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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Mar 09. 2024

모를 인생

이탈리아란 나라를 여행할 때였다. 세계의 가난한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규모가 꽤 큰 게스트하우스였다. 여행객들이 모두 나간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체크인을 했다. 텅 빈 로비에서 동포 청년을 만났다. 낯선 지역에서 같은 민족을 만난다는 것은 늙은 나에게는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숙소를 배정받고 나와 로비에서 인사를 했다. 청년은 풀 죽은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서 풀 죽은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풀 죽어 앉아 있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틀 전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소매치기가 아니고 어느 골목에 들어서자 누군가에게 무엇인지 모를 것으로 뒤통수를 맞고 털썩 주저 앉았는데 그 사이에 여권과 현금이 든 가방과 고가의 카메라뿐 아니라 폰도 모두 빼앗겼다는 것이다.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외출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여행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나로서는 경악할 일이었다. 그 당시에 해외 자유여행을 시작한 지 두 해 차 되던 해여서 놀람과 두려움은 더 컸다.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고 가족에게는 연락을 했느냐고도 물었다.     


뒤통수를 맞아서 충격은 컸지만 다른 곳 부상은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연락을 받고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했다.      


마침, 그때까지 나는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라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할 참이었다. 혹시 점심을 안 먹었으면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내가 사겠다고 했다. 그는 풀 죽은 소리로 점심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이럴수록 힘을 내야 한다며 부추겨 함께 나갔다.     


그가 맛있었다고 하는 괜찮은 식당을 찾아서 갔다. 불운한 일을 당한 청년에게 어떻게든 용기를 주고 싶었다. 큰돈은 못 빌려주지만 오늘 쓸 경비 정도는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돈을 보내오면 달라고 했다. 아니면 한국에 가서 보내줘도 된다고 했다.     


그는 너무 반가워하며 그래도 괜찮겠냐고 했다. 내일이면 게스트 하우스에서 떠나야 하는데, 이동 중에 써야 할 교통비조차 없어서 부모님께서 돈을 보내줄 때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 할 판이라며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먼저 부모님께 연락해서 먼저 내 계좌로 돈을 넣어드리라고 하겠다고도 했다.     


그 당시가 벌써 15년 정도 되었으니, 그때가 일반적으로 카드 사용을 잘 안 하던 때였고 대부분 해외여행 때는 현금을 가득 가지고 다니며 소매치기 방지로 배에 차고 다니던지 아니면 팬티 속에 주머니를 만들어 돈을 넣어 다니기도 했던 시절이다.     


나는 가방에서 조심스레 돈을 꺼내어 얼마의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계좌번호도 적어주었다. 다음날 조식 때였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라 긴 테이블에 쭉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어제 나가서 언제 숙소로 돌아왔는지 몰라 궁금하던 차였는데, 그가 비교적 환한 얼굴로 반갑게 다가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어제 잘 다녔느냐고 묻고, 덕분에 어제 가고 싶었던 곳을 다녀왔다며 깍듯이 인사도 받았다. 그리고 오늘 다음 여행 일정으로 떠난다고 했다. 부모님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안 왔는데, 다음 여행지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있어서 친구에게 며칠 얹혀있어도 된다며 약간 수다스럽게 긴 인사를 하고 떠났다. 빌려주신 돈은 한국에 가서 계좌로 넣어드려도 되겠느냐며 자신의 폰 번호도 주었다. 지금은 폰이 없어서 연락을 주셔도 못 받을 거라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새 폰을 만들어야 되겠다며 폰 번호는 같은 것으로 할 터이니 연락도 주시라고 했다.    

 

해외여행을 시작하면서 여행카페에서 소매치기 이야기며, 강도 이야기를 많이 읽었던 터라, 그런 일을 당한 여행객을 만난 것도, 그에게 도움을 준 것도 나에게는 여행의 체험이며 한 편으로는 뿌듯한 기쁨이기도 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느지막이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서 버스를 타고 그 지역의 명소로 갔다. 작은 미술관도 들리고, 작은 선물도 사고, 점심도 먹고, 카페에 들려 차를 마시며 잠시 쉬고 나왔다. 여행객들이 정말 많은 곳이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부딪칠 정도로 여행객이면 꼭 가보는 곳이었다. 나는 주변의 경관보다 그런 여행객을 보는 재미가 더 좋았다. 피부가 다른, 언어가 다른, 나와 다르게 생긴 얼굴,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들, 그 사이에 내가 끼어 함께 걷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해외 자유여행의 맛은 충분했다. 

   

그 좁은 골목에서도 길거리 밴드가 곳곳에 보이고, 혼자 노래를 불러대는 길거리 가수,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 앞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작은 지폐 한 장을 놓고 오는 작은 세련됨도 즐긴다. 그러다 길바닥에 엎디여 두 손을 내밀고 있는 노숙인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을 두 팔에 푹 파묻고 두 손을 내밀고, 그 옆에는 낡은 모자가 놓여 있다. 순간 동양인(?) 까만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엎드려 있는 자세에서 유럽인이 아니라 동양인의 체형처럼 느껴졌다.      


도시에 따라서 구걸하는 집시도 많고, 때로는 멀쩡한 사람이 앞에 와서 손을 벌리기도 해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 순간만은 뭔가 쑥 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 모양새가 집시나 늙은 유럽인처럼 보이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모양새가 젊은 동양인처럼 보여서 일테다. 그런 느낌이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쳐가는데, 순간 눈에 들어온 손목에 끼어 있는 팔찌였다.     


순간, 아.. 하며 나도 모르게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가슴이 가쁘게 뛴다. 다리에 힘이 빠진 듯 걷는 게 느낌이 없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그 청년은 손목에 작은 십자가가 걸려있는 매듭실 같은 팔찌를 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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