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놓았던 감정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아주 작은 틈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해서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큰 물이 되어 난폭하게 흐른다. 화면구성이 아름답거나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했던 여자랑 뻔하게 헤어지고, 아련한 배경음악위에서 스치듯 다시 만나기라도 하면. 그래서 실제의 나와는 털끝만큼도 닮지않은 영화배우가 남긴 업무의 결과물을 담담한 기분으로 공감하기라도 하면. 재수없게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화면속으로 빨려들어가 그 남자의 삶에 들어앉는다. 깎지않은 수염과 희죽죽한 옷차림의 그 남자로. 오랜시간 후회와 술로 살다 그리워한 이를 다시 만난 그 남자로. 눈물을 펑펑 쏟고, 그 여파로 밤새 앓아눕는다. 누가 그리운지 알지도 못하면서,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알지도 못하면서.
눈물콧물 질질 흘리면서도 잘생기는게 직업인 그 남자와 달리, 마흔과 백키로에 가까운 나의 그 행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그 여자와 상상해본적도 없는 그 관계를 완벽하게 반으로 가른다. 이 외딴 도시에 혼자서 살게 된 이유를 새삼스레 알게된다. 당연히 사는동안 사랑했던 여자들 중 한명이 그리운 것이라 생각하다 몇 분이나 집중해서 생각해도 명확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당황한다. 물론 그 때, 절절히 사랑했으나 지금 쯤 누군가의 아내가 또는 엄마가 되어있을 것이라 상상하면 그 편이 나에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도 그리워할 수 없을만큼 사는게 퍽퍽해진게 서러워서 그랬나 생각하다 예상했던 것 보다 잘 살고있음을 떠올리고 머쓱해진다.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으나 결국 인정한다.
꼴사나운 모습으로 눈물 펑펑 흘리며 그리워한게 특정할 수 없는 그 여자가 아니라 나였음을. 취하도록 술을 마시는데, 길렀던 머리를 자르는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유가 있던 그 시절의 내가 갈비뼈아래에 갖고있던 용암으로만든 공. 그 공이 그리워서 펑펑 울었음을 말이다. 그리워할 이 하나 없이 살다 결국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지경이 된 나에게 그렇게까지 자책할필요는 없다며, 남들도 다 이정도 외로움은 갖고 산다며 어정쩡한 포즈로 위로하다 급격히 건조해진다. 우울해진다. 눈물을 흘렸으니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수위가 아슬아슬한 저수지로 돌아간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큰 물이 -마치 무한동력처럼- 내 안에 다시 들어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