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으려면 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집이 완성되고 나서 아~ 이렇게 만들면 좋았을걸... 이런 후회를 안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집의 인테리어를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맡긴다. 디자이너는 분명 이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나의 취향과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 집을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짓기를 원하지만 내가 직접 건축에 참여할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면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온오프라인으로 오랜 시간 충분한 미팅이 필요하다. 나를 온전히 알리기 위해서 나의 취향을 알리는 충분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도 내 취향을 잘 모르겠다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내 집의 어느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주로 지내는가?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의 리얼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자신의 일상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처음 지켜본 대부분의 연예인은 놀라워하고 신기해한다. 내가 저런 모습일 줄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집을 짓겠다면 하루 정도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여 집의 어느 공간을 얼마만큼 사용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2019년의 나의 하루, 2023년 새 집에서의 나의 하루(공간이 많아지면서 외출이 줄었고 기상 시각이 빨라짐)
2019년 내가 관찰했던 집에서의 나의 하루
오전 7시 안방 침대에서 기상
오전 7시 20분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주방으로 감
오전 8시 주방에서 아이가 먹을 간단한 아침식사 준비
오전 8시 30분 아이 학교 보내고 거실 책상(서재가 따로 없어 거실에 소파대신 책상을 둠) 노트북 작업
오후 12시 30분 주방에서 간단한 점심식사
오후 1시 다용도실에서 세탁기 돌림
오후 1시 30분 세탁기 돌리면서 다시 노트북
오후 2시 베란다에 빨래 널기
오후 3시 집 앞 마트에 장 보러 나감
오후 4시 아이 학교 학부모와 카페 차 한잔
오후 6시 주방에서 저녁준비
저녁 7시 빨래 개기 청소 등 집안일
저녁 8시 저녁 설거지
밤 9시 거실 TV앞에서 가족과 시간
밤 11시 30분 욕실에서 샤워
밤 12시 안방 취침
2022년 7월 주택살이 나의 하루
오전 6시 안방 침대에서 기상
오전 7시 침대에서 sns 활동 후 2층 주방으로 내려감
오전 8시 주방에서 간단한 아침
오전 8시 30분 아이 회사 보내고 3층 세탁실 세탁
오전 9시 2층 테라스 책상 노트북 작업 세탁물 널어가며 노트북
오후 12시 30분 2층 주방에서 간단한 점심식사
오후 1시 2층 테라스 책상 노트북 작업
오후 4시 30분 동네산책
오후 6시 2층 주방에서 저녁준비
저녁 7시 1층 2층 테라스 3층 테라스 저녁식사 산책
밤 9시 3층 거실에서 TV 보거나 노트북
밤 10시 30분 3층 욕실에서 샤워
밤 11시 안방 취침
이와 같이 나의 하루를 그림으로 그려봤더니 안방 침대에서는 잠자는 시간 이외 머물지 않았다. 주방 거실에서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욕실 사용 시간은 오전 20분 취침 전 30분 정도 사용했다. 욕조가 있었지만 욕조에 몸을 담가 반신욕을 하는 경우는 1년에 한 번이 채 안 되었다. 베란다에서는 30분 정도 빨래를 널고 빨래를 걷는 일을 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인 16시간을 주방과 거실에 있는 책상에서 보내고 있었다. 내가 외출을 하지 않는 날은 주로 집안일과 sns 활동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 사진편집을 하고 있었다.
거실과 주방이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이어야 하고 가족들이 모이기 좋은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 주방은 접근하기 가장 쉬운 공간에 있어야 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나는 차 마실 야외 공간이 있으면 카페를 나가지 않아도 되니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마실 공간은 주방의 가까운 곳에 있어야겠고 해가 잘 들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침실과 나의 침실은 침대 하나 들어가는 크기면 충분하겠다. 드레스룸은 안방에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세탁실은 드레스룸과 같은 층에 있어야 하겠다. 나의 하루를 정리해 보니 뭐 대강 이 정도의 집짓기 가이드가 세워졌다. 새로 지을 집에서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새로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럴 땐 이게 필요하겠지. 이럴 땐 이게 있는 게 좋겠어. 하며 상상만으로 전체를 다 완성하기에는 충분히 무리가 있다.
내 경우엔 예상하기 힘든 공간은 그냥 비워두기로 했다. 공간이 새로 필요해지면 살면서 적절한 공간에 가벽을 세우거나 가구를 두어 나누어 쓰기로 했다. 방을 하나 더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줄일 수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을 없애는 것보다 공간이 필요해질 때 가벽을 세워 공간나누기를 해서 사용하는 것이 비용면이나 환경적인 면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솔직하자면 일단 어떻게든 건축비용을 줄이는 것이 그 당시의 나에겐 급선무였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무엇일까? 나는 옷을 살 때 어떤 디자인을 주로 구매하는가? 내가 주로 가는 카페의 인테리어는 어떤 스타일인가? 내 집의 가구는 어떤 브랜드의 어떤 디자인인가?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가구들을 살펴봤더니 불행하게도 취향이나 선호하는 브랜드가 따로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서 필요에 의해서 샀던 서랍장.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 필요해졌던 6인용 식탁. 붙박이장이 생기면서 없애버린 12자 장롱. 아이가 자라면서 구입한 슈퍼싱글 침대 책상 책꽂이... 여기엔 서로 어울리는 색이나 인테리어가 따로 없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샀던 그냥 그런 생활형 가구와 가전들. 이사하면서 가지고 갈 것과 버려야 할 것부터 정리가 시급했다. 모눈종이에 하나씩 그려서 올려 보고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콘센트 위치 조명 위치들을 가늠해 보았다. 어떤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완성해야 할지 공부가 필요했다.
이케아 같은 제품 홍보 잡지의 타일디자인, 에어컨, 창문디자인, 주방가구 등을 오려 붙이고 100 : 1 축척으로 그려 넣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