새 많이 바쁘죠?



떨어져 앉아 얘기 나누는 걸 본 식당 아주머니는 "그리 반가우면 합석하시지 그래요." 하셨다. 그녀도 얼마 먹지 않은 상황이었고 어색하게 따로 먹느니 차라리 같이 먹는 게 낫겠다 싶어 서로 동의하고 그녀 테이블에 앉았다. 합석하긴 했지만 나는 먹는 내내 초반의 멋쩍음이 사라지지 않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떠들며 와구와구 먹었다.

 

는 정해놓은 점심 메이트가 없다. 업무 상 점심시간이 유동적일 때가 많아서 매일 함께 밥 먹을 짝꿍을 만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제때 나갈 때는 팀원들과 섞여 가고, 그렇지 못할 때는 도시락을 먹거나 기분에 따라 나가서 혼밥을 했는데 혼자서도 당당하게 잘 먹었다. 하지만 홀로 밥을 잘 먹는다는 건 나를 아는 이가 없는 곳에서의 얘기였다. 혼밥, 혼술, 혼영 등 '혼*'이 대세가 된 지 오래인 요즘 시대에 쓸데없이 남을 의식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아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업무 상 어쩔 수 없다 해도 혼자 밥 먹을 때 아는 이가 나타나는 순간 뭔가 치부를 들켜버린 기분이 되어 버린다.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초라한 처지로 전락당하는 듯한 느낌. 혼자선 아무렇지 않았던 상황이 순간 괜스레 서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간 내가 이미 혼자 와 있는 그녀를 발견했을 때 서로에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더 밝게 행동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혼자 먹는 밥, 그게 뭐라고. 그녀도 나도 매일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니 이 우연한 만남은 대수롭지 않은 에피소드에 불과했지만, 의도치 않게 혼밥 하는 동지를 만나 어색했던 기억은 좀 오래갈 것 같다. 그날의 식사는 어딘지 짜고 씁쓸하다가 어찌어찌 단맛으로 마무리되는 복합적인 맛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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