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 반에서 탄생했던 한 커플이 얼마 전 이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와서 ‘선생님, 저 땡땡이랑 헤어졌어요. 제가 차였어요.’하는데, 웬만한 연애 이야기에 놀라지 않는 내가 그 소식에는 조금 놀랐다. 참 예뻐하던 아이들 둘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둘은 서로가 주는 시너지가 좋아보여 마음으로 늘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왜, 어떻게 헤어지게 된건지 궁금했지만 속 사정은 자세히 묻지 않았다. 헤어지고 2~3주 정도는 충분히 다시 사귈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다시 사귀고 있을 수도 있고, 오늘 새벽 1시쯤 누군가 먼저 카톡을 보내볼 수도 있는 거다. ’자?‘ 혹은 ’잘 지내?‘같은 말을.
나도 늙은건지, 꼰대가 되어 버린건지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보면 ‘저럴 시간에 공부나 하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데 ‘라떼’와는 다르게 ‘요즘 애들’은 정말 연애를 많이도 한다. 복도에서도, 학교 앞 편의점에서도 동네 공원에서도 쌍쌍이 잘도 붙어 다닌다. ‘라떼’는 연애하는 애들은 공부랑은 거리가 먼 애들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라고 연애를 안하는 거 아니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라고 다 연애를 하는 건 아니다. 약 3년 정도 지켜본 결과, 그들의 연애 또한 연애는 연애였다. 크게 보면 어른들의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남녀 관계는 남녀 관계이고, 그 이전에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이며,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을 배우고, 새로운 감정에 대해 또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운다. 정말이지 연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반에는 사귄 지 1년이 넘었지만 학교 안에서는 절대 붙어 다니지 않는 장수 커플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아직도 그 둘이 커플인지 모르기도 할 정도다. 그 둘은 딱 등교와 하교만 같이 하고, 만나더라도 주말에만 만난다. 싸우거나 갈등이 생겨도 학교에서 절대 티를 내지 않고 서로의 학원, 과외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아이를 보며 참 대단하고 성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우느라 연습도 못 하고 전공 시험도 망쳤었는데, 고등학생이 저렇게 성숙하다니. 조금 더 일찍 감정을 제어하고 절제하는 방법을 연습했다면 좀 달랐을까? 나는 그 아이를 보고 고등학생 때의 연애가 꼭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20대 초반의 나는 자주 충동적으로 헤어짐을 말하곤 했다. 말하고 나서 하루 혹은 반나절 만에 마음이 바뀌어 다시 전화를 걸어 ‘나랑 다시 만날래?’하고 붙잡은 적도 꽤 된다. 내가 왜 헤어지고 싶은지,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왜 싫은건지 스스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서운한 마음과 싫은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언제나 같은 답인 ‘헤어짐’으로 표출하곤 했다. 어떤 날의 ‘헤어지자’는 말은 ‘나 서운해’였고, 어떤 날의 ‘헤어지자’는 ‘진짜 헤어지자’였으니, 이 말을 듣는 상대는 지칠 만도 했다. 아이들에게서도 종종 이런 모습을 본다. 앞에 말한 것 처럼 성숙한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미성년자인 만큼 오히려 그 반대가 훨씬 많다. 한 번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있는데 울면서 교무실에 찾아온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 땡땡이가 변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 헤어질 것 같아요.’ 하며 야간 자율학습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그 이유는 절대 자습에 빠질 사유가 될 수 없었지만, 감정에 휘말려 아무것도 못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아니, 지금 내 사랑이 떠나가게 생겼는데 어떻게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 헤어진 작년 우리 반 범생이 커플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아무도 모른다. 헤어짐을 통보 받은 아이는 슬픔을 잠시만 접어두고 당분간 그 일과 관련된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된 것인지, 어떤 면이 싫어서 헤어지자고 말을 한 건지 그 말을 한 본인조차 모르고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성숙한 아이들이라 이별의 슬픔을 깔끔히 매듭 짓고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과야 어쨌든 간에, 연애도 배움의 연속이고, 경험은 자산으로 남으니까 손해 본 것은 없다. 둘은 서로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웠을테고 훗날 하게 될 실수의 가짓수를 하나 정도는 줄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