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귀국 편 비행기 창가에 기댄 채 삐딱하게 앉아 엄마의 잠든 얼굴을 뜯어보았다. 여행 중 방문한 미술관에서 평생 다시 못 볼 각오로 비장하게 바라보던 어느 유명한 명화처럼 숨죽이며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유럽 여행 일정을 마무리한 엄마의 얼굴 구석구석에는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여독의 무게가 엄마의 두 눈꺼풀을 무겁게 누르는 듯했다. 아, 이전에 엄마의 얼굴을 이렇게 오래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잠자코 바라본 엄마의 모습은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엄마의 이미지보다는 조금 더 야위었고, 건조했다. 고무줄처럼 탱글 하던 피부의 탄력은 희미해져 갔다. 눈가의 선을 따라 길게 연결된 눈주름의 여러 겹으로 겹쳤다. 팔자주름도 이전에 관찰했을 때보다 움푹 패였다. 어렸을 때 듬직하게만 보였던 엄마의 몸이 한없이 연약해서 기대면 허물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피지 못한 꿈의 흔적과 가정에 대한 희생 같은 안타까운 흔적들이 얼굴과 몸 곳곳에 가득했다. 엄마는 세월이 지나며 늙는 건 자연의 섭리라며 최소한 아무렇지 않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당신의 말투, 표정에서 묻어나는 씁쓸함은 숨길 수 없었다. 엄마가 늙어가는 만큼이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으며,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을 날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공고해지는 것 같아 서글펐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서글픔은 나를 사유의 늪으로 끌고 내려갔다. 이번 여행을, 엄마의 모습에 대한 단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가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와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며, 엄마의 안부를 확인했던 나에게 어느 날부터 엄마, 그리고 가족의 존재는 삶의 언저리로 물러났다. 고등학생 시절엔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 날짜가 바뀌기 직전에야 간신히 집에 돌아오곤 했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가족끼리 살을 부비며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늘 부족했다. 마음처럼 올라주지 않는 성적 덕에, 부모님과 나 사이의 엇갈린 진로 희망으로, 부모님과의 관계는 얇디얇은 살 얼음판을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타지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되며 비좁은 기숙사 방과 허름한 자취방을 전전했다. 주말에도 남자친구와 만나야 한다는 설렘과,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유횟거리에 빠져 집에 들어가는 날은 흔치 않았다. 졸업 후에는 가족 없는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한 겹 한 겹 평일에 누적된 피로를 주말에 몰아서 풀어야 했고, 주말에 가족을 보러 가는 일은 늘 뒷전이었다. 가족을 만나는 건 급한 일이 아니니까, 언제든 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늘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늘 변치 않고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멈추어 있을 것이라는 안정감과 나태함이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날짜를 자꾸만 뒤로 미루어 버리곤 했다.
문득 작년 겨울,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도래함을 깨달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걸까. 시간의 속절없음에 대한 의식적인 깨달음은 나를 각성시켰다. 시간의 속도는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정확히 같은 속도로 적용될 것이라는 깨달음은 안정감과 나태함이라는 견고한 보호막을 깨고 나오도록 했다. 해가 거듭 지나며 점점 엄마가 나를 낳고 엄마가 된 나이에 근접해져 갔다. 종종 엄마 생각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 결혼도 늦게 했다던 탐험가 엄마.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며 조부모님께서 대학을 보내주시지 않자 이에 굴하지 않고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 씩씩하게 대학 졸업까지 마친 꿈 많았던 엄마. 꿈도 많고 탐험을 좋아했고 해보고 싶었던 일들도 많았던 소녀는 내가 태어나며 당신의 이름 석 자보다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아, 나는 아직 내 몸뚱아리 하나 이 세상에서 견고하게 발 붙이도록 하는 것마저 버거운데. 엄마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생명을 잉태했고, 생명을 지켜냈구나. 마냥 엄마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한 경외심이 새삼스레 솟아났다.
엄마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서글퍼졌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마저 엄마를 닮았는지, 나는 해외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될 때마다 해외 여행지를 검색하고, 망설임 없이 비행기를 예매하며 해외로 떠나는 나를 보고 주변인들은 무슨 역마살이 끼었냐고들 말한다. 해외를 몇 번이고 다녀오고, 다녀온 해외 여행지에서 경험한 것들, 맛본 것들에 대해 엄마에게 자랑하곤 했는데. 정작 엄마는 나를 낳고 해외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니. 엄마가 건강하고 체력이 괜찮을 때 엄마와 해외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갑작스레 엄마에게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이렇게 엄마와의 단 둘이 유럽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이번 여행만큼 엄마와 오래 붙어있었던 시간은 근 십 년간 유일무이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다니는 2주 동안, 27년 간의 지난 세월 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엄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새삼 놀라웠다. 늘 놀러 가면 자식들 사진만 찍어주는 엄마도 예쁜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어 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광 명소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며, 내가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이리저리 뜯어보시는 모습.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 엄마도 굴뚝방, 젤라또 같은 유명한 간식들을 맛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익숙한 엄마의 모습은, 아이스크림이나 빵 같은 것들이 몸에 안 좋다고 잔소리하는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굴뚝빵에 아이스크림과 초코 시럽까지 듬뿍 얹어 먹으며 혀에서 녹아내리는 달콤함에 함박웃음을 짓는 엄마의 모습이 새로웠다. 피곤하면 사소한 핑계로 짜증을 내고, 유럽풍의 건축 양식을 보며 동화 속의 공주가 된 것 같다며 빙글빙글 춤을 추고, 세상 심각한 표정을 음식 메뉴를 고르는 엄마를 처음으로 '엄마'라는 프레임 밖에서 관찰했다. '엄마'가 아닌 지구에 살고 있는 한 명의 사람, '이영미'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영미'로 바라본 엄마의 삶은, 꿈보다 자식들이 먼저인 희생의 삶이었기에 안쓰러웠고, 여자가 아닌 엄마로서의 삶이 비교불가하게 길었기에 서글펐다. 수많은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아왔기에 아까웠다. 여행의 작은 순간에도 까르르 소녀처럼 웃는 당신의 얼굴이 수많은 근심과 희생에 무너져 내렸던 것을 알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자식들이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기에 엄마는 행복하다고 할 것을 알기에 더욱 쓰라렸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냐?'
잠들어 계셨음에도 나의 뜨거운 눈초리가 느껴졌는지-그럴만도. 계속 쳐다보고 있었으니- 엄마는 어느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 그냥 잠도 안 오고 멍하니 있었어.'
변변찮은 핑계를 댔다. 이후 흐르는 정적-. 문득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엄마가 그동안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베푼 숭고한 희생을 사랑하며, 엄마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던 세월들을 사모한다고 열렬히 고백하고 싶었다. 왜 애인에게 사랑 고백하는 건 이토록 쉬우면서도, 엄마에게 사랑 고백하는 건 어려울까. 결국 나는 사랑의 '사'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고, 긴 비행 끝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끝났고 엄마와 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서로 다른 목적지로 떠나야만 했다. 동행의 시간은 막을 내렸고 각자의 집으로 향해야 했다. 내가 예매한 버스 시간이 엄마의 버스 시간보다 더 빨랐기에, 엄마를 공항에 두고 먼저 출발해야만 했다. 나는 잠자코 고속버스에 탔고, 엄마는 버스 밖에서 버스 창문을 통해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아, 이번에도 엄마를 두고 떠나는 건 나구나. 늘 그래왔듯이. 버스 밖으로 내려다보는 엄마는 그날따라 작아 보였고, 연약해 보였다. 어린 시절 나의 우주였던 당신이 더 이상 강건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가냘파 보인다는 건, 시간이 흘렀다는 표식이며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반증이겠지. 우리 둘은 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한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2주 동안 내내 붙어있던 엄마와 작별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1차적인 이유였다. 늙어가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 엄마와 언제 또 이렇게 오래 붙어있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서러움, 희생으로 지나가버린 엄마의 젊음에 대한 애도... 여러 감정이 가슴에서 피어 올라왔고 나의 눈물을 부추겼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야 버스에서 내렸고, 집에 도착했다. 엄마의 삶, 나의 삶,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 매일 하루씩 가까워진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진리를 알고도 모르는 척하며, 때로는 망각하며 하루하루를 명랑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그렇게 조용히 사그라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