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소비 결산
게으른 직장인의 2023년 소비일기
2023. 01 ~ 2023. 12
직접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내가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인 것 같다. 가격에는 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쓰기도 했고, 어쨌든 소비를 하면 어떤 형태로든 무엇인가 남는다는 의미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잔고가 없다면 그건 분명히 내가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왜 이렇게 돈이 없나 생각하며 통장 내역을 살펴보니 전부 내가 쓴 것임을 확인 사살당했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어 올해 지출 내역을 확인해 보니 아무래도 소비를 합리화하는 데에도 많이 쓴 것 같다. 올해, 먹는 데에도 많이 쓰고 굵직한 물건들을 사는 데에도 썼지만, 여행도 다녀오고, 나름 소소하게 투자도 했다. 그중 올해 의미 있었던 소비를 3가지로 추려봤다.
이거 없었으면 여행 어떻게 다녔을까?
구매처: 슈프림 도산공원 매장 / 가격: 118,000원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바로 가방이었다. 숄더백으로 들고 다니고 싶은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더현대를 달려가서 지하 2층부터 5층까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1) 적당히 가볍고, 2) 수납할 곳이 많으며, 3) 숄더백이면서, 4) 너무 비싸지 않은 것이어야 했다. 여행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가던 찰나에 인스타 팔로우하고 있던 연실장 님의 인스타 스토리에 나타난 슈프림 숄더백을 보고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길로 바로 슈프림 도산공원 매장에 가서 구입했던 가방. 연실장 님은 흰색이었지만, 나는 여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오염 상황까지 고려해 검은색을 구매했다. 가격은 11만 8천 원. 몇 백만 원하는 보테가 베네타 가방까지 봤던 터라 가격마저 성스럽게 느껴졌다. 덕분에 유럽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나의 구원템으로 등극했다. 몇 년 전 내돈내산으로 명품 가방을 샀던 것만큼의 만족감을 얻었기에 의심의 여지없이 올해 최고의 소비다.
왜 남는 게 없어, 추억이 영원히 남는데
기간: 15박 16일 / 총비용: 약 650만 원
황금연휴라고 불렸던 2023년 추석 연휴. 임시 공휴일까지 지정되어서 연차 7일을 보태 15박 16일간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떠났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데는 역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던 여행이었다. 사진과 동영상으로는 담기지 않는 날씨, 분위기 같은 것들이 순간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관광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기억이 남는 건, 친구들과 매일 마트 들러서 재료 사다가 해 먹었던 술상이다. 마트 물가가 정말 너무 싸서 놀라고, 와인과 식재료가 너무 맛있어서 놀랐는데 그 매력에 취해 마지막 날까지 마트를 털어서 야무지게 술상을 차려 먹었다. 그중에서도 최고가 무엇이었냐 물어본다면, 말라가 해변에서 바다수영 열심히 하고 먹은 라면과 항정살이랄까. 볼거리, 즐길거리로 여행을 계획하지만 결국 가장 사소한 것이 기억 남는 게 여행인 것 같다. 즐거웠던 기억은 영원히 마음속에 남을 테니까. 그 기억으로 또 앞날을 이겨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에 여행 비용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말했지, 존버는 결국 승리한다고
투자기간: 약 2년 / 총 투자금액: 약 660만 원
초등학생도 그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게 바로 끝물이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던 몇 년 전에는 업비트도 다운로드하지 않아놓고 있다가 코인으로 돈 다 벌었다는 신화들이 쏟아지던 소위 '끝물' 무렵, 갑자기 비트코인에 투자할 결심을 하게 된다. 비트코인이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비트코인은 허상을 벗어나 실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큰돈을 투자할 심적, 물리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름의 원칙을 세운다. 그 원칙이 무엇이냐, 바로 '하루에 1만 원 매수'다. 이 원칙을 세운 이유는 변동성이 큰 코인 장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돈으로 매수하게 되면 변동성에 일희일비하며 원하는 때를 기다리기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현금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7만 원씩 매수했다. -40%를 찍기도 했지만, 금액이 크지 않으니 그냥 잊어버리자 했고, 원금회복했을 때도 그냥 다행이네 싶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60%를 찍었는데도, 큰 금액은 아니어서 흥분되지는 않는다. 다만 '존버는 성공한다.'는 명제를 내가 실제로 경험해 봤다는 것, 그것에 의미가 있다. 내 투자 인생에 성공 경험이 하나 더 쌓인 것이다. 이걸 바탕으로 내년에는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