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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Mar 20. 2022

엄마 말 들으니까 어때?

앎을 삶으로 살아내기 - 54화

1. 토요일 아침 풍경


두 남자 사이에서

잠이 깬다.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아직 자유다.


두 남자 사이에 누워서

공상을 하거나

체조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지난밤 불금을 누리느라 지나쳐버린 설교말씀을 듣는다.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항상 먼저 일어는데,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도토리가 발 앞에 굴러오듯

내 가슴으로 또르륵 굴러온다.


두 팔로 내 허리를 촤라락 감고

으스러질 듯 껴안는다.  


누군가의 사랑을

이렇게 저돌적으로 받는 역할이 또 있을까.

(물론 유통기한 임박이지만)




2.

출근하지 않은  여유로운 몸뚱이를 한껏 누리는 그에게

오늘은 꼬옥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지난주에 엄마가 걱정했었거든.


준이가 새로운 유치원에 갔었잖아.


거기서 친구들도 새로 만나고

선생님도 새로 만나고

스쿨버스도 타고

그랬잖아.


그런데 준이가 좀 낯설지는 않을까.

좀 무섭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거든.


그런데 일주일 동안 너~~~ 무 즐겁게 다녀와서

지금 엄마가 엄~~~~~청 안심돼.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준이가 자랑스러워.

준이가 이~~~~ (손을 휘저으며) 커서 새로운 유치원도 즐겁게 다니고~ 진짜 자랑스러워.


(자랑스럽다는 말은,

내 마음이 아니라

팩트가 아니라

'너에 대한 나의 평가'라는  알지만,


그래도 표현하고 싶어서 뱉기로 선택한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음. 침대에 늘 두고자는 장난감을 주워 담고 있음)

 



몇 초의 공백이 있은 후,



엄마 말 들으니까
준이는 어때?



(입술을 떨어서 브루루루루~ 소리가 나게 장난을 )




엄마 말 들으니까
준이 지금 어때?



녹음기처럼 다시 물어본다.



(햡!!!! 

헙!!!!

이번에는 허공을 보며 발차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쿨하게 내뱉는 한마디.




엄마. 나가자






3.

나는 대답 듣기를 깨끗이 포기하고

토요일 아침에는 늦잠을 즐기는 다른 한 남자를 남겨두고

개부럽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혼자 더욱 결연해지는 것이다.




그래.

네가

듣든 말든
 
대답을 하든 말든

나는 정주행이다.



나는

네가 듣든 말든

대답을 하든 말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는

네가 듣든 말든

대답을 하든 말든


더 자주

네 마음을 궁금해하며


그 진심을 정갈하고 따뜻한 그릇에 담아

너에게 물을 거다.


쭈~~~~ 욱.



몇년이 지나

사춘기에 진입한 네가

나에게 한껏 멀어지고 싶을 때.


나에게 멀어지는 것이

곧,

너의 존재를 찾아가는 것일 때.



그때

서로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싶을 때라

우리 사이에 언어아주 끊어지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대답 없는 너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으며

연결의 씨앗을 심는다.



허공에 흩어지는 말 같지만


결국에는 민들레 홀씨가 되어

네 심장에 안착할 나의 진심.



이런 질문을 서로에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분주하게 살지 않기를.


너의 마음이 전혀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나'라는 자아에 매몰되지 않기를.


그리고 너도 언젠가 가끔은

 "제 얘기를 들으니 엄마 마음이 어때요?"라고 나에게 물어주기를.



바래보다가....


아냐아냐.


그건 너의 선택이지.


다시 깨달으며,


네가 물어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나에게 물을 수 있기를.


나 자신과 적어도 나 한명은

매 순간 연결되어 살기를.






공격할 집을 만드는 한 남자


여기까지가.


보이지 않는 악당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한 남자 향해

오늘 허공에 뱉은 비폭력대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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