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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11. 2022

"와야지! 아들이!"

비폭력대화- 앎을 삶으로 살아내기 49화



1. "아니~ 와야지~~~~! 아들이~~~~!"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역정에

내 몸이 놀라 움찔한다.

동공이 화~악 커진다.


여기서 아들은 누구인가?


어머님의 아들이 아니다.


여기서 아들은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아들이다.


갑자기 물으셔서

아무 생각 없이 솔직히 대답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엄마 기일에 어떻게 하기로 했니?"

 

"아~ 아직 결정은 못했는데, 코로나가 너무 위험하다고요~ 아빠가 동생한테 오지 말라고 했나 봐요~"


"무슨 소리야~~~

아들이 와야지~!"


"그러게. 저도 잘 모르겠는데.~ @#**$@#.."


"아니~엄마 기일인데~!"




갑자기

짜증이 확.... 난다.

명치 쪽에 굴 같은 게 확.. 올라오는 것도 같고.  



내가 지금 왜! 변명을 하고 설명을 해야 하지?

우리 집 안 일인데?

아빠-나-동생 셋이 결정할 일인데?

무슨 상관이시지?


그리고 지금....

우리 가족 비난하시는 겁니까?


나!!!

미쿸물 먹은 21세기 현대 여성으로 한마디 하면

None of Your Business!



쫄보인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한다.




2.

재작년 엄마의 기일쯤이었다.


아빠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산에 사는 동생이 엄마 기일에 맞춰 기차로 온다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무서웠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그보다 더 무섭게 퍼지고 있을 때였다.  


아빠는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고

지금은 그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하셨다.

 

일단 본인과 누나다녀올 테니,

동생이 자동차로 올 수 있을 때 조만간 산소에 또 가는 게 낫겠다고 의견을 밝히셨다.


동생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유족들과는 달리,

이미 동생의 행보에 대해

분명한 결정을 내리신 분이 있었으니


바로 사돈 어르신인 우리 어머님이었다.


아들은 엄마 기일에 와야한다

는 것이었다.






3.

어머님과의 대화에서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충족되지 않아 화가 났을까?


아마도

- 자율성? 

'우리 가족 일은 우리 가족이 결정하고 싶어요.'  

 

- 신뢰?

'그냥 멀리고 보고 잘 결정하겠지.. 하고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배려?존중?선택?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있을지 모르기에

내 의견도 물어봐주시는 것'






4. "~해야 마땅하다"(should)

 

아들은 엄마 기일에 와야 한다



이 명제는 엄청난 비난으로 들렸다.


'아니 무슨 이런 집안이 다 있어~?

뭐 이렇게 당연한 거를 고민해~?

지들 마음대로 구만~?

벌써 너네가 너네 엄마를 잊어버린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비난이라는 에너지는

성대를 통과하지 않고도

어떻게 이렇게 잘 들리는 걸까.


온 몸으로 들린다.


미스터리다.


비폭력대화에 따르면 모든 비난은

'자신의 욕구를 비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데

그 당시에는 이렇게 해석해내지 못했다.



그저. 

'당위(should)'가 '비난'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들은 엄마 기일에 와야 한다"

는, 곧,

"엄마 기일에 오지 않는 아들은 비난받아 마땅해"였다.

 

이 당위가 낳은 비난이

내 몸과 마음에 똬리를 틀고

사지를 꽉~ 묶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다른 길은 없다.


오직 한 길만 있다.


'아들이 기일에 오는 것뿐'






5. 그래서 어떻게 했더라?


웃긴 건....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동생이 결국 고민하다가 기차를 타고 왔던가~아니면, 자차를 가지고 왔던가~ 아니면 안 왔던가~ 다른 날 왔던가~기억이 안 난다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느 정도로 안중요 하냐면, 기억이 안 나는데, 찾아볼 의지조차 없다. 다시 그날의 기록을 뒤져보며 시간을 투자하는 것조차 아깝다. 그 정도로 기일에 동생이 왔고 안 왔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동생의 마음속에 엄마가 항상 살아있다는 걸 당연히 알기 때문에. 믿기 때문에.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러니까.

 




6.

비폭력대화에 대한 책을 보다가

그때.

어머니의 눈빛을 떠올린다.


나는 어머님의 언어를 '역정'이라고 기억했는데,

다시 곰곰이 떠올려보니

어머님의 눈빛이 역정보다는 '두려움'에 가깝다.




당황스럽다.




'역정'과 '두려움'은 너무 다르잖아?





사람이...

너무 무서우면 화를 내는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님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잊혀질까 봐. 



그러고 보니 시어머님은 엄마가 투병하고 돌아가시고 그 이후에도

유난히 엄마와 본인을 동일시하셨다.


엄마가 투병했던 6개월간 본인도 아프셨단다.

잠도 못 자고 웃지도 못하고...

그 후 1년을 위장장애를 달고 사셨다.

본인 말로는 '그 일'을 경계로 '맛이 갔다'한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놨는데 허망하게 떠났다고

죽은 너네 엄마만 불쌍하다고 수시로 눈물 바람을 하셨다.


아가씨는 그런 어머님의 눈물을 그치게 하려고

'몰랐는데 사돈 사랑이 어마어마했나 보다'라고 놀렸고


어머님보다

눈물이 덜 나고 잠도 잘 자고

위장장애마저 회복된 나는 괜히 부끄러워서

그 순간 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곤 했다.



어머님은...


기억되고 싶으셨나 보다.


당신이 가족들을 그리 사랑하시니

당신도 가족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싶으셨나 보다.


사는 동안 가족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셨으니

죽은 후에라도 가족들에게 꼭 기억되고 싶으셨던 걸까.


그래서,

기일날 아들이 올라오지 않을까 봐.

두려우셨을까.

무서우셨을까.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돌봄 받고 싶고

기억되고 싶은  어머님.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봐

돌봄 받지 못할 까 봐

기억되지 못할 까 봐

두려워서

순간 화를 내버린 어머님.


어머님에 대한 연민이

뾰록.

올라온다.


저런 두려움이라면, 익숙하다.


인간은 모두 사랑받고 기억되고 애도되고 싶지 않나.



그러고 나

몸이 후... 하고 풀어진다.

얼굴 근육도 풀어져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명치에 있던 밤고구마도

이제야 내려간다.





7.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어머님.

어머님의 그 마음.

제가 잘 알겠어요.


어머님조차 모르는 어머님의 마음을

제가 어렴풋이 알겠어요.


그런데.


어머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은

듣기에는 불편하고

먹기에는 쓰고

보기에도 괴롭지만


일단 소화가 되면

어머님을 진짜 자유롭게 해 줄 거예요.


잘 들어보시기를 바래요.


어머님의 감정의 주인은
어머님이에요.

어머님의 욕구(Need)도
어머님 것이에요.


어머님이 느끼시는 그 두려움화.

어머님이 갈망하는 돌봄.사랑.애도의 주인은

어머님이시라고요.


그래서 그 감정과 욕구의 책임 소재도

어머님께 있어요.


주인이 책임을 지는 거잖아요.

물건 주인이 아닌 사람한테

그 물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잖아요.


감정과 욕구도 똑같아요.


제 동생이 와야만 어머님이 행복하고

제 동생이 안 와서 어머님이 화났다면

뭐가 많이 이상하지 않아요?


동생은 어머님의 주인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책임도 질 수 없어요.


어머님도 부디.

이 점을 언젠가는 이해하고 믿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저도

어머님의 '역정'을 내든 어쩌든

그 즉시 '어머님의 두려움의 비명'으로 해석하고

어머님의 말을 연민으로 소화해낼 그런...

내공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저는 어머님과

연결되고 싶거든요.




어머님.  


이 편지는 드리지 않기로 작정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써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어지네요.


그리고 어머님이 우리 엄마 일을 마음 아파해 주셔서

제 마음이 따뜻해진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머님은 모르실 거예요.


어머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져요.  


이 느낌과 욕구의 주인도

''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어머님이 저희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대하든.

그래서 제가 그 태도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든.

그것은 저의 것임을 선언합니다.


어느 누구도 내 감정과 욕구를 좌지우지하지 못해요.

이 명제를 진짜 살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어머님.


그런데 어머님 기일에는 산소에 꼭 가볼게요.


어머님이 저에게 명료하게 부탁해주시면

반드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게요.


그리고 평소에 누구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어려운 어머님.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부탁을 '못'하고 이 땅을 떠나신다고 해도.


어머님 기일에는 산소에 갈게요.  


약속해요.


그게 어머님의 '사랑의 언어'라

제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꺼이 그렇게 할게요.


왜냐면 어머님과 연결되고 싶으니까요.



  - 2022.02.10 며느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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