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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Dec 07. 2023

직장에서 생일이란

음력생일의 일화


기존에 있던 막내 사원이 퇴사하고 새로 입사한 직원이 있다. 그의 사이드 업무 중 하나로 팀원 연락망 업데이트가 있었다. 그 연락망에는 이름, 내선번호, 휴대폰번호, 그리고 생일이 포함되어 있는데 다른 항목이 달라지지 않아도 이 생일 때문에 매년 말이나 초에 한 번씩은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팀원들의 생일날이 매년 바뀌기 때문이다.


최근 신입사원이 내년도 팀원 연락망을 업데이트하여 공유했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팀원들의 음력생일이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날짜와 모두 달랐던 것이다. 다른 팀원들의 양력 생일은 맞았는데 음력인 팀원들의 생일은 음력도 틀리고, 그러니 양력도 틀려져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그 팀원에게 따로 카톡을 보내 알려주었다. 'oo 씨, 음력 생일자들의 생일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알고 있는 이들의 생일은 음력 며칠, 며칠, 며칠인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게 좋겠어요.'



잠시 후 그는 연락망을 다시 공유했다. 그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내게 와서, 자신이 음력날짜 계산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실수를 했다고 했다. 음력 생일자들의 올해 양력 생일 날짜를 기준으로 내년도 달력에서 음력 날짜를 찾아 넣었다고 말이다. 음력을 헤아려볼 일이 없었다면 그럴  있었싶었고, 이 연락망의 기능은 급할 때 연락할 전화번호이지 생일이 아니므로 다들 그저 일화로 넘겼다. 하지만 업무와는 상관없는 사항으로  당혹해하던 모습을 보며 괜히 미안함이 들었다.


우리 팀은 다양한 업무만큼 소속된 팀원 중 연장자도 다른 팀보다 훨씬 많다. 다시 들여다본 팀원 연락망에는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팀원과 양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팀원이 반반이었다. 그리고 그 나뉘는 출생 연도는 1980년 전과 후로 명확했다. 1980년 이전 출생자는 모두 생일이 음력이었고 그 이후 출생자는 모두 양력이었다. 아마도 부모 세대에서 생일 쇠어온 방식이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고 이 절반의 생일 날짜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신입팀원에게는 낯설었던 것이다.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1979년, 양력으로 1980년 초에 태어난 소위 빠른 80인 나도 사실 앞쪽 그룹과 같이 음력으로 생일을 쇠는 쪽이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가족 생일을 음력으로 챙기시니 친정의 음력 생일 문화도 사는 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서로 생일을 챙길 때 내 생일 날짜에 추가적 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했다. 나조차도 그러한데 내 생일을 챙겨주려는 친구들에게 귀찮음을 주는 것 같아 싫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대가 변하고 개인화되면서 가족이나 아주 친한 지인 외에 주변인의 생일을 특별히 챙기는 일이 줄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한동안까지도 회사에는 매월 특정 날짜에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직원을 모아 다 함께 축하하며 케이크와 빵을 나눠 먹는 월간 행사가 있을 정도로 같이 일하는 직원의 생일을 챙기는 문화가 있었다. 회사 동료를 한솥밥 먹는 가족이라 여기는 집단문화의 한 맥락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생일 양력 날짜가 매년 달라지는 것이 더 불편해졌고, 그 일을 하는 누군가가 매년 내 생일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은 뭔가 폐를 끼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나는 내 맘대로 내 사회적 생일을 주민등록증 상의 생년월일 날짜 그대로 양력으로 정해버렸다. 실제 생일은 음력 날짜가 맞지만 표면적 생일로 양력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팀 연락망에 내 생일은 양력 표기되어 있다.


여전히 엄마는 내 실제 생일(음력)에 미역국은 먹었느냐며 전화를 주신다. 나도 잊고 사는 내 실제 생일을 어김없이 축하해 주는 가족의 연락을 받으면 '아, 오늘이 진짜 내 생일이구나.' 하면서 그 한결같은 챙김이 감사하다. 나도 부모님에게서 배워온 대로 부모형제의 생일은 음력으로 챙기고 있지만 내 아이들의 생일은 실제 태어난 양력 날짜대로 쇤다.



생일에 대한 생각


생일이 음력이고 양력이 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생일은 내 역사를 아는 이들과 기념해야 할 소중한 날이지, 타인에게는 소중한 날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태어난 날을 가지고 있으니 그게 서로에게 뭐 별거겠는가.


탄생설화가 반짝이는 건 성인이 되기 전까지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면 이제 탄생이 아니라 생존설화를 꾸려가야 하니까. 나의 탄생은 그 역사를 기억하는 가족, 혹은 그 역사를 모르더라도 가족 같은 존재인 이들과 함께 나누면 다. 그런 의미로 이제 연락망에서 생일은 빼자고 건의해야겠다. 굳이 연락망에 넣지 않아도 온갖 네트워크에서 나와 연결된 이들의 생일을 대신 알려주니, 동료의 생일을 챙길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기는 걸로.


너무 매정한 이야기일까? 한편으론 하루 8시간 이상 매일같이 함께 일하며 생활하는데 동료의 생일도 챙길 사람은 챙기고 말 사람은 말고 하는 건 너무 정 없지 않냐는 반론도 예상된다. 하지만 공유 연락망에 생일을 노출한다는 것 자체가 직장이라는 곳의 특성상 서로에게 왠지 '챙겨야 하는' 의무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제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다른 직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동료의 생일을 챙겨주는지, 챙기지 않고 각자에게 맞기는지, 혹은 회사에서 챙기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직장 팀원의 생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이미지 출처: Unsplash_Becky Fant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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