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 (김하늬 등, 2025, 해냄출판사) 서평
내가 자유롭게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건 남편을 만나고서다. 연애하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성장 과정을 공유하게 되는데, 내 입장에서 이 남자는 안 해 본 게 없었다. 그의 성장담이자 모험담은 무척 흥미로워서 들을 땐 킥킥거리는데, 이게 지나고 나면 묘한 박탈감을 샘솟게 했다. ‘저 남자가 저렇게 신나게 살 동안 난 대체 뭘 한 거지’ 하는 상실감 말이다.
어려서부터 동네 개구쟁이로 악명이 자자했던 남편은 하교 후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종일 뛰어놀았다. 게다 유년 시절 나름 유복했던지, 어려서부터 보이 스카우트니 각종 운동이니 하고 싶은 여가 활동이 그친 적이 없었다. 안 한 건 공부밖에 없었다. 그 스스로도 공부 안 한 거 빼고 인생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환경의 뒷받침과 타고난 외향적 성격도 그의 모험 가득한 삶에 큰 몫을 했겠지만, 그의 자유를 보증한 건 무엇보다 그가 남자라는 성별에 있다. 60년대생 동시대인이었어도 여자인 나는 그가 누린 백분의 일의 자유도 누려보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 남편에게 이런 회한을 말하며 “다음 생엔 꼭 남자로 태어나 당신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웬일인지 흔쾌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다르게 성장한다는 걸 양심상 부인할 수 없었나 보다. 여자아이가 가족을 돌보는 보조자로 키워질 동안, 남자아이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다. 이후의 삶이 다른 건 당연하지 않겠나.
나도 결혼 전까지는 아웃도어 활동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는 젊을 때라 체력도 뒷받침해 주어 산을 종종 다녔다. 다행히 동반할 친구가 있었지만 결혼과 육아로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혼자 남게 되자 의기소침해졌다. 그때 내게 ‘WBC(Women’s Basecamp)’같은 모험심 강한 여성 공동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기쁘고 다행인 건 너무나 선명한 남녀 구별과 차별 속에서도 자신의 아웃도어 삶을 다채롭게 채워가는 (젊은) 여성들이 있고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여성들의 도전과 모험의 이야기가 <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에 있다.
책은 김하늬, 김지영. 윤명해 여성 셋이 의기투합해 ‘WBC’를 만들고 유지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면면을 보자면 천성이 야성녀여야 들판에 텐트 치는 용기를 내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다만 각각 몸을 인식하고 잘 쓸 줄 아는 여성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들에게 몸은 누군가의 대상체다.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충분히 알기도 전에 여자들은 몸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남자아이들만 바글대는 운동장에서 초등시절을 겨우 버텨내도 거기까지다. 이후엔 몸 쓰는 일보다 몸을 가꾸는 일에 매진하라는 사회적 싸인을 받는다.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투자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보여지는 몸만 남는다. 어디까지 달려갈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매달릴 수 있는지, 얼마나 멀리 뛸 수 있는지, 다 잊게 된다. 대상화된 몸으로 밖에서 살아갈 깜냥을 내기는 쉽지 않다. 집채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걷고, 들판에 텐트 치고, 불 피우고, 끼니를 준비하는 등 일체의 활동은 몸 없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텐트 야영뿐 아니라 ‘차박’도 운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요즘 유튜브에 혼자 ‘차박’하는 여성들의 경험을 종종 보게 되는데 신선하다. 이들처럼 ‘WBC’는 “오늘 밤 어디서 잘지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며 차 세울 장소를 탐색한다. 맞춤한 곳을 만나 그곳에 잠자리를 마련하는 기쁨, 이를테면 낙조가 드리워진 윤슬의 반짝임을 보며 장대하게 펼쳐진 바다와 함께 밤을 보내는 환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차박’하면 영화 <노매드랜드>의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펀은 모험심으로 ‘차박’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떠나고 멈추고 차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그녀의 캠핑카는 럭셔리하게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고급이 아니라 중고 밴을 개조해 만든 낡은 것이다. 그녀가 캠핑카의 좁은 공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과정은 언제나 낭만적이지는 않다. 간헐적으로 헤쳐 모여를 하는 ‘WBC’의 여성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고되고 간간이 불편과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이를 상쇄할 환희의 순간들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왜 이 생활을 사랑하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안정된 스윗 홈만이 전부는 아니다.
‘WBC’는 다양하고 많은 여성들에게 야외활동을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내면에 숨겨진 야성을 일깨우고 모험을 함께”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자연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몸으로 연대하는 “모험하는 여자들을 위한 아웃도어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몸 쓰는 여자들을 만나 서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북돋으며, 모험이 결코 여성이 소외될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얼마 전 본 신문 기사에서 어린 아기를 둔 엄마들이 저마다 캐리어에 아기를 업고 등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경이로웠다. 오래전 등산을 하는데 한 아기 엄마가 캐리어에 돌잡이로 보이는 아기를 업고 산에 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혼자 감탄했다. ‘나는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자책하며, 그녀에게 파이팅을 보내 응원한 적이 있다.
그런 아기 엄마가 소수가 아니라 약 12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단체(베이비하이킹클럽)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점점 몸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에 혼자 감격했다. ‘WBC’의 김하늬도 출산 후 이들처럼 엄마들을 모아 아기를 업고 하이킹을 하며 출산과 양육이 아기 엄마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요즘 여성들의 몸 쓰기 예능이 눈길을 끈다. <골 때리는 여자들>의 축구에서 <무쇠 소녀단>의 복싱 도전까지 흥미롭다. 운동이든 하이킹이든 등산이든 여자라고 못할 일이 아니라는 걸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어 기쁘다. 한때 박력 있게 몸 쓰는 걸 좋아하던 딸애가 성장하며 야성을 다 잃어가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무쇠 소녀단>에 고무되어 복싱을 다시 시작해 볼까 고민하는 것을 보고 흐뭇했다. 몸 쓰는 여자들이 늘어나고 어디서나 목격되는 것은 중요하다. 여성들에게 몸이 누군가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영위할 나 자신의 것이라는 걸 믿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쉬운 배려를 거절하고 서툰 고통을 기꺼이 선택하는 이유는 내 자유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기 위해서다.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기어코 산을 오르고 내린다. 내 몫의 삶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용기를 배운다. 새롭고 광활한 가능성을 믿는다. 내 안의 강인함만큼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p251)
어떤가. 더 자유롭기 위해 독자인 여성분도 ‘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이 되어봄 직하지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