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11월을 보내는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11월도 어느새 절반이 넘게 흘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많이 웃었으며, 단풍 구경을 하며 잎사귀의 찬란한 마지막 공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겨울 옷을 사고 전기장판을 꺼내 뜨끈한 겨울 준비도 해두었다. 대단한 행운을 거머쥐거나 내세울만한 성취를 일궈낸 건 아니지만 올해 11월은 그럭저럭 행복하게 잘 꾸려나갔다.
그동안 나의 삶의 데이터로 놓고 보았을 때 11월은 썩 반가운 달은 아니었다. 9월이나 10월은 가을, 수확, 그리고 명절 같은 단어가 풍성한 단어들이 연상된다. 12월은 연말, 크리스마스, 송년회, 모임 같은 포근한 단어들이 연상된다. 반면 11월은 심판, 허무함, 회한 같은 버거운 단어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차갑게 식곤 했다. 철렁해진 가슴은 바닥에 납작하게 내려앉았다.
11월이 나에게 심판의 달이 된 것은 '수능'과 '임용고시'의 영향이리라.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 시기를 겪어 본 사람들은 11월 중순에 가까워지면 '수능 공기', '수능 냄새'가 피부로 느껴진다고 한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수험생이었기에 매년 수능 시험이 치러질 즈음에 수능 냄새, 수능 공기의 밀도, 질감, 냄새를 느낀다. 수능을 치른 지 시간이 꽤나 지났고, 수능과 상관없는 삶을 산 세월이 길어져 가는데도 사냥감의 피 냄새가 각인된 육식동물처럼 수능의 공기와 냄새를 직감한다. 매정하고 잔인한 공기와 냄새다. 냉랭하고, 매정하고, 살을 에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몸의 구석구석, 폐나 심장 같은 장기까지 미세한 구멍을 뚫어 대는 것만 같았던 공기. 폐를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기조차 버거운 고구마만큼이나 뻑뻑한 공기의 밀도. 지나치게 매끈하다 못해 베어버릴 것만 같은 그날의 질감. 얼핏 흙이나 낙엽이 썩는 냄새 같으면서도 무언가 인생의 한계와 허무함에 대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코를 스치는 냄새.
2016년 11월, 고등학교 3년간, 어쩌면 고등학교 과정을 밟기 위해 준비한 인생의 전 과정이 하루 만에 평가된다는 수능의 중압감에 기죽었다. 수능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기에 생애 첫 수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집안의 공기마저 얼어붙었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점수를 보고 한숨을 연거푸 쉬셨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찌어찌해서 수능 점수로 교육대학교를 가긴 했지만, 이전까지 교사를 꿈꾼 적은 없었기에 사실 그 수능 점수로 인해 내 삶은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매년 수능이 가까워질 무렵, 수능 공기와 수능 냄새가 내 몸의 예민한 감각을 자극할 때마다 나는 19살의 연약하고 불안한 아이로 돌아가곤 했다.
수능을 치르고 정확히 4년 후, 하필 또다시 11월에 '임용고시'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첫 임용고시에 낙방했다.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한 것 같다는 예감에 마음의 준비를 한 탓인지 결과 발표 화면에서 '불합격입니다'라는 문구와 마주했을 때는 오히려 담담했다. 수능으로 이미 실패에 대한 면역이 생겨서인지 당시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허나 임용고시 재수라는 대가는 예상보다 고통스러웠다. 임용고시 재수 끝에 비로소 합격할 수 있었으나 이로써 나에게 11월은 심판의 달이라는 이미지가 공고해졌다.
그동안 매 11월에는 올해도 그저 그렇게 흘러버렸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올해는 기필코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며 온갖 계획을 세우던 연초를 회상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일궈낸 것 없이 내년을 받아들일 생각에 의기소침해졌다. 내년에 얻을 건 한 살 더 많은 나이뿐이겠구나, 체념의 한숨을 들이마셨다. 주변에서 하나 둘 크고 작은 것들을 성취해 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삶이라는 길목에서 엉거주춤 뒷걸음질 치는 게 아닐까, 회색빛 상념에 젖어들었다. 기차를 타고 창가를 바라보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나무가, 아파트가, 산과 강이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이듯이, 자꾸만 그들이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퇴보하는 것만 같았다. 욕심은 많지만 무엇 하나 힘 있게 밀어붙일 끈기는 부족한 자신을 자꾸만 구석에 밀어붙이며 자책했다.
올 11월도, 여느 해와 같을 뻔했다. 11월은 항상 나에게 얄궂은 달이었기에 침대에 누운 채로 휴대폰 달력이 11월 1일로 넘어가는 광경을 목도하자마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했다.
'아, 또 벌써 11월이야. 시간 진짜 왜 이렇게 빠르냐. 올해도 망했네. 차라리 연말 분위기라도 느끼게11월 건너뛰고 12월 와버렸으면 좋겠다.'
'연말 분위기가 좋긴 해. 크리스마스도 좋고. 그래도 올 11월은 덜 춥잖아? 나가서 올해의 마지막 가을을 마음껏 만끽해 보자고! 11월 한 달을 슬프게 날려버리기엔 너무 아쉬울걸? 너 올 한 해도 열심히 잘 보냈잖아! 즐겨!'
친구로부터 짧지만 애정으로 끈적끈적한 답장이 왔고, 이 담백한 메시지가 올해의 11월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나에게 11월은 무언가 시작하기엔 늦었고, 지리하고 의미 없는 시기이며, 연말처럼 기대에 부풀고 친구들과 즐기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는 틀이 강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의 메시지를 한 문장, 한 문장씩 뜯어내어 음미해 보았다. 올해의 마지막 가을을 만끽하자, 11월을 슬프게 날려버리기엔 아쉽다, 나는 올 한 해 열심히 보냈다... 친구의 말대로 올해는 폭염이 유난히 길어서인지 올 11월은 쌀쌀하기보다 선선한 바람이 흩날리는, 가을을 만끽하기 적합한 날씨였다. 우울감에 잠식된 11월을 보내는 것보다 단풍 구경을 하고, 선선하고 상쾌한 날씨를 즐기는 게 이로울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올 한 해를 열심히, 잘 보냈는가? 올해 내 삶의 궤적에 변수가 생겼다던가 특출난 성과를 만들어낸 일은 없었다. 그저 빈둥거리며, 혹은 무력감에 누워 보낸 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올 한 해를 나노 단위로 쪼개 보면, 작은 행복들과 소소한 성취들은 존재했다. 친구들의 기쁜 일에는 함께 기뻐해줬고, 그들의 슬픔을 나누려고 하였다. 소중한 이들에게 책이나 핸드크림 같은 조그마한 선물을 하며 짧은 미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월급의 일부를 꾸준히 저축하고 있다. 소액으로 매 달 투자를 하기 시작했으며, 브런치 작가 승인도 받았다. 눈에 띌 만한 삶의 변화는 없었으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을 느리게 구축해 나간 것은 분명했다.
그래, 이 정도면 올 한 해는 성공한 것이리라. 내 삶의 작은 꾸러미 하나를 살뜰히 꾸려 나간 게 맞으리라. 올 11월은 심판이 아닌 보상의 달로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언제껏 스스로를 심판의 프레임에 가둘 수는 없다. 연말의 피날레를 맞이하기 전, 스스로를 무기력함을 털어 내어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일어나기 위해 달력 어플을 열고, 여러 계획을 세웠다. 이번 11월은 글을 쓰고, 단풍 구경을 하고, 공연도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리라.
이번 11월은 그동안의 프레임을 깨려고 부단히 움직였다. 친구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갔으며, 평소 애정하는 시집을 친구에게 건넸다. 애인과 함께 단풍 구경도 여러 번 했으며, 은행잎을 밟고, 은행 열매의 악취에 코를 막으며 함께 깔깔 웃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선선한 가을의 공기를 정통으로 맞으며 노트북을 타이핑하며 글을 써냈다. 가을의 감성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틀어놓고 침대에서 마음껏 뒹굴거리기도 했다. 내 11월은, 오랜만에 행복으로 꾹 눌러 채워졌다.
어쩌면 그동안 나에게 11월은 트라우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달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속적인 시험에 대한 압박, 한 해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같은 것들이 켜켜이 중첩되었고, 결국엔 11월이라는 시간 자체에 부정적인 감정을 투영하고야 말았다. 심판, 회한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덧입혀진 11월에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열두 달 중 한 조각인 11월을 더 이상 우울함이 드리워진 채로 어기적거리지 않아야겠다.
어느 11월, 힘들었던 시간들은 과거의 흔적 정도로 묻어 두고, 단풍 구경,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 전기장판을 틀어두고 귤을 까먹는 등의 소소하지만 주체적인 행복의 시간들로 11월을 덧입히리라. 인생의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만이 한 해의 성공이라고 여기지 않으리라. 그저 한 해를 묵묵히 걸어온 것, 무탈히 잘 꾸려 온 것만으로도 그 한 해를 잘 살아왔다고 할 수 있으니.
아, 올 11월은 조금은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