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리뷰
드라마 ‘응팔’의 정이 넘치는 마을과 이웃으로 상상되는 공동체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어려움을 해결해왔다고 믿으라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을은 정말 실재했을까. 영화 <그녀의 취미생활>의 배경인 시골 마을은 한 여자가 소녀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하고 착취했다. 어느 마을이 진실에 더 가까울까.
드라마라는 허구를 벗기고 수십 년 전 내가 살았던 마을에 틈입하면, 이웃 ‘아저씨들’은 소아 성추행범이었고, 믿고 터놓은 비밀이 며칠도 지나기 전에 소문으로 떠돌아 집단 따돌림이 일어나던 곳이었다. 이렇듯 정을 나누었다고 믿어지는 이웃사촌은 내 가족의 이익과 가부장을 위해 허무하게 무너지지만, 이런 가족중심주의는 지탄받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가부장이 수호하는 가족을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요즘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는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도 자식(가족)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버리는 ‘몹쓸 아버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이 아버지들이 정말 지키고자 했던 것이 자식들인지 의구심이 든다.
고등학교 친구 둘을 살해했다고 믿어지는 정우(변요한)가 형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마을은 술렁댄다. 경찰의 압박으로 거짓 자백을 한 정우는 친구들을 죽인 진범을 찾아 그들의 억울함을 해원하고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정우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하면 할수록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거칠어진다. 정우의 집 담벼락은 살인마는 꺼지라는 낙서로 도배되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라 겁박한다.
정우가 아저씨 아줌마로 부르거나 삼촌이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들이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정우를 제물 삼았다. 마을에서 가장 잘 살사는 정우 부모와 학교 스타 정우가 제물의 표적이 된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꿈틀대는 시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정우 부부가 해외여행을 간 공백은 일사불란한 범죄 조작의 시공간을 내주고, 가장 잘나가는 가족이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목격하는 마을 사람들은 이웃사촌이 땅을 늘리며 앓았던 배앓이를 일거에 해소한다.
정우는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였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준수한 외모와 인성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고, 게다 부유한 부모가 든든한 뒷배이고 보면 거의 완벽한 ‘워너비’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선망한다는 의미를 뒤집으면 스타가 정상의 자리에서 추락하는 것이 보고 싶다는 시기심이 나온다.
정우라는 우상의 옆에 있는 친구들은 종종 “따까리”로 불리며 열등감을 키운다. 그날 정우의 친구이자 보영의 친구였던 병무(이태구)는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였던 보영(장하은)을 성폭행한다. 성폭력의 이차가해 공식처럼 일컬어지는 야한 옷차림이나 성적 틈새 때문이 아니라, 남자의 열등감을 누설했기에 성폭행을 당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죄자 유형이 여자들이 무시하는 것 같아 강간과 살해를 저지른 범행과 유사한 맥락의 ‘미소지니’와 ‘페미사이드’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이 정신 이상으로 선처를 받은 것처럼, 병무는 그깟 성폭행쯤은 별거 아니라는 아버지들의 교감 속에 보호받고 은폐되었다. 지지리도 못나고 사악한 부성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들에게 반성의 빌미조차 요구하지 않고 일제히 함구한 아버지들이 난무하는 사회에 ‘미소지니’의 피해를 막고 회복시킬 어떤 희망이 있을까.
‘웰컴투 비디오’ 손정우 사건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범죄가 엄마 없이 자란 때문이라고 호도했고, 그가 미국으로 송환되어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아들을 고발하는 희극을 연출하지 않았는가.
성폭행당하고 죽은 보영의 아버지 동민(조재윤)은 어떠한가. 딸이 죽고 10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딸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범죄의 진실을 파헤치기는커녕 딸의 목숨 값으로 집을 사고 술을 사고 오직 정우만 증오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씻었다.
딸이 죽기 전 그는 가정폭력 상습범으로 아내와 딸을 수시로 두들겨 패는 패악 질을 일삼았지만, 경찰에 신고되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소외되지 않았다. 많은 여자들이 남편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고통받거나 죽어가지만, 이는 여전히 그저 ‘가정의 폭력’으로 축소된다.
정우를 죽이려고 나타난 동민에게선 소중한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심이 엿보이지 않는다. 살기등등한 그에게서는 자신의 소유물을 함부로 훼손시킨 침해에 대한 앙심이 있을 뿐이다. 딸의 살인자를 처단함으로써 그가 풀려나고 싶었던 것은 잃어버린 딸을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한이 아니다. 정우가 그가 겨눈 총구 앞에서 “그때(보영이 죽을 때) 아저씨는 뭐했느냐”고 놓은 일침처럼, 그저 자신의 부끄러운 부성의 부재를 황급히 지우고자 함이었다.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딸을 사랑해 보지 못한 아버지는 딸의 애도에도 무참히 무능했다.
보영 살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즈음 하나씩 봉인이 풀리는 다은(한소은) 죽음의 수수께끼는 드라마를 더 보기가 참담할 정도로 망한 공동체의 실체를 드러낸다. 가해의 무감각과 망각, 피해에 대한 인정과 성찰의 부재, 오직 출세와 정치적 이득을 위한 공모와 권모술수, 내가 사는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만 우리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의 이기심이 적나라하다.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동력은 하설(김보라)과 목격자 시민과 경찰 상철(고준)이다. 자폐를 가진 수오(이가섭)의 그림이 그날 범죄의 현장을 목격한 증거라는 걸 알아차린 하설은 대단한 대의가 아닌 ‘이건 아니지’라는 단순한 정의감으로 정우를 돕는다.
교통사고가 난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 역시 억울한 사람이 범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시민 됨으로 증언을 결심한다. 상철은 자신이 잡아넣은 범죄자에게 아내를 잃은 분노를 극복하고 범죄자 잡는 게 자신의 일일뿐이라며 왜곡된 가해와 피해를 바로잡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이들의 단순한 양심 말고 무엇이 더 요구될까.
영화 <베테랑1>에서 시민들은 목전에 벌어지는 폭력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휴대폰의 카메라만 들이대고 있었다. 10여 년이 지나 <베테랑2>에선 휴대폰 촬영 시민들은 너도 나도 정의를 고발한다는 유튜버가 되어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가해와 피해에 대한 공동 감각은 오직 대리되고 중계되는 SNS에서만 효용을 발휘할 뿐이다. 눈앞에 벌어지는 실재하는 폭력과 피해에는 철저히 눈 감고 말이다. 마을에서 여자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모조리 사라질 동안, 작동한 게 오직 휴대폰의 카메라와 SNS의 요란한 알림뿐이라면, 이것은 사회인가 지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