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힘들었다면 조금 더 쉬운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바닷가에 A와 B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그들 집 앞에는 뻘밭이었다. 그 뻘에는 풍요로운 미네랄이 많아 낙지, 조개, 꼬막등 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이 두 사람은 그것을 캐기 위해 뻘밭을 들어갔다.
B라는 사람은 뻘에 들어갈 때 육지처럼 허리를 펴고 길을 걸었더니 자꾸 뻘 속으로 빠지는 것이다. 허우적거릴수록 움직임은 힘들어지고 몸은 가라앉고. 그런데 A라는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 덕에 그들은 낙지도 잡고 꼬막도 잡고 조개도 캘 수 있었다.
자~ 이제 생각해 보자. 같은 뻘밭인데 누군가는 수확을 하고 누군가는 뻘 밑으로 빠지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괴로워한다. 왜 그럴까? A와 B는 모두 뻘 밭에서 수확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차이는 한 사람은 경청을 하고 조직과 규범을 따르며 순응하는 스타일이었고 B라는 사람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여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언행을 거침없이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같은 귀로 경청을 하고 누군가는 차단을 한다.
그럼 상담사인 나는 어찌 말해 줘야 할 것인가? 뻘 밭에서 걸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줘야 한다.
"당신은 뻘밭에 있으니 현재 무척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말만 듣는다면 나 역시도 절망뿐일 것이다. 명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이렇게 길을 찾기 위함이다. 오행의 기운을 계산하고 이 기운들이 대운과 세운에 따라 어찌 흐를 것이며 어떤 대비와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결코 절망만 전해서 끝내면 안 된다고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물론 알지 못하는 길도 있다. 내비게이션으로 손쉽게 갈 수 있는 현재도 아직 등록되지 않는 길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경우는 이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찾아보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상담사가 되고 싶다. 그 길을 찾는 것이 때론 어렵겠지만 그래도 내가 찾은 조그마한 해결책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씩은 절망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절망과 우울이 머물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 길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외칠 때도 있었다.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보는 심정으로 명리를 연구하면서 해결책을 찾는 그런 상담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