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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Mar 01. 2024

이쁜 아지매

  

컴퓨터 수업 초기때부터 함께 한 할머니 교육생, 그러니 십 년을 넘게 함께 공부했다. 다른 프로그램은 모두 끊어도 컴퓨터 수업 하나만은 계속하러 오셨다. 일 년에 세 번 바뀌는 학기에, 매번 바뀔 때마다 오랜 지킴이처럼 교실을 지켜주시고, 반장도 오랫동안 맡아 주셨다. 나에게는 든든한 조력자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일본에서 공부하셨던 할머니는 일본어도 꽤 유창하셨고, 처녀 때는 미군부대에서 타이피스트로 일을 잠시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컴퓨터 학습능력이 좋으셨고, 특히 타이핑 속도가 굉장히 빠르셨다. 수업 중에 자주 학습능력이 좋으시다고 칭찬해 드렸다. 그런 분이, 어느 시점부터는 자꾸 하소연을 하셨다.      


“선생님, 이제는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어제 배운 게 생각이 안 나요.”     


“저도 그래요, 나이가 육십만 넘어가도 그런 현상이 생겨요.”     


이런 대화가 자주 일어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선생님, 저 아무래도 치매 초기인 것 같아요.” 하며 씁쓸히 웃으셨다.     


“아유 ~ 아니에요. 본인이 인식할 정도면 그것은 치매가 아니래요. 치매는 본인도 모르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던데요.” 

    

이런 대화가 자주 일어나면서도 계속 꽤 긴 시간을 이어서 수업에 참여하셨다. 그러다가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아예 프로그램 신청을 안 하셨다. 카톡으로 문자를 넣어드리고 답신을 받았다.      


“아무래도 선생님만 피곤하게 해 드리는 것 같아서요. 그동안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가끔씩 연락드릴게요” 


그리고는 명절 때, 해가 바뀔 때에는 안부 인사 카드를 보내오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다. 몇 번을 문자를 드려도 읽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혼자서 복지관 근처 작은 원룸에 사셨다. 워낙 성격이 꼼꼼하고, 단정해서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싱거운 소리를 하거나, 능청을 떨거나 하면 못 마땅해하셨다. 아무 하고나 잘 어울리지도 않으셔서 그분과 친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분도 안 계셨다. 


복지관 측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방문 케어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담당자 선생님에게 가끔 안부를 물어봤다. 치매가 꽤 심하게 왔다며 복지관에서 케어 차원으로 전화하는 것도 받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렇게 몇 차례 학기가 바뀐 어느 날, 복지관에 들어오시는 것을 봤다. 너무 반가워 쫓아가서 와락 안아드렸다.   

  

“ooo 님 ~~ 오늘 어쩐 일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건강해 보이시네요. 아, 저 알아보시겠어요?”     


반가운 마음에 와락 껴안고 인사를 하다가, 아... 생각에, 날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알지요, 컴퓨터 선생님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 선생님 그대로네요.”     


“녜 ~ 에. 저는 그새 살이 많이 쪘어요. 000님은 그대로세요.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돈을 좀 찾으려고요. 그 사이 돈 넣어놓은 것도 잊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어요. 돈 찾아 가라고.”     


“녜 ~ 에, 복지관에서요?”    

 

음.. 복지관에서 그런 업무도 해 주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 한 잔 빼 드릴게요. 저도 마시고요.”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빼 들고 가서 한 잔을 드리고 옆에 앉았다.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동안 잠시 말이 끊겼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보시더니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거신다.     


“아지매는 참 이쁘게 생깄네요. 인상이 참 좋습니다. 복지관에 뭐 배우러 왔능교?”    

 

아........     


“컴퓨터요.” 미소를 띠며 대답해 드렸다.  

   

“아 ~아. 컴퓨터요. 컴퓨터 선생님 참 좋지요? 컴터 선생님 참 잘 가르칩니다. 나도 오래 배왔어요.”     


“녜 ~에, 그럼 이제는 안 배우시는 거예요?”     


“배우면 좋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나요. 인자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오른쪽 가슴이, 묵직한 게 누르는 듯 통증이 왔다. 갑자기 눈이 뜨거워지고 시큰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복지관 담당선생님이 이직을 하시는 날,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다른 곳으로 옮기셨다고.. 옮기신 곳이 어딘지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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