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하나 Feb 17. 2022

내가 나를 말로 때릴 때

비폭력대화(nvc) - 앎을 삶으로 살아내기 50화


1. 상황

이틀간 탈탈 털렸다.

몸과 마음이 이틀 만에 완전히 소진되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인가.


현실은 맵디 맵다.


직장 사람 여럿이 등장하기에

사유를 자세히는 쓰지 않겠다.



2. 관찰  


아침 7시.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먹을 듯

어제의 장면이 달려든다.





3. 느낌 


마음의 느낌을 묻는 것은 익숙하나

몸의 느자주 패스해버리곤 한다.


요즘엔 몸의 느낌도 일부러 써보려고 노력한다.

내 몸과 대화를 하며

의사 앞에서 내 증상을 말하듯이.


"관자놀이가 무겁고요~

가슴 쪽이 이렇게 답답하고(가슴을 쓸어내리며)~

독소를  꿀꺽꿀꺽 마신 듯 속이 쓰리고요.

사지가 추.... 욱  쳐져요.

어깨 근육이 땡땡하게 뭉쳐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얼굴에 모~든 근육이 쳐져 있는 듯해요.

거울을 볼 것도 없이 '죽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회복되고 싶다.


일부러 심호흡을 여러 번 해본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준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그 모든 순간에도

자꾸만 어제 일이 머릿속에서 복기된다.


후회가 된다.

자책이 된다.


자기 비난으로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기준이 높아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자주 자책으로 빠진다.



그만.



stop.

 


"비폭력대화 nvc는 알아차림이 전부예요~

지금 알아차리셨잖아요.

잘하고 계신 거예요."



지난주에

내가 어떤 분을 위로하며 했던 말이다.


지금이 바로.

내가 했던 바로 그 말을

나에게 해주어야 할 타이밍이다.




그러나

준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어제 일 속에 잠겨 있다.


말로 나를 때리고 있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지.'

'나는 뭘 잘못한 거지.'

'어디서부터 이렇게 잘못된 걸까'

'어쩜 나는 이렇게 어설플까'

'그 사람들의 평가가 다 맞는 걸지도 몰라'

'가만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는데. 괜히 나섰어'




3. 부탁


안 되겠다.

오늘은 열일 제치고 나를 적극적으로 돌봐야겠다.  



춥지만 걸었다.

정처 없이 햇빛이 드는 길을 따라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규칙적인 진동에 숨이 쉬어진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이를 키울 때 알았다.


징그럽게 안 자고 못 자는 아이였던 준이도

밖으로 안고 나가서 걸으면

엄마 품에 안겨 이내 스르르 잠들곤 했다.


걷기는

몸에 놔주는 안정제.



오늘은 내 몸을

내가 안고 걸어준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걸으며 나에게 묻는다.

'뭘 해줄까. 오늘 너 뭐하고 싶니.?

다~~~ 해줄게!'


배가 몹시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책은 체력소모가 심하다.

 

걷다 보니 동네 꽤 유명한 빵집이 보인다.  


예쁜 크루아상, 발아현미 식빵. 을 고심해서 고르고.

순간! 고마운 사람이 생각나서 몇 개 더 산다.


빵집 아저씨가 사지도 않은 빵을 넣어주며 말을 건다.


'어제 빵인데요~

구우면 어제 산거랑 똑같아요~'


앗싸~~


"감사합니다!!!"


빵 향기와 뜻밖의 횡재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조금 또 걷다 보니

꽃을 받고 싶다.


나 이틀간 너무 고생했잖아.

딱 한 송이만 사주자.

하고 단골 꽃집에 간다.

  

"한 송이 살 건데 뭐가 좋을까요?" 하며 이 꽃 저 꽃을 살펴본다.


각양각색의 꽃에

눈과 마음이 위로를 받는다.


"지난달에는 카라를 사 가셨죠? 그런데 그 전달에 사가신 꽃은 기억이 안 나네요"라고 사장님이 묻는다.


'뭐야~ 남자였으면 반했어~'


놀라운 기억력에 흠칫 놀라다가

곧이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소중히 여겨지는 이 느낌이 참 좋다.

집 근처에 이런 꽃집을 알고 있다니

세상 부러울 게 없어진다.



3월 1일에 또 오겠다고 말하고

꽃 두 송이를 들고 꽃집을 나섰다.

꽃이 너무 예뻐서 한송이 더 샀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집에 오는 길에는 옆 동 사는 언니네 들려서

빵과 꽃 한 송이를 문고리에 걸고 온다.


오늘은 준이의 유치원 수료식 날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복직하는 첫 해인 데다가 처음 유치원을 보내며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이 동네 언니가 유치원 한 곳을 강추해주어서 고민 없이 보냈고 여러 가지로 만족했다.

올해는 아이에게 다른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원을 옮긴다. 그전에 언니에게 감사를 꼭 표현하고 싶었다.


감사의 말을 적는데

'비폭력 대화 감사'를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어떤 점이

'나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는지'를 언급하는 것.

이것이 건강하고 소통되는 감사.


나는 언니 덕에 '안심'하고 보낼 수 있었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고 말했다.




감사를 표현하고 나니

마음이 더더더 편안해졌다.



나는 빵집 아저씨와 꽃집 이모와 언니와 존중을 주고받았다.





존중에 대한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려면
누군가가
꼭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그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존중을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가 존중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함으로써
거기에 이를 수도 있다."

                                <분노. 죄책감. 수치심 p75>



맞다.


나는 이틀간 존중받고 싶었고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몸과 마음이 부대꼈다.


그런데

남이 안 준다면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주는 방식으로

이 '존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니.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나는 자유롭고도 편안할까.




4. 또 다른 부탁과 결단


맹추위에 유치원과 빵집과 꽃집과 언니 집을 들려 집에 오니 졸음이 쏟아진다.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아이를 데리러 갈 때까지 자련다.


자고 일어나면

나는 더욱더 괜찮아질 것이다.


안심이 된다.

믿어진다.


나를 회복시킬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나 마음에 단단한 결심이 섰다.  


'중재 방법을 제대로 더 배우겠어.'

'비폭력대화를 더 으로 살 아내 보겠어'

'어설퍼도 계속 흔들리며 배우며 가보겠어'

 '완벽할 수 없어도 방향은 맞다고 확신하니까'



스스로를 비난하는 나와

살아보고 싶은 나를

중재하는 것.


그리고


우선, 나에게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보련다.


아주 작지만 놀라운 시작이 되겠지.




공간을 바꾸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야지! 아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