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영등포에서
영등포에는 유난히 노인들이 많았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 가장 젊은 연령대가 최소 60대로 보인다. 타임머신에서 내린 듯한 착각이 드는 예스러운 구멍가게와 옛날과자, 땅콩, 손뜨개 모자와 형광핑크 니트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현금만 가능한 옷가게에는 눈이 시리게 채도 높은 형형색색의 스웨터들이 시신경을 자극한다.
'붕어빵 2개 천 원’.
흰 눈이 마구 내리는 도로 모퉁이에 붕어빵 가게가 있다. 골판지 조각에 손 글씨로 적힌 문구가 눈에 띈다. 2개 천 원이라니 어르신들 상대론 좀 비싼것 아닌가 싶은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풀빵 장사도 힘들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동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아서인지 추억의 간식들이 많이 보인다.
단팥이란 게 우리 아버지 세대에선 가끔 못 견디게 먹고 싶어지는 간식인 것 같다. 남자 어른들에게 뭐 드시고 싶으세요 물어보면 찹쌀떡, 단팥죽, 팥빙수 같은 이름들이 단골로 등장하는 걸 보면.
다시 보니 한 봉지에 얼마가 아니라 2개에 천 원이라고 라고 적힌 게 특이하다. 하기야 혼자 사 먹는다면 한 개는 아쉽고, 세 개는 배부르고, 두 개가 딱 적당하겠다. 저렇게 잘 보이게 써 놓은 걸 보니 이 가게를 들르는 대부분 손님들은 혼자인거다.
프렌차이즈 카페에 들렀다. 역시나 아르바이트생과 나를 제외한 모두가 노령의 손님들이다. 비틀거리는 하얀머리의 할머니, 그녀를 부축하며 커피쟁반을 든 할아버지의 발걸음도 위태롭다. 나머지 손님들은 대부분 흡연석에 빼곡하게 앉아 자욱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신 인테리어 공간을 채운 경성시대 사람들 사이에 나도 앉아 커피를 시켰다.
기이하고, 재미있고, 외로운 영등포
나이듦이라는 게 뭘까.
어쩌면 나는 막연히 얼굴의 주름이나 몸의 셀룰라이트, 처진 눈꺼풀처럼 외모의 변화만 상상했나보다. 언제까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과 에너지는 변함없을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요새는 조금 알겠다.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노화라는 것은 자유를 조금씩 잃는 것이다.
마음껏 볼 자유, 마음껏 걷고 달릴 자유, 마음껏 꿈 꿀 자유, 마음껏 일할 자유의 영역이 서서히 좁혀지는 것이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점점 굳어가는 신체에 갇힌다. 예전처럼 멋모르고 움직이다 충격처럼 통증을 겪는다. 정신력이라는 것도 신체의 컨디션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저런 고통에 몸이 익숙해지면서 의욕도 서서히 수그러들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늙는 속도는 더디다. 아직, 여전히 충분히 젊은 마음들은 그 다음부터 어떻게 되는건가. 나이따위 모른 체 하고 살았지만 실은 곧 40대 후반이고 곧 50대다.
아. 갇히고 싶지 않다. 백발이 되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꿈을 꾸고 싶고, 용감하고 싶다. 그런 마음은 20대때보다 어쩌면 더 간절하다. 쓸쓸해지더라도 금방 즐거워지고 싶다. 시간이 아까우니까. 슬퍼지면 바삭한 붕어빵이라도 씹어먹고 금새 기운차려야지 어쩔거야.
진눈깨비는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서 펑펑 내리고 있다. 카페 창밖을 내다보니 자동차 대신 전동 휠체어가 주차되어 눈을 맞고 있다. 그 앞으로 고단한 얼굴의 앞치마를 멘 아주머니 둘이 얼른 담배를 몰아 태우고 사라졌다. 삶은 계속 흐른다. 문득 옛 가요가 떠오른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그 때 이 회한 가득한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23살이었는데, 이제사 50이 넘었을 이 언니는 잘 살고 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