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때 남편을 먼저 보낸 친구가 있다. 살림이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여러 일들을 하면서 아들을 무사히 대학에도 보냈다. 아들은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고 월급은 매달 엄마에게 주었다. 그 돈으로 아끼고 아끼며 두 사람 생활을 하고 꼬박꼬박 적금을 부어 아들의 미래를 위해 목돈을 만들었다. 친구는 그때가 제일 좋았었다고, 가끔 회상하며 말한다.
아들이 결혼을 했다. 아들의 월급은 며느리에게 갔다. 당연한 일이다. 친구는 말했다. 짐을 덜어서 시원하다고. 며느리는 아들과 의논을 했다며 얼마의 돈을 용돈으로 보내 주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손주가 태어났다. 며느리는 친구에게 죄송하다며 아이 밑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 용돈을 조금 줄여서 드릴 수밖에 없다고 하더란다.
국가에서 기초생활 연금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조금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식이 주는 용돈만큼 받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통장에 돈이 안 들어오더란다. 조금 짐작은 했지만 설마라고 생각했단다. 어느 날, 안부 전화가 왔을 때 슬쩍 물었단다.
“통장에 안 들어와 있더라.”
“아.. 어머님.. 요즘 노령연금이 많이 올라서 괜찮으실 것 같아서요. 집을 이사 하느라 대출금도 커지고 나가는 게 너무 많아서요.”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에고, 더 편하다. 그때는 통장에 돈 들어올 때마다 괜히 미안하고, 힘들어할 것 같아서 마음 쓰이고 했는데, 국가에서 주는 돈 받으니 오히려 편하다.”
낳아서 키우는 것은 내가, 그 보상은 국가가 하는 시대가 왔다. 자식과 부모, 쌍방에 심리적인 부담이 없어서 좋다. 예전의 직접적인 유통의 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불편한 감정은 국가에 보내면 된다. 자식도 국가에, 부모도 국가에. 왜 그렇게 하느냐고, 정치를 그 정도밖에 할 수 없느냐고, 노인을 그 정도밖에 대접할 수 없느냐고. TV를 보면서 삿대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