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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일희 Apr 20. 2024

투명 인간의 무릎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파주시청의 '올빼미' 


용주골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경찰차와 관용차로 막혀있었다. 여기가 게토인가? 왜 사람 사는 곳의 출입구를 막는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연풍리 회전교차로까지 내려가 에둘러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촛불시위에 앞서 조용히 수런거리고 있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집결지 종사자들은 왜 촛불을 밝히려는 것일까?      


파주시는 지난해부터 공무원을 동원해 용주골 야간 순찰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올빼미’라 불리는데, 예닐곱 명이 한 조가 되어 집결지 주변을 감시하는 활동이다. 올빼미들은 앞면에는 ‘여성친화도시’ 뒷면에는 ‘여성인권지킴이’라 새겨진 조끼를 입고 경광봉을 흔들고 다니며 성구매자를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성구매자를 차단하면 생계가 막막해질 집결지 종사자들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꼴이다. ‘여성’친화, ‘여성’인권이 번번이 집결지 ‘여성’들 앞에서는 멈춰 선다.     


집결지 주변을 순찰함과 동시에, 올빼미들은 성매매는 범죄라거나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집결지 출입구 두 곳에 도열해 ‘너희들의 삶은 불법이다’, ‘여기서 나가라’고 배제와 혐오의 언어를 발신한다. 이 모든 폭력이 ‘여성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용주골에서 벌어지고 있다.    

  

파주시는 지난해부터 내내 집결지 내 건축물을 철거하겠다고, CCTV를 달겠다고, 집결지 가림막을 철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집결지 여성들을 괴롭혀왔다. 이와 동시에 낮에는 ‘여성이 행복한 길’로 시민들을 집결지로 끌어들여 여성들의 삶을 무람없이 기웃거리게 만들었고, 밤에는 ‘올빼미’로 여성들의 삶을 감시하고 옥죄어왔다.      



어디 이뿐인가? 표적 수사로 검거된 집결지 여성을 성매매 혐의로 기소하고(성구매자는 기소 유예 되었다), 경찰이 성구매자로 위장하고 잠입해 성매매를 단속하고 처벌했다. 여성들이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각각의 사정과 구조적 부정의는 삭제하고 단지 감시와 통제로 여성들을 억압했다. 여성인권단체 연합으로 구성된 성매매 처벌법 개정연대(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취지)가 버젓이 있지만, 용주골에서 성매매로 처벌받는 여성들에겐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파주시는 여성들이 만나 달라고, 대화해달라고 애원해도 아랑곳없었다. 소리쳐도 들어주지 않는 공권력을 향해 여성들은 촛불을 들었다. 약자의 외침이 점점이 점화되었다. 올빼미들이 마을 입구에 나타나자, 한 여성이 ‘올빼미’를 주관하는 파주시청 성매매집결지 담담 공무원에게 달려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곳에 있는 여성들의 사정을 들어달라고, 냉랭한 담당 공무원의 바짓가랑이를 붓잡았다. 그는 뿌리쳤다.       


시민 연대자들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집결지 출입구에 서 있는 공무원들에게 다가가 애원했다. 돌아가달라고. 절대 대꾸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성실히 준수하는 그들은 연대자들의 읍소를 음소거했다. 무시해도 괜찮은 목소리는 홀로 커졌다 작아졌다 할 뿐 공무원들에겐 도달하지 않았다. 여성들과 연대자들은 투명 인간이었다. 누가 이들을 무릎 꿇리게 하는가. 무엇이 이들을 투명 인간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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