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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Mar 04. 2024

영어 쫌 하는 할매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떨어진 의자에 세 할머니가 암말 없이 묵묵히 앉아계시는데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한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매 1 : 어 ~? 니 우짠일고? 오늘 수업있나? 없다 아이가?     


할매 4 : 그냥, 심심해서 와 봤다 아이가.     


할매 3 : 아이고 극성이다. 마 집에서 쉬지 뭐 할라꼬?     


할매 4 : 니는 와 여 있노?     


할매 3 : 나는 오늘 영어 수업 있다 아이가.     


할매 4 : 하이 ! 나이스 미츄!     


손바닥을 들고 마주치자는 모션을 쓴다.     


할매 3 : 지랄 안 하나, 크크      


할매 4 : 의자에 털썩 앉으시며 “아이고 사는것도 지겹다.”     


할매 2 : 제일 재미있게 살면서..     


할매 4 : 내가? 그래 살라꼬 최면을 건다 아이가. 이 나이에 재미있는게 뭐 있나? 사는 게 다  시시하지. 죽고 싶다고 죽어지는 것도 아이고, 사는 동안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생각하는데, 뭘 해도 안 재미있다 아이가. 그라니까 스스로라도 최면을 걸어야 안 되겠나. ‘나는 재미있다. 나는 재미있게 산다. ~ ♬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아.’     


할매 2 : 글키. 울 시어머니도 이 나이 때 걸핏하면, 청승맞게 앉아서 ‘사는것도 지루하다’ 해사서 그기 그리 듣기 싫더마는.. 내가 그 참이 됐다.     


할매 3 : 유스 이즈 낫 어 타임 오브 라이크, 잇 이즈 어 스테이 오브 마인드     


할매 1, 2, 4 : 야 ~ 아 !!      


할매 4 : 할매, 영어 좀 하네.      


할매 3 : 크크 영어 선생님이 알으키 주신거다, 숙제다. 외우라카데.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다.     


할매 1 : 그기 무슨 뜻인데?     


할매 3 : 청춘이란 인생에서 어떤 구간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있다는 뜻이란다.      


할매 4 : 흐유우 ~ 그 울만이란 시인도 최면을 걸은거네. 그나저나 니 쌔 물리라 조심해라.     


할매 3 : 가시나 지랄 안하나. ㅋㅋㅋ    

 

나도 모르게 미소지으며 들었다. 부러웠다. 주고 받는 대화로 봐서는 한 동네 토박이 분들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고 산 분들인가 보다. 이주가 심한 시대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은 아니다. 이런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것 만이라도 그 분들에게는 삶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 분들 중에 어느 한 분이 떠난다면 그 상실감은 어마어마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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