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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Feb 25. 2024

새파랗게 젊은 나이

노인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는 연령은 만 65세부터다. 따라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 수강생들은 국가에서 경로증을 받는 65세부터 무한대까지이다. 현재로는 90대 되시는 어르신도 꽤 계신다. 교육 프로그램이 연령대로 반이 짜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클래스에 60대 70대 80대 90대까지 다양하다.     


새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날 좌석 배치이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앞자리를 원하신다. 눈도 귀도 어둡다는 이유다. 일찍 와서 앞자리를 차지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다. 그러다 보니 교육생들의 불만이 있어서 추첨으로 자리를 배정하기도 한다.     

 

추첨으로 자리 배정을 했는데, 92세 할머니와 73세 할머니가 짝지가 되셨다. 우리 반에서 제일 고령이시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 나오신다.     


92세 할머니가 안쪽 자리에 배정을 받고 바깥쪽 자리에 젊은 할머니가 배정을 받으셨다. 92세 할머니가 화장실을 자주 가신다. 그럴 때마다 젊은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드려야 했다. 내가 젊은 할머니에게 자리를 바꾸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드렸다.      

 

젊은 할머니가 썩 내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안쪽 자리가 불편하긴 하다. 그래도 강사가 부탁을 하니 안 들을 수도 없고, 또 상황을 봐서 하는 게 맞긴 하다. 자리를 바꿔 드리려 일어나시며 슬쩍 한 마디 흘린다.

    

"그 나이에 이거 배워서 뭐할라꼬"      


몸은 불편하시지만 머리는 아직 총명하신 분이시다. 그 말을 놓치지 않으셨다. 많이 불쾌하셨던 모양이다.      

"와, 이 나이에는 뭐 배우면 안 되나, 마 됐소. 내가 안에 앉을게!!"    


내가 얼른 만류를 했다. 


"안에 앉으시면 할머니도 불편하시고 밖에 앉은 할머니도 불편하시니까 그냥 밖에 앉으셔요"


그렇게 권해도 고집을 부리시고 기어이 제 자리에 눌러앉으신다. 젊은 할머니가 그 행동이 또 못마땅해 보였나 보다.      


"또 화장실 간다고 귀찮게 하지 말고 마 양보해 줄 때 앉으소."      


92세 할머니가 들은 척도 안 하고 앉아계신다. 할머니가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앉아 있으니, 그것도 보기 싫었나 보다. 젊은 할머니 퉁명스럽게 또 한마다 한다.     


"아이고, 고집도.. 할매 지팡이 여 세워놓지 말고 저 안쪽에 세워놓으소"     

 

92세 할머니 들은 척도 안 하고 지팡이도 안 옮겨놓으시고 그냥 앉아계신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다. 모두 다 나가고, 나도 수업 뒷정리를 하고 나왔다. 휴게실에 92세 할머니가 또래 할머니 하고 앉아 계신다. 모두 정정하시지만 걸음걸이가 느리시니 수업이 끝나고 모두 나가고 나면 잠시 쉬었다가 천천히 움직이시는 거다.   

   

할머니 목소리가 찌렁찌렁하시다. 아니면 본인의 귀가 약간 어두워지니까 반사적으로 본인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친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아이고야, 새파랗게 젊은기이 눈을 똑바로 뜨고 또 화장실 갈라꼬 내 귀찮게 할 거지요!! 한다 아이가. 그 나이에 이거 배워서 뭐 할끼고 하면서"     

 

친구 할머니가 맞장구쳐 주신다.     


"요즘 아~아들은 어른 모른다. 우리 때 하고 같나, 마 화 풀어라,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우짜노."    

 

내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아직 안 가셨네요, 저 먼저 갑니다"  


"아이고 선생니~~임, 우리 선생님 참 곱제." 하신다.     

 

돌아오는 길에 자꾸 비실비실 웃음이 삐져나왔다. 92살 할머니들이 말하는 고운 선생님도 70대, 새파랗게 젊은기도 70대이다. 70대, 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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