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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Lee Dec 23. 2023

어쩌다 집짓기 - 11

6. 집 짓기의 여섯 번째 단계 집 가꾸기

8. 주택에 사는데 눈이 옵니다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째 간간히 눈이 오면서 날이 아주 춥다. 낮 최고 기온이 영하권인 이런 날이 며칠 계속되면 내린 눈이 녹지 않아서 내부도로가 빙판길이 된다. 주택단지는 탁 트인 아름다운 조망권이 생명이고 그 전망을 위해 약간의 경사가 있는 지형이 많다. 단지 내부도로에 눈에 쌓였는데 치우지 않고 두면 차는 물론이고 사람도 걷기 위험한 길이 된다. 눈을 힘들게 쓸지 말고 염화칼슘을 부리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염화칼슘은 빠른 속도로 내려서 두껍게 쌓인 눈에는 무용지물이고 염화칼슘을 자주 뿌린 도로는 쉽게 상한다. 경계석과 도로의 중간 시멘트 연결 부분은 종잇장처럼 푸석거리면서 일어나 부서지고 아스팔트는 금이 가서 여기저기 파이기 시작한다. 쌓인 눈은 사람의 힘으로 밀고 쓸어 내는 것이 환경에도 좋고 도로도 오랫동안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눈이 내리는 날이 주말이면 대부분의 이웃분들은 나와서 내 집 앞 눈 쓸기를 한다. 그렇지만 평일 아침에 눈이 내리면 출근준비에 바쁜 직장인은 눈을 치우기가 어렵고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나와서 치워야 한다. 은밀한 눈치작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넉가래로 눈을 밀고 다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눈 내리는 날에 컨디션 난조로 내 집 앞 눈 쓸기를 못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번에는 총알처럼 튀어 일어나서 등산화 챙겨 신고 눈을 치웠다. 아직 해도 뜨기 전 바람이 차게 부는 새벽에 눈 치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는 비교적 평화롭게 서로 번갈아 가며 눈을 치우고 치워 주고 수고하신다며 서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사람 사는 냄새나는 다정한 동네다. 날이 밝아지면 동네 고마 녀석들이 눈 미끄럼을 타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리고 활기가 넘친다. 이곳으로 이사를 하고 네 번째 맞이하는 겨울이지만 눈을 쓸러 나오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이웃도 물론 있다. 아파트는 같은 라인 거주민이라면 엘리베이터에서라도 마주치게 되는데 주택은 벙커 주차장에서 내려 주차장에서 연결된 문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가 많기 때문에 이사하고 수년이 지나도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 앞 눈을 치우러 한 번도 안 나온 세대의 앞은 길이 험해지는데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이웃들이 번갈아가며 치워준다. 내가 사는 곳은 같은 크기로 땅을 잘라 만든 택지 지구이다 보니 입주한 사람들의 연령대나 취향이 비슷하게 점잖스러운 장점이 있다. 눈 치우는 문제로 얼굴을 붉히거나 하지 않는다. 같은 크기의 같은 금액대의 땅을 구입한 사람들, 주택에 살고자 해서 집을 지은 사람들...이라는 두 공통점을 가지고 시작하는 관계이다 보니 늘 평화롭고 조용하다. 

  단지의 평면도에서 보면 14번과 34번 필지는 집 앞 도로 공간이 거의 없다. 눈이 오면 눈 치우러 안 나와도 크게 상관이 없는 위치. 그렇지만 2번 41번 42번 50번 20번처럼 모퉁이가 있고 도로에 맞닿은 면이 넓은 필지는 넓은 곳의 눈을 쓸어 내야 한다. 눈치 작전이 시작되는 타이밍이 있다. 저 집은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 집은 주차장에 차가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눈 쓸러 왜 안 나오지? 42번 44번 45번은 집의 양쪽에 도로가 있다. 양쪽 도로를 다 치워야 하거나 또는 양쪽 도로 둘 다 앞집들에게 미뤄도 그만이다.  바람 불고 눈이 오는데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다 보면 염화칼슘에 녹아들던 눈이 그대로 다시 얼어 빙판이 되기 십상. 무조건 사람이 쓸어서 길가로 밀어 놓아야 하는데 날씨가 안 좋으면 눈치 싸움이 살짝 길어지기도 한다. 바람 불고 추운 날 미끄러운 길에서 비질을 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아슬아슬하고 조용한 눈치 싸움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주민 대표는 단체톡방에 조심스레 글을 올려 보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댁에 계신 분들께서는 눈이 쌓여 얼기 전에 내 집 앞 눈을 치워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택살이의 꽃은 눈 오는 날. 이웃들이 집 앞으로 나와 눈 치우며 교제의 시간을 나눈다. 아이들은 눈집게로 눈오리를 만든다. 

  내가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짓고 사는 곳은 50여 개 가구가 모여 사는 단독주택단지이다. 전망이 좋은 곳, 자전거 도로가 가까이 있는 곳, 계곡을 끼고 있는 곳, 진입도로가 잘 되어 있는 곳 등등 많은 땅들을 보러 다녔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은 사람이 모여 사는 취락지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취락지여야 차로 이동하기 쉽고 식품매장 병원 학교 등 인프라가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당연히 취락지의 택지는 자연녹지지구에 비해 가격이 높다. 대신 작은 평수로 땅을 잘라서 팔기 때문에 최소 500평 1000평 이상의 매물이 대부분인 자연녹지나 전답의 구입 비용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 집을 지을 땅이 작다 보면 주택살이의 로망인 마당이 좁아지게 된다. 이 부분에서 잠시 고민을 좀 해봐야 한다. 관리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넓은 마당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를... 눈이 내린 날이어도 한낮에는 해가 들어 도로의 눈이 저절로 녹아 주기만을 바랠 수도 없으니... 자기가 스스로 감당 가능한 만큼의 마당, 가꿀 자신이 있는 만큼의 잔디정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주택살이는 늘 꿈꾸었던 로망이나 아름다운 낭만만 가지고는 쉽지 않다. 

  주택살이를 해보지 않고 막연한 로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당 관리에 얼마 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잘 모른다. 정원에 식물을 키우는 것은 물과 햇빛 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내용 원예 식물 키우기와는 차이가 많은 것이 노지 식물들이다. 물과 햇빛 이외에 거름 비료도 줘야 하고 병해 충해가 생기면 약도 뿌려 줘야 한다. 그 많은 종류의 수목에 방제 방법과 약제가 얼마나 다양한지...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아름다운 전원주택의 드넓은 초록 잔디가 깔려 있는 정원은 실상은 집주인의 허리와 무릎과 맞바꾼, 땀과의 사투를 벌여 얻어 내는 눈물 없이는 얻어지지 않는 결과물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요즘의 주택은 현무암 판석이나 데크를 깔아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잔디는 설계 단계부터 배수 시설을 철저히 해서 물 빠짐을 좋게 만들어야 하고, 5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매번 깎아줘야 하며 잡초 씨앗이라도 바람에 날아오면 끝없이 올라오는 잡풀들과의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전이다. 우리 옆집은 이사 온 당시에 깔았던 마당의 잔디를 한 해 여름이 지나기도 전에 걷어 내고 현무암 판석으로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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