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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24. 2022

코로나보다 중한 것

비폭력대화- 앎을 삶으로 살아내기 51화


1.


나는

월요일 코로나 이슈가 있었던 유치원에

화요일 아이를 보낸 엄마.


나는

월요일 코로나 이슈가 있었던 유치원에

수요일에도 아이를 보낸 엄마.


나는

월요일 코로나 이슈가 있었던 유치원에

목. 금요일도 보낼 엄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다양한 엄마들이 공존한다.


- 세 아이 학원을 모두 끊고 집에만 있는 엄마. 균이 있다며 놀이터도 안내 보내는 엄마.

-위기는 기회라며 학기 중에 학교 안 보내고 과외를 풀로 짜는 엄마

- 태권도랑 피아노는 그만 오시라 하면서 영. 수학원은 보내는 엄마

- 오랜 동네 친구는 집에 초대해서 자고 가는 걸 허락하고, 새로 사귄 친구는 코로나 때문에 다음에 만나라고 하는 엄마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하는 엄마

-워킹맘으로 대안이 없어 밤 7시까지는 어디든 보내는 엄마

- 대안이 있어도 일단 학교나 원은 보내는 엄마


나는 '2022년 2월 24일 현재'는

대안이 있어도 보내는 엄마.





2.

지난 월요일

아이가 등원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부랴부랴 어머님께서 아이를 데려와주시고

내가 조퇴를 달고 오후에 아이와 병원에 갔다.  


준이는 양성이 나온 아이와

유치원부터 오후 축구교실까지

하루 종일 함께했다.


하지만 주말 내내 증상이 전혀 없었기에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만약에 걸렸다 해도.


뭐 어쩌랴.

운명이다.

싶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틀어준 헬로카봇에 심취해있다가

어버버 끌려들어 간 후

코를 한번 쑤심 당하고

'다음엔 절대 안 한다'며 크게 한번 울고

결국 받아낸

귀한 음성 확인서.




이 종이를 들고

바로 다음날부터 똑같은 일상을 산다.



3.

'겁도 없다'며

아이를 꼭 보내야 하냐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걱정을 들으며


나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저는
이제

코로나로부터의 안전보다
중한 것이 많습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코로나에 걸리고 싶다는 게 아니고

코로나 방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코로나보다 중요한 것이

이 순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이를 잠시 맡기고
홀로
둘레길 산책



 

오늘 다시금 확신했다.



홀로 산책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발걸음 닫는 대로 걸었더니

1시간을 넘겼다.


며칠간 새 학기 증후군 같은.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는데

걸고 나니 후련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온몸이 땅이 주는 생기를 흠뻑 빨아들인다.


벌써 초록이 감도는 나뭇가지의 경이로움을 흡수한다.


겨울과 봄 사이 햇볕을 쬐며


몸과 마음과 영혼이 회복되는 시간.


나..


가족들과도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의지와 희망까지 샘솟는다.








아이를 잠시 맡기고
 소중한 이와의 대면만남





어제는 OO집에 초대되었다.




'이 시국에...'


거의 반년을 기다려온 날인데

전날 밤 꽤나 불안했다.


그러나 만나고 나니

우리가 나눈 것은 불안.

그 이상.



웃음.

눈물.

추억.

정성스러운 샐러드.

선물.


마지막 망언까지.


"만약에 걸린다 해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이런 충전되는 시간을 통해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살림과

고도의 인내심과 통찰과 공감을 요하는 육아를 해나갈 힘을 얻는다.






엄마!
OO 이는 계속 안 나오고~
OO 이는 나보다 늦게 집에 가
오늘 간식은 수제비가 나왔어.
나 이제 수제비 잘 먹어.
오늘 천문학자 해봤어.



아이의 6세 인생에

기똥차게 잘하게 된 것 하나.



양치도 아니

옷 입기도 아니고



마스크를 쓰는 것.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길에 아이는 마스크를 벗지도 않고 조잘조잘 끊임없이 말한다.


오늘은 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슨 간식이 나왔는지.


누구는 나오고 누구는 안 나왔는지.



그래.

나는 믿는다.


비록 우리가 바이러스로 인해 늘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유치원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보고 배우고 느끼고 걷고 뛰고 만지고 먹고 뒹구는..

그런 일상을 살 때.



그런 일상이 주는 힘이 분명 있을 거라고.


유치원에는 코로나 말고도

온갖 바이러스가 가득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가득할 것이라고. 



그리고 준아.

세상에 다양한 엄마가 존재하지만

나는 이런 엄마란다.

 

너와 나의 안전의 욕구를 잠시 보류하고서라도

이제는

다른 중요한 욕구들을 채워주고 살고 싶은

그런 엄마.



 


4. 이러스와 존중이 만연한 시대 


코로나가 중국에서 생겼고

더러워서 그런 거라며

'미개인 중궈'라고 폄하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후 우리는 한국에 코로나가 만연하며

할 말을 잃었다.


코로나 확진자 1번,

코로나 확진자 2번,

번호를 붙여가며 그들의 동선을 추적하고

그들이 얼마나 부주의하고 개념 없는지에 대해 모든 미디어가 입 모아 말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런 날들이 부끄러운 시절이 되었다.


어제는

집 말고는 아무 곳도 나가지 않았던

신생아를 키우는 내 친구가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


치과의사라

매일 타인의 침을 수천 개나 받아냈던 남편과,

엄마젖을 먹고 엄마와 샴쌍둥이가 되어 살았던 신생아는 음성.


이 미스터리는 어찌할꼬.


미스터리 속에서

코로나에 대응하는

천차만별의 엄마가 존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차만별의 시각이 아닐까.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찰하며


저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
저게 중요한가 보다.


그저 바라봐주는 것.




나에게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마저 불안한 시절이 있었고,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마스크를 사러 가는 그 시간만 스스로에게 외출을 허용하던 시절도 있었고,

아이를 아무 곳도 보내지 않았던 날들도 있었고,

그러다가

집에서 '놀아줘'와 '뭐 보여줘'의 양대산맥에 치여 토할 정도로 지친 날들도 있었고.

일상에서 스스로를 억압하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더 위험한 여행을 가버린 날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 몸 하나 안에도

'무수한 천차만별의 엄마'가 존재하는 것.



저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
저게 중요한가 보다.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5.

나와는 달리

아이를 아무 곳에도 보내지 않는 OO엄마.


나와는 달리

아무도 안 만나고

외식은 절대 안 한다는 OO엄마.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지만 같은 마음일 거예요.


우리 모두가 안전하기를 원하고,

유대, 혼자만의 시간, 공감, 신체적 접촉, 배움도 우리에게 중요하고요.  



그저.

우리는 다른 속도와 방법으로

이 시대를 소화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속도와 방법과 시각을 존중하고 싶어요.

나의 속도와 방법과 시각도 존중해 주세요.


우리.


바이러스가 만연한 시대에 살지만,

존중을 연습할 기회도 만연하네요.


 

바이러스와 존중이 만연한 시대


우리

그런 멋진 시대를 만들어가요.

 

이 시대가

최악의 시대만은 아닐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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