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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지 변호사 Jan 19. 2023

복수는 나의 것

사진출처 - NETFLIX



더글로리의 여운이 길다. 문동은의 복수가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빨리 3월이 오기를 기다린다. 마치 내가 문동은이 된 것처럼 그녀가 복수에 성공하는 것을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 이렇게까지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라기는 처음이다.


사실 나는 딱히 복수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야 할 만큼 힘든 일을 겪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그럼에도 가끔 분노가 치미는 일을 당할 때면 내 마음속에서도 복수심이란 것이 싹이 튼다. 그러나 이내 ‘내 복수는 남이 해준대’라고 맘 편히 생각하면서, 나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그 자에게 꼭 벌을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그저 그 자를 잊어버리는 쪽을 선택해 버리는 정말이지 하찮은 복수로 끝을 맺는다.


이런 하찮은 복수자가 복수에 빠지다니…


그런데 문동은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다. 모두 모여 문동은 복수성공 기원제라도 올릴 기세다.



김은숙 작가는 더글로리가 ‘19금’인 이유에 대하여, 동은이가 사법체계 안에서의 복수가 아닌 사적복수를 선택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사적복수에 대하여 잘 판단할 수 있는 성인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문동은의 복수는 사법체계 안에서의 복수가 아닌 사적복수이다.


문동은이 조력자 현남에게  ‘찌개를 끓이는 그런 저녁은 오지 않아요... 우리가 공모한 건 그런 거예요’라고 이야기할 때에 그녀의 복수가 정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그럼에도 현직 변호사인 나는 그녀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현직변호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문동은의 사적복수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그녀의 조력자인 현남의 복수도..



왜일까.


문동은은 분명 사법체계 안에서 복수를 하려고 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학교에 알렸고,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경찰에도 알렸다. 그러나 그녀는 실패했다. 실패로 끝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도로 인해 더 큰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몸도 영혼도 모두 파괴되었다.


그녀의 조력자 현남, 어느 날 동은 앞에 불쑥 나타나 같은 편 먹고 싶다고 하며, 내 남편을 죽여달라는 현남은 어떠한가.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매 맞는 년’이다. 정말이지 처절하게 맞는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죽을 만큼과 딱 죽지 않을 만큼 사이로 때린다. 그러나 그녀 역시 갈 곳이 없다. 지금 당장은 나를 때리는 그 자를 감옥에 보낼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그를 평생 감옥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어리고 약한 내 자식이 그 자를 죽이겠다고 손을 덜덜 떨며 칼을 들었을 때 그녀는 사법체계 안에서의 복수에 대한 꿈을 접었으리라.


이 이야기가 단순히 드라마 속의 이야기라면 이렇게까지 공감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그녀들의 복수를 응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신문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도 이름만 바뀐 그녀들의 이야기를 몇 건이고 볼 수 있다. 그 끝이 그녀들의 죽음인 경우까지도. 그래서인가 보다. 드라마 속에서라도 그녀들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의 통쾌한 복수를 확인하면, 그래서 속이 시원해지면, 정말 괜찮을까? 아닐 것 같다. 오히려 현직변호사의 입장에서 더 허탈해질 것 같다. 나의 바람은 언젠가는 드라마 속의 ‘사적복수’를 응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사적복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가해자들이 반드시 사법체계 안에서 확실한 처벌을 받았으면 한다. 피해자가 배제된,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그런 처벌이 아닌, 정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 수 있는, 그래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법체계를 우습게 보지 않는 그런 확실한 처벌이 있었으면 한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니 잘못이 아니야’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피해자들이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그렇게 산산이 부서진 피해자의 몸과 영혼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 이상은 피해자들끼리 이런 연대는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해자가 아닌 모든 자들이 연대하여 가해자들의 이 따위 행동을 눈감지 않고 함께 대응해 주기를, 그래서 가해자들이 감히 이런 폭력을 행할 수 없게 해 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내 복수는 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같이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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