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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Mar 03. 2024

억울한 인생


오전 수업만 있는 날, 수업 뒷정리를 하고 뒤늦게 나갔다. 저 만치서 허리를 뒤로 제키고 작은 갈 짓자 형태로 뒤뚱뒤뚱 힘들게 걸어가시는 할머니가 보이신다. 안 아픈 데가 없다 하시며 걷다가 쉬시고 걷다가 쉬시고 하면서도 수업은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분이시다. 나이는 나하고 서너 살 차이인데도 몸은 팔십을 넘기신 분처럼보이신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이제 가시네요.”     


강사의 인사에 화들짝 놀라며 


“선생님, 인자 나오셨네요.” 


하시더니 내 손을 꽉 잡아당기시며 힘주어 말씀하신다.    


“선생님 점심 먹고 갑시다. 제가 대접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영 기회가 안 와서.. 오늘 딱 됐네요. 갑시다” 


안 그래도 몇 번 식사 대접 하시겠다고 하신 것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을 했는데, 이날은 할머니의 끌어당기는 손의 악력이 너무 세어서, 무언의 간절함 같은 게 느껴져서 따라갔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말문을 여신다.     


“선생님도 시어머니하고 평생 사셨다해서 놀랬습니다.”     


“아.. 어떻게 아셨어요?”     


“하모니카반에 박00가 선생님 육촌 올케라면서요. 내가 컴퓨터 배운다고 하니까 선생님 이야기 나왔지요. 선생님 시어머니가 그리 별났다고.. 에고 선생님은 얼굴에 고생한 표가 안 나긴 하는데, 그 속을 누가 알겠는교” 표티 안 내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     


그러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나도 19살에 시집와서.. 그때는 그 나이도 늦은 나이라 친정에서 시집 안간다꼬 구박 많이 받고 어쩔 수 없이 쫓기 나듯이 왔는데.. 19살에 시집왔는데 시엄마가 39살이라요. 그런데 시엄마가 환갑 지나고 얼마 안돼서 넘어졌는데 그때부터 못 일어나는기라요.  중풍이 왔는기라요. 후 ~유우. 그래갔고 그때부터 하루 세끼 밥 챙기드리고 똥기저귀 빨고.. 몸은 뚱뚱해서 일으키고 눕히고 하는기 올매나.. 그래갖고 지금 내 몸이 이리 됐는데..후 ~유으"    


“아이구우 ~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때는 요즘같이 시설도 없었을 때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힘드셨겠어요.”     


“맞아요. 그 시절은 그랬지요. 돌아가신 지 인자 6년 쯤 됐는데.... 아이구우.. 내가 죄인이라요. 내가 죄인 인 줄은 아는데 그래도 너무 억울한기라요.”     


그 말씀에 놀래서 힘 있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모셨는데 무슨 죄인이에요? 상을 받아야죠”     


“아이고 선생님 ~ 선생님은 그래도 시집살이를 오래 해서 그런 말씀을 해 주네요. 근데 선생님, 세상이 몰라주대요. 아들 딸 출가 다 시키고, 영감은 10년도 더 전에 갔는데, 그 할매는 명이 길어서 아들 보내고도 그대로 누워있으니, 인자는 마 밉대요. 그라고 뭣 보다  내 몸이 못 견디겠는기라요. 그래도 시누, 시동생들은 아무도 할매 병원에 보내자 말 안 하는데, 내 자슥들은 엄마 생각하고 할매 병원에 보내자 합디다. 참 한 다리가 천리라카는 옛말이 하나도 안 틀리대요.”     


“그러게요. 요즘엔 그게 흉이 아니에요. 병원도 예전보다는 자꾸 더 좋아지기도 하고요.”   

   

“내가 참 어리석었어요. 아니면 그것도 내 욕심인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장남이니까 그 집에서 시집와서부터 살았지요. 옛날에야 그 집이 슬레이트 지붕에 판잣집이었지요. 살면서 영감이 돈 벌어서 지붕 올리고, 몇 번 고치면서 지금처럼 번듯한 집이 되어서 그래도 방 세 개 세 놓고, 그 세비로 생활은 되었거든요. 그래도 그 집은 애초에 할매 집이었으니까요. 내가 그 집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라면 시엄마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안 그라면 그 집 하나도 재산이라꼬 형제들이 있는데 입 닫고 못 있잖아요. 그기 얼마나 된다꼬. 내가 참 어리석었지요.     


흐유 ~우, 세상은 좋아져서 이웃들은 모두 해외여행이다 어디다 하며 간다는데, 꼼짝 못 하고.. 으이구~우 그라다가 정말, 목에 신물이 올라오더라고요. 참기가 힘들어서. 몸도 말을 안 들어주고요. 그래서 결정을 내맀지요. 차례 때 식구들 다 모였을 때, 인자는 그만 할란다. 할매 병원에 보내고 싶다고. 보내겠다고. 그때는 시누, 시동생들도 말 못 하대요. 그라라 하대요. 그 세월이 장장 23년이 되니까요.” 

    

“세상에 ~ 누우신 게 그렇게 되는 거죠.?”     


“그렇지요."


 “그래도 저의 어머님은 건강하셨어요. 6개월 정도 아프셨다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선생님이 복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년은 와 이래 복이 없었는지.. 그래갔고 할매를 병원으로 옮깄는데.. 세상에~에.”     


그 사이에 음식이 나와도 이야기하시느라 제대로 숟가락을 들지 못하시면서 눈물을 짬짬이 찍어내신다.    

 

“그래 갔고... 마아 두 달 만에 갔다 아입니까.”   

  

“어머나!! 병원에 가셔서요?”     


“예~에, 내가 너~~ 무 억울해서. 23년을 뒤치다꺼리했는데, 꼴랑 두 달을 못 견뎌내고 그렇게 불효를 했나 싶기도 하고, 두 달만 잘 버텼으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일가친척들한테 효부란 소리도 들었을낀데.. 그 두 달을..그라니까 살아온 게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지난 시간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고.. ”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마음에 백 프로 공감을 하지만.. 겨우 입을 뗐다.     


“아마, 집에 그대로 계셨으면 아직 살아계실지도 몰라요. 병원에 가셔서, 낯선 곳에 가셔서 그나마.. ”    

 

나 딴에는 위로라고 한 말이었다.     


“시집 식구들도 그리 이야기 하대요. 근데 그 말이 왜 그리 상처가 되는지요. ‘니가 할매를 병원에 보내서 빨리 죽게 한 거다,’ 그리 들리는 거라요.”     


너무 당황했다.      


“아.. 저는.. ”    

 

“선생님, 맞습니다. 그 말 맞아요. 아마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할매가 병원 안 가고 집에 있었으면 더 오래 살았을낍니다. 아이면 지금까지도 있을지도 모르지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거 위로 맞습니다. 그런데 시집 식구들이 그리 말하니까 그리 들리는 거지요.”     


“아무튼간에 저는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고, 돌아가신 할매도 원망스럽고 그래요. 갈라면 집에서 가던지, 아이면 병원에 가서도 일 이년은 이따가 가던지 하지.. 꼴랑 두 달 있다가 간기.. 마음에 한이 되어 남아있어요. 너무 억울해서.. ”    

 

그 억울함에 어떤 말로 더 보탤 수가 없었다. 그냥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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